부동산시장은 읽기 어렵습니다. 내 집 마련 역시 어렵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려운 ’부’동산 ’바’로보기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면적만 놓고 보면 서울과도 맞먹는 지방의 한 군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인구는 줄고 줄어 5만명대마저 위태롭다. 65세 이상은 이미 40%를 넘겼고, 청년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행정구역은 그대로인데, 그 안을 채우는 사람은 빠르게 늙고 줄어드는 중이다.
이 지역의 과제는 더 이상 개발이 아니다. 사람이다. 관광 콘텐츠를 만들고, 관계인구와 생활인구부터 늘리자며 회의 때마다 머리를 맞댄다. 빈집을 고쳐 세컨드하우스로 쓰게 하자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쓴다는 SNS에는 한 달 살기, 워케이션, 귀촌 지원 홍보물이 부지런히 올라온다.
그런데 성과는 더디다. 풍광과 인심에 반해 간혹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다. “너무 마음에 드는데, 여기 집 가지면 서울 집은 못 가지잖아요.”
이 질문 앞에서 지자체 담당자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많지 않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실거주’라는 말부터 흔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주하기 위해서 거주용으로 주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보호해야 한다. 부담이 너무 커지면 안 되니까. 그런데 그게 거의 사치품화돼 있다 그러면 서구 선진국이 하는 것만큼의 보유 부담을 갖게 하는 게 맞겠다. 또 여러 채를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은 상관없다. 못 가지게 하지는 않는다.”
이 발언의 핵심은 몇 채냐가 아니다. 거주 목적으로 쓰이는 집인지, 거주와 무관하게 자산 증식 수단으로 보유한 집인지를 묻겠다는 것이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이 기준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실거주란 무엇인가.
한국 부동산 정책에서 실거주는 오랫동안 도덕적 단어처럼 쓰였다. 실거주 1주택자는 보호할 사람이고, 다주택자는 의심할 사람이라는 구도가 굳어졌다. 그러나 현실의 거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주민등록을 옮기면 실거주인가. 주말마다 지방에 내려가면 실거주가 아닌가.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지방에 작은 집을 마련하면 투자인가. 은퇴 뒤 절반은 서울, 절반은 지방에서 보내는 삶은 거주인가, 보유인가. 한 달 살기는 생활인구 정책이고, 같은 지역에 집을 사면 다주택 규제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책은 복잡한 삶을 ‘주택 수’라는 숫자로 잘랐다. 행정에는 편한 기준이다. 그러나 현실을 설명하기엔 너무 거칠다. 집은 숫자이기 전에 공간이다. 누군가에게는 투자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모 곁에 머물 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은퇴 이후의 두 번째 생활권이다.
한 채라는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주택 수를 기준으로 한 세제는 한동안 강력한 메시지를 냈다. 다주택은 억제하고, 1주택은 보호한다는 메시지였다. 문제는 그 결과가 늘 정책 의도대로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취득, 보유, 양도 단계에서 주택 수를 중심으로 불이익이 붙으면 합리적 개인은 분산보다 집중을 택한다. 지방 중소도시에 작은 집을 나눠 갖기보다 수도권 핵심지 한 채에 자산을 몰아넣는 편이 세후로 안전해진다. 이른바 ‘똘똘한 1채’는 실거주의 모범답안이라기보다, 세제가 허락한 가장 안전한 쏠림에 가까웠다. 핵심지 매물은 잠기고, 민간 임대는 이탈했고, 지방 소형 주택 여러 채로 노후를 설계하려던 중산층의 경로도 좁아졌다.
다주택이라는 말도 너무 많은 것을 덮고 있다. 단기 차익을 노린 갭투자, 장기 임대사업, 부모 돌봄용 지방 주택, 은퇴 이후 세컨드하우스, 인구감소지역 빈집 매입이 모두 같은 단어 안에 들어간다. 투기와 정주, 투자와 거주가 한 바구니에 담긴다. 정책은 그 차이를 묻기보다 숫자만 세는 쪽을 택했다.
물론 주택 수 기준이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투기 수요를 걸러내는 데 주택 수는 가장 쉽고 빠른 기준이었다. 하지만 쉬운 기준이 언제나 좋은 기준은 아니다. 지방 소멸과 고령화, 부모 돌봄, 이중 거점 생활이 현실이 된 지금, 한 채냐 두 채냐만으로는 거주와 투기를 충분히 구별할 수 없다.
세제 빈틈은 언제든 투기 수요의 통로가 됐다. 수도권 자금이 지방 저가 주택을 쓸어 담고, 지역 주민의 주거비를 밀어 올릴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전면 해제가 아니라 더 정교한 구분이다. 이 전제 위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방은 사람을 부르는데, 세제는 집부터 센다
행정안전부는 89개 인구감소지역과 18개 관심지역을 지정하고 생활인구·관계인구 확보를 국가 과제로 삼았다. 지역마다 한 달 살기, 워케이션, 귀촌 지원, 빈집 리모델링을 내건다. 하루라도 더 머물 사람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숫자는 이미 경고음을 낸다. 준공 후 미분양은 2021년 말 7000호 안팎에서 2025년 말 2만8641호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지방이 2만4398호로 85%가량을 차지한다. 지방 곳곳에는 팔리지 않은 새집이 쌓이는데 수요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단순히 매력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사면 의심받고, 세제상 불리해질 수 있다는 구조가 수요를 밀어내는 측면도 있다.
사람이 머물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숙박시설만으로는 관계인구가 정주로 이어지기 어렵다. 반복해서 내려가고, 지역에서 소비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려면 거점이 필요하다. 그 거점이 결국 주택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정부도 이 모순을 모르지 않는다.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는 인구감소지역 주택 취득 시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산정에서 주택 수를 제외하는 방안이 담겼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아직 절반짜리다. 지방에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의 첫 질문은 다르다. “지금 사도 되는가”, “이 집 때문에 내가 다주택자가 되는가”, “나중에 서울 집을 팔거나 옮길 때 불리해지는가.” 제도가 이 질문에 시원하게 답하지 못하면 수요는 움직이지 않는다.
실거주 판단 기준도 여전히 비어 있다. 연간 며칠을 머물면 거주인지, 부모 돌봄이나 은퇴 이후 이중 거점 생활은 어떻게 볼 것인지, 장기임대와 단기 투기 수요는 어떻게 가를 것인지가 선명하지 않다. 세금 계산에서 주택 수를 일부 빼주는 것과 지방 거점 주택을 새로운 거주 형태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몇 채냐"보다 "어떻게 쓰느냐"를 물어야
더 따져야 할 것은 주택 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집의 목적과 사용 방식이다. 지역을 봐야 하고, 가격을 봐야 하고, 실제 체류 여부를 봐야 하고, 보유기간과 임대 활용 방식을 봐야 한다. 인구감소지역의 일정 가격 이하 주택에 실제 머물거나 장기임대로 활용하는 경우까지 일률적인 다주택 프레임으로 묶는 것은 설계의 게으름이다.
1주택이어도 비거주라면 문제다. 반대로 2주택이어도 실제 머물고, 지역에 소비와 관계를 만드는 집이라면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실거주 2주택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다. 그러나 지방 소멸과 고령화, 부모 돌봄, 이중 거점 생활의 시대를 생각하면 더는 이상한 말만은 아니다. 삶은 이미 한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제만 여전히 한 채라는 숫자 안에 갇혀 있다.
그 군청 담당자에게 돌아가 보자. 풍광과 인심에 반한 사람이 마지막에 던진 질문. “여기 집 가지면 서울 집은 못 가지잖아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세제 고시 한 줄을 고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거주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써야 한다. 몇 채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집으로 무엇을 하느냐를 물어야 한다. 비거주 1주택을 문제 삼는 정부라면, 이제 실거주 2주택이라는 말 앞에서도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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