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칼럼] '여민락' 전주 공연 … K-뮤직 새로운 장르 개척한다

  • 세종대왕의 전주 소환에 성공…국악과 서양음악이 앙상블

  • 전주 경기전에서 6월 13일 오후 6시 공연

이춘구 언론인
[이춘구 언론인]
 
 
“까마득한 곳에서 전설 하나를 물고 온 삼족오가 용마루에 앉았다. 안개 쌓인 궁 뜨락에 옛 가락 소리가 들려오고 창업한 조선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 밴다.” 6월의 녹음이 짙게 깔리는 전주 경기전에서 막이 오르는 여민락-세종의 귀환」 도입부 내레이션이다. 여민락(與民樂)」 제1악장에서는 “육룡이 날으샤-, 육룡이 날으샤- 조선의 기운이 성하여 태평성대 만년에 이르리라. 조선의 기운이 성하여 태평성대 만년에 이르리라!”를 정가로 노래한다. 「여민락」은 이처럼 조선 건국의 뿌리이자 육룡이 날아오르는 경기전에서 6월 13일 오후 6시 그 역사적인 막을 올린다.

「여민락」은 조선의 궁중음악을 대표하는 교향곡이다. 「여민락」은 세종대왕이 태평성대를 이루면서 백성과 즐거움을 나누고자 만든 궁중음악이다. 궁중음악으로서 국악 정악곡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호흡이 아주 긴 대곡에 속한다. 관현합주 「여민락」의 전곡은 1장부터 7장까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연주하면 100여 분에 이른다. 전체적인 흐름은 매우 느리게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빨라지는 전형적인 국악의 ‘만-중-삭(느림-보통-빠름)’ 구조를 따른다. 1악장에서부터 3악장까지는 한 박자 하나하나마다 매우 느리지만 대신 장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나타낸다. 그러다가 4악장에 들어서서는 속도가 눈에 띄게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고 가락도 한결 경쾌하고 활기차게 전개되다가 7악장에서 마무리된다.

경기전 여민락」은 세종의 「여민락」 원곡의 감동과 철학을 살리되 현대적 감각을 입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1악장에서 4악장까지를 비발디의 ‘사계’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세우려고 했다. 제1악장 ‘봄’은 궁의 뜨락: 정가, 제2악장 ‘여름’에서는 곤궁한 허수아비: 아니리, 판소리, 남자 정가, 제3악장 ‘가을’은 풍요의 들판, 제4악장 ‘겨울’은 풍경소리: 정가, 그리고 피날레로 혼성합창: 세종찬가, 소년소녀합창단: 구슬비, 오너라, 혼성합창: 대한의노래, 세종찬가로 구성했다. 특별히 피날레 부분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과 같은 웅혼함과 희망을 담으려고 한다. 전체 템포와 멜로디, 화성 또한 만중삭의 기승전결의 효과를 지향한다.

「여민락」 공연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홍성훈 독일 오르겔바우마이스터(대풍금, 오르겔 제작 장인)는 국악기와 양악기, 정가, 판소리, 합창단, 국악단을 망라하는 매머드급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먼저 악기 편성부터 동서양을 망라하는 크로스오버다. 국악기는 생황과 소금, 대금, 피리, 태평소, 양금, 해금, 가야금, 소아쟁, 대아쟁, 거문고, 장구, 꽹과리, 좌고, 징, 북 등이 동원된다. 양악기도 홍성훈 장인이 만든 홍매화오르겔을 비롯해 바이올린, 비올라, 더블 베이스, 전자기타, 드럼, 피아노 등이 연주된다. 연주 인원이 60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출연진도 남녀 정가, 남자 판소리 등 10 명의 솔리스트 출연진과 전주시립국악단, 전주시립교향악단, 전주시립합창단, 전주시립극단, 남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 등 150여 명으로 경기전 무대를 꽉 메울 것이다. 출연진 외의 100여 명에 육박하는 스태프 제작진도 홍성훈 명인이 총감독을 맡고, 대본은 탁계석 비평가(K-클래식위원장), 작곡은 박영란 수원대 교수, 음악감독은 김준희 경북대 교수, 지휘는 심상욱 전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이 맡는다.
 
 

「여민락」 경기전 공연은 한국 음악계에 큰 모멘텀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먼저 한국을 대표하는 궁중음악으로서 「여민락」 이 세종의 창의성과 음악의 보편성이 교집합을 이룬다는 점이다. 우주 창조의 영혼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파장은 관객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 국악과 서양음악이 앙상블을 이루며 한국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국악은 고루하고 속스러운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소리로 각자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서양음악 또한 국악과 만남으로써 여민동락의 천상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소리의 고향 전주는 속요 중심에서 정악으로 변주할 수 있게 돼 또 다른 점프업 기회를 열어가게 된다. 「여민락」은 K-뮤직의  장르를 개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신호탄과 같은 것이다. 말 그대로 시민과 더불어 같이 즐기며 같이 노래할 수 있게 한다.

「여민락」은 K-소리의 본고향 전주의 위상을 제고할 것이 분명하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세종대왕을 전주로 소환하는 데 성공한 점이다. 지금까지 전주의 역사문화 접근이 태조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세종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다. 더 나아가 27명의 조선시대 전체 왕을 경기전으로 다시 모셔 올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주는 콘텐츠 선물은 「여민락」뿐 아니라 용비어천가, 완판본 서체, 한글 세계화 등 무궁무진하다. 전주는 이제 조선왕조 창업기지에서 문화기지로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다. 이로써 한국 궁중음악을 대표하는 「여민락」의 전주시대를 선언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홍성훈 총감독의 홍매화오르겔 연주를 계기로 그동안 제기돼왔던 일월오봉도 대풍금 도입이 시급해졌다는 점이다. 홍매화오르겔은 생황과 더불어 「여민락」 공연의 백미를 이룰 것이다. 오르겔은 판소리와 정가, 대합창의 서사적이고 웅장함을 살리며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그린다. 서양에서도 궁중음악의 총아로 불리고 있는 오르겔은 생황과 역사적 연원이 유사하다. 일월오봉도는 태조 통치의 당위성을 상징하며, 대풍금은 율려에 바탕을 둔 예악사상의 상징이다. 「여민락」은 한편으로 율려와 악의 표현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통치자와 백성이 함께 즐기는 대동세상의 파토스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민락」은 전주가 한국 소리의 본 고향임을 증명한다. 여기서 홍성훈 총감독은 서양음악의 중심지 중의 하나인 본(Bonn)을 떠올리게 한다. 본은 홍성훈 명인이 오르겔(대풍금)을 제작하는 과정을 15년간 익혔던 독일의 도시이다. 베토벤이 태어난 곳이기에 서양음악의 중심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한국의 소리의 고향 전주와 독일 소리의 고향 본이 음악교류를 실시하자는 제안이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K-콘텐츠 5대 강국 도전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경기전은 한국 문화의 원천, 「여민락」의 터전
한국 음악 발전을 위한 기관간 협력 체제 돋보여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조성된 진전(眞殿)으로 조선의 번영과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핵심 국가유산이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 10년(1410)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한 진전이 전주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세종 24년(1442), 대왕은 진전의 명칭을 경기전(慶基殿)으로 바꿨다. 경기전이란 “경사로운 터에서 나라의 기틀이 시작됐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조선 왕조가 하늘의 뜻과 도덕적 정당성을 갖춘 국가임을 천명하는 상징적 조치였다.

경기전은 제향을 위한 길례(吉禮)가 행해지는 공간이다. 길례는 오례(五禮)의 하나로 대사(大祀), 중사, 소사 등 나라에서 지내 온 제사의 모든 예절을 이른다. 경기전 전각은 유교 건축의 절제미를 따르면서도 기둥 사이에 공포를 배치한 다포(多包)형식을 채택해 왕실 건축으로서의 위엄과 장엄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안정된 구조와 엄정한 비례, 정제된 단청은 조선 왕조가 지향한 질서와 통치이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경기전은 왕실의 제향 공간에서 조선 왕조의 시작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치적·문화적 상징물이다. 경기전은 조선의 출발점이며, 「여민락」은 조선이 지향한 이상국가의 표상이다.

「여민락」은 세종 27년(1445)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지어 올린 ‘용비어천가’에 세종대왕이 음악을 붙이면서 탄생했다. 『세종실록』 29년 조에는 세종대왕이 “음악은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것이니, 임금이 홀로 즐길 것이 아니다.”라고 한 기록이 있다. 본래 세종대왕 시절의 「여민락」은 용비어천가(해동육룡이 나르샤~)를 한문으로 번역한 가사를 얹어 부르던 성악곡이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가사는 사라지고, 지금은 악기들만 연주하는 순수 기악곡으로 정착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여민락」은 처음에 조선 왕조의 창업을 찬양하고 백성과 즐거움을 나누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규모 연향악(궁중 잔치 음악)인 '봉래의(鳳來儀)'라는 가무악(노래·악기·춤이 합쳐진 형태)의 한 부분이었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며 독립된 기악곡으로 정착한 것이다. 전통적인 궁중음악(정악)의 대규모 편성으로,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장엄하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악기는 피리, 대금, 해금, 아쟁을 시작으로 거문고, 가야금과 타악기인 장고, 좌고, 박 등으로 이뤄진다. 경기전 「여민락」은 현대 음악 감각에 맞춰 리듬을 조금은 빠르게 편곡한 게 특징이다.

「여민락」 경기전 공연은 여러 기관·단체의 협력에 의해 탄생됐다. 전주문화재단(이사장 우범기)과 헤리티지 랩 온고(대표 김동철)의 협의와 현장답사 등을 통해 「여민락」 기획이 구체화됐다. 특별히 우범기 이사장의 통찰과 문화사랑, 열정 등이 어우러져 주요 시책사업으로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등 행정기관은 공연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경기전 앞에 무대를 설치하고 공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도 적극적으로 「여민락」 공연에 힘을 보태고 있다. KBS는 공연 전체 과정을 촬영하고 편집해 1TV <KBS 중계석-전주시문화재단 여민락>을 7월 22일(수) 24시부터 방송할 예정이다. 특별히 경기전 전각과 무대가 연출하는 영상미와 선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전주문화재단과 온고는 세종대왕 나신 날, 5월 15일이 2025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경기전 공연을 구상하게 됐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우범기 문화재단 이사장은 “가장 전주다운 공간인 경기전에서 울려 퍼질 여민락의 선율이 시민의 일상에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전주가 보유한 고유 문화 자산을 현대적 콘텐츠로 지속 발전시켜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도시 전주의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고 전했다. 홍성훈 총감독은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미래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문화”라며, “이번 공연은 세종의 가치관을 현대적 무대 언어로 구현해 국악의 세계화 가능성과 동시대적 확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베토벤의 ‘합창’을 부르듯이 세종대왕의 「여민락」을 부르는 날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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