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중형 전기트럭 보조금 지출액 0원

오주석 기자
오주석 기자 [사진=아주경제DB]
올해 신설된 중형 전기트럭 보조금이 지금까지 한 푼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제조사도 있고 이를 구매할 수요도 분명하지만 일선 도로에서는 중형 전기트럭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는 상황에도 대중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정부는 올해 1월 '2026년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을 배포하고 중형 이상 전기트럭 보조금을 신설했다. 1.5~5t 전기 화물차에 최대 4000만원, 5t 초과 전기 화물차에는 최대 6000만원의 국가 보조금을 책정했다. 기존 1t 전기 화물차 중심이던 지원 정책을 산업 현장에서 주로 활용되는 중형급까지 확대했다는 점에서 화물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문제는 제도가 현장에서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형 전기트럭 시장에 진출한 타타대우는 중형 전기 화물차 '기쎈'을 출시하고도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도 내연기관 차량보다 1억원가량 비싸서다. 기쎈 트럭의 1대당 가격은 1억8000만~2억원 수준이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적용해 가격을 낮췄음에도 업계에서는 팔수록 손해라는 말까지 나온다.

중형 전기트럭 보조금을 신설한 기후에너지환경부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되는 인증 절차를 통과한 차량이 아직 없다고 한다. 중형 전기트럭 보조금 집행 과정에서 "제조사 평가 절차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는 게 기후부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는 정책과 시장의 시계가 따로 가고 있다. 정부는 보조금을 만들었지만 차가 준비되지 않았고, 제조사는 차량을 내놨지만 소비자는 구매를 꺼리는 상황이다.

승용차에 비해 관심이 덜하지만 중형 트럭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활용된다. 새벽 도심을 누비는 청소차부터 이삿짐 차량, 편의점 물류 배송 차량 대부분이 중형 트럭이다. 물류센터와 공장, 항만을 오가는 차량도 상당수다. 일정 구간을 반복 운행하는 특성상 전동화 적용 시 파급효과가 상당하다.

실제 중형 화물차는 승용차보다 상대적으로 운행 거리가 길고 연료 사용량도 많아 배출가스 감축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중형 전기트럭 1대가 내연기관 승용차 수십 대에 맞먹는 탄소 저감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운행 과정에서는 연료비 부담이 적고 엔진오일 등 소모품 교환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장기간 운행할수록 경제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중형 전기트럭 대중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올해 정부가 중형 전기트럭 보조금을 신설한 것도 승용차 중심의 전동화만으로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온실가스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송 부문 감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차량을 구매하는 운송업자들은 탄소보다 경제성을 먼저 따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전기차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차량 가격과 충전 인프라, 유지비용 등을 고려하면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물차는 결국 생계수단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정부 역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가 시장과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중형 상용차 확대를 위해서는 가격 접근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 정책은 국내 산업 보호에 초점을 두다 보니 수요자도, 제조사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형 전기트럭 보조금 지출액 0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탄소중립 정책과 산업 현장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적표다. 탄소중립은 결코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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