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집속탄, '천사의 심판'과 '악마의 저주' 사이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방산안보실장 사진한국국방안보포럼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방산안보실장 [사진=한국국방안보포럼]
 
최근 한 방산기업 직원을 만났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한편으로 억울하다’는 심경을 들었다. 그 직원이 근무하는 기업에서 생산하는 무기체계가 집속탄인데, 언론과 국민 사이에서 ‘악마의 무기’라는 호칭이 일반화되는 것에 대한 낭패감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악마와 연관된 그룹으로 분류되는 시선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방산 분야에 근무한다는 자부심도 상처를 입게 된다는 하소연이었다.
 
사실 ‘집속탄(cluster bomb)’이라는 이름과 위력은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일반적으로 한 발이 축구장 3개 면적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탄이나 미사일의 몸체 안에 수십 또는 수백 발의 자탄(子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발탄으로 남은 자탄들이 지뢰처럼 남아 있다가 민간인, 특히 어린이들에게 피해를 준 사례들이 많았다.
 
세계적으로 통상 ‘강철비(Steel rain)’라는 표현으로 통용되는 집속탄이 대한민국에서는 왜 악마의 이름을 빌려야만 했을까. 엄청난 파괴력과 대량살상 관점으로 본다면 핵무기가 단연코 ‘악마의 무기’ 1순위가 돼야 할 것이다.
 
과거 언론 기사를 통해 ‘악마의 무기’라는 표현을 찾아봤다. 검색 결과 2005년경 국내 한 통신사가 북한 방송이 보도한 ‘주한미군이 중성자탄․열화우라늄탄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을 인용하면서 ‘20세기 악마의 무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 시초였다. 그러나 당시 집속탄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 이후 상당 기간 잠잠하다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시작된 이후 3월경 ‘러시아가 악마의 무기 집속탄을 꺼내 사용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가 다수 등장했다. 러시아 집속탄의 불량률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6월과 지난 4월에는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악마의 무기 집속탄으로 공격했다’는 기사도 등장한 바 있다.
 
대략 2022년 3월부터 국내 언론은 집속탄을 ‘악마의 무기’로 규정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일방적이고도 비인간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집속탄 개발과 생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120여 개 국가가 2008년 채택한 집속탄 금지 협약(CCM)은 2010년 공식 발효됐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이란, 이스라엘, 폴란드 등은 가입하지 않았고 남북한 역시 분단과 군사적 대결 상황을 이유로 협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현재 집속탄의 국제적 기준은 대략 불발률 1%인데, 현재 국내에서 생산하는 집속탄은 그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공중에서 사방으로 뿌려진 이후 폭발하지 않은 불발 자탄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폭 기능이 활성화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집속탄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현재 정부 방침상 수출은 금지하고 있다.
 
국내 일부 방산기업에서 포탄과 미사일 집속탄을 생산하게 된 배경은 북한이 미사일과 방사포탄을 이용한 집속탄 개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4월 “단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1가(KN-23)에 집속탄두를 탑재해 발사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집속탄 한 발로 축구장 10개 규모를 초토화할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우리 집속탄보다 거의 3배 수준 위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집속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지만 더욱 고도화된 집속탄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정부의 완전한 통제를 받아 개발·생산하고 있으며 유사시 북한 공격을 받았을 때 대한민국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무기체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가성비 영역에도 부합될 수 있다.
 
집속탄을 생산하고 있는 방산기업과 임직원이 그런 용어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면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군인들도 그러한 굴레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염려되는 측면이 많다.

대한민국 국군과 방산기업 임직원들이 직접 연관되는 경우는 다른 표현이 필요해 보인다. 무기체계는 누가 만들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천사의 심판’과 ‘악마의 저주’를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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