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한국기업가정신을 찾아서] 이재용의 시간, 삼성은 다시 결단해야 한다

기업의 역사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기업의 운명은 결국 선택으로 갈린다. 기업가정신을  연구해 온 필자의 결론도 다르지 않다. 기업은 전략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으로 도약한다. 전략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지만, 결정은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그 결정은 언제나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내려진다. 그 불완전성을 감당하는 힘, 그것이 기업가정신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이재용 회장이 브랜드평판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인기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과 사회가 다시 한 번 삼성과 이재용을 주목하고 있다는 신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기대는 언제나 질문을 동반한다. 삼성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재용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과거 어느 때보다 무겁다.


삼성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답은 이미 일정 부분 제시돼 있다. 삼성은 언제나 ‘잘했을 때’가 아니라 ‘위험한 결정을 했을 때’ 도약했다. 반도체 투자가 대표적이다. 당시 삼성은 기술도 없었고 시장도 불확실했으며 내부 반대도 적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나 결정을 내렸다. 이 선택은 계산의 결과라기보다 인식의 결과였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한다”는 판단이 회사를 바꿨다. 그 순간 삼성은 전략 기업이 아니라 결단 기업이 됐다.



이 지점에서 기업가정신의 본질이 드러난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기업가를 ‘창조적 파괴’를 실행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기존 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힘이 기업가정신이라는 것이다. 나이트는 이를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능력’으로 보았다. 보험으로도 대비할 수 없는 영역을 감수하는 것이 기업가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키르츠너는 ‘기회를 발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기민함’을 강조했다. 이 세 가지 정의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모인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결정을 내린 뒤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 그것이 기업가정신이다.

지난달 20일 뉴델리 총리 청사에서 열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주최 오찬 및 한-인도 경제인 대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회장이 이재명 대통령 모디 인도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뉴스룸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뉴델리 총리 청사에서 열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주최 오찬 및 한-인도 경제인 대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회장이 이재명 대통령, 모디 인도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뉴스룸 연합뉴스]



문제는 지금이다. 이재용 회장의 지난 시간은 확장이 아니라 정리에 가까웠다. 사법 리스크를 관리하고, 지배구조를 안정시키며, 막대한 상속세를 처리하는 과정이었다. 이 모든 것은 기업 외부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어떤 투자도, 어떤 전략도 의미를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는 기업가정신의 부재가 아니라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마련하는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은 준비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의 순간에 드러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이제 삼성은 다시 확장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재용은 더 이상 관리자가 아니라 기업가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정리의 시간이 끝났다면,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 시작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AI는 기업가정신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기업가정신의 핵심이었다. 누가 더 빨리 정보를 확보하고, 더 정확하게 분석하며, 더 먼저 행동하느냐가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보는 넘치고 분석은 자동화됐으며 예측은 알고리즘이 수행한다. 이 상황에서 차이를 만드는 요소는 더 이상 정보가 아니다. 책임이다. AI가 분석을 대신하는 시대에 남는 것은 인간의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뿐이다. 결국 기업가정신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가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삼성 앞에 놓인 과제는 명확해진다. 첫 번째 과제는 반도체 이후의 방향이다. 삼성은 여전히 반도체 중심 기업이다. 반도체는 삼성의 심장이며,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AI 시대의 승자는 반도체 기업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이다. 애플, 아마존, 구글이 보여주듯이, 하드웨어를 넘어 생태계를 구축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 삼성 역시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제조 중심 기업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플랫폼 기업으로 확장할 것인가. 이 선택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가정신의 문제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두 번째 과제는 조직의 공정성이다. 최근 삼성 내부에서 제기된 보상 체계 논란은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이 공정하다고 느끼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는 조직일수록 공정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성이 확보되면 구성원은 도전한다. 도전이 가능해지면 혁신이 발생한다. 반대로 공정성이 무너지면 도전은 사라지고, 조직은 보수적으로 변하며, 결국 경쟁력을 잃는다. 공정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다.



세 번째 과제는 책임의 리더십이다. AI 시대의 리더는 더 이상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과 앞에 서는 사람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술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는 리더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책임을 인정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만이 조직을 움직일 수 있다. 보잉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술적 설명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책임을 인정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비로소 회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기업가정신은 바로 이 책임의 순간에서 완성된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8일 이재용 회장과 회동한 뒤 서초사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8일 이재용 회장과 회동한 뒤 서초사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형 기업가정신의 특징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은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지 않았다. 빠르게 실행했고, 조직을 동원했으며, 위기 속에서 방향을 잡았다. 이 속도와 결단의 정신이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다. 그러나 지금 이 정신은 약해지고 있다. 안정 지향, 리스크 회피, 책임 분산이 기업가정신을 잠식하고 있다. 기업이 커질수록 이 경향은 더 강해진다. 그래서 더더욱 리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조직이 안전을 선택하려 할 때, 리더는 위험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기업가정신이다.



이재용 회장의 행보를 보면 조용하지만 일관된 흐름이 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다. 요셉의원 후원과 같은 사례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다. 장기간 지속된 실천이다. 기업가정신은 단순히 돈을 버는 능력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사회와 연결하느냐에서 완성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ESG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은 더 이상 경제적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이다. 삼성은 모든 조건을 갖췄다. 자금, 기술, 인재, 글로벌 네트워크 모두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조건이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방향은 언제나 한 사람의 결정에서 시작된다. 기업가정신은 준비된 상태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선택하는 순간 완성된다. 그 선택이 조직을 움직이고, 시장을 바꾸며, 산업의 흐름을 바꾼다.



삼성은 다시 결단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곧 이재용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기업가정신은 결국 하나다.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이 단순한 원칙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재용 회장은 지금 삼성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인가. 안정적인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선택을 할 것인가. 관리의 리더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결단의 리더로 나설 것인가.



기업가정신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순간에 드러나는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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