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회식 꺼리는 여자'… 다카이치류(高市流)가 바꾸는 日 정치의 풍경

  • 대면 대신 문서… '속도·효율'로 재편된 총리의 하루

  • SNS로 직접 말하고, 당과는 거리… 달라진 日 권력의 작동 방식

지난 12일 자민당 당 대회에 참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겸 자민당 총재사진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2일 자민당 당 대회에 참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겸 자민당 총재[사진=로이터·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가 21일로 취임 6개월을 맞았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60%를 웃도는 지지율을 유지하며 순항하는 가운데 일본 정치의 풍경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 스타일, 곧 '다카이치류(高市流)'가 있다.

지난 10일 낮, 일본 총리관저에 자민당의 아소 다로 부총재와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 하기우다 고이치 간사장 대행이 모였다.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마련한 오찬 자리였다. 메뉴는 생선구이 정식. 4개월 만의 회식이었다. 회식 후 아소 부총재는 다카이치 총리에게 "꼭 저녁이 아니더라도 또 이렇게 밥 먹자. 점심 자리로 가볍게 모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칫 고립될 수 있다는 걱정 속에서 나온 일종의 '당부'였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역대 일본 총리들의 일과는 대개 비슷한 패턴이었다. 낮에는 집무, 저녁에는 회식. 경제계·정치권·관료 등과의 식사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관계를 다졌다. '정치는 밤에 움직인다', '요정 정치'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다르다. 오후 6시 정도면 총리관저 옆 공관으로 들어간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세탁 등 집안일을 하고, 국회 답변서와 정책 자료를 읽는다. 주변 참모들은 "(다카이치 총리가) 내일까지 공부해야 한다며 자료를 들고 공관으로 들어간다"고 전한다. 아사히신문이 집계한 6개월간 다카이치 총리의 평균 귀가 시각은 오후 7시 21분. 외부 회식 혹은 간담회 참석은 9회에 불과했다.

점심도 역대 총리들과 달리 혼자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식사를 거르는 날도 적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데, 본인은 농담처럼 "함께 식사를 하면 립스틱을 고칠 수가 없잖아요"라고 한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달라진 점은 회식만이 아니다. 역대 총리들이 관행처럼 지켜온 '답변 사전 점검'도 없앴다. 국회 대정부 질문 등을 앞두고 총리가 비서관·관료들로부터 답변 내용을 사전에 설명받는 자리를 다카이치 총리는 없앴다. 대신 직접 자료를 읽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서면으로 질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답변서 수정도 자신이 직접 펜으로 써서 팩스로 보낸다. 대면보다 문서를 우선시한다.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를 대폭 줄였고, 장관 회의도 발언을 최소화하고 서면 제출로 대신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치 1번지인) 나가타초의 전통적인 '비공식 사전 조율 문화'(根回し文化)와 거리를 두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 다카이치류"라고 평가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또 다른 특징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직접 소통이다. 지난 7일 밤, 총리는 아랍에미레이트(UAE)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이 끝나자마자 10분 만에 SNS 엑스(X)에 통화 내용을 직접 올렸다. 정부의 공식 발표는 그보다 30분쯤 뒤에 나왔다. 나프타 공급 우려가 SNS에 퍼졌을 때도 "사실 오인"이라며 직접 글을 올려 진화에 나섰다. 현재 다카이치 총리의 X 팔로워는 약 286만 명으로,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52만),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81만)보다 월등히 많다. 

반면 기자회견은 줄었다. 지난 6개월간 공식 기자회견은 8회에 그쳤다. 이시바·기시다 전 총리는 예산 통과 때마다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정식 기자회견이 아닌 총리 주변에 기자들이 모여서 하는 약식 질의응답 방식을 택했다. 아사히신문은 "기자가 추가 질문을 이어가며 답변의 진의를 파고들 수 있는 기자회견과 달리, SNS는 '일방통행'이라 속내를 물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소통 방식은 의사결정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다. 정권의 명운을 가른 1월의 중의원(하원) 해산 결정 과정에서는 본인의 최대 정치적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아소 부총재에게도 사전에 상의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에는 여야가 합의해 놓고도 이전 정권에서 미뤄 뒀던 휘발유세 추가 과세 폐지를 즉각 결단했다. "독단"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두 결정 모두 결과적으로 높은 지지율로 이어졌다. 이시바 전 총리가 소수 여당 속에서 '숙의'를 내걸다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라는 평을 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카이치 총리는 '결정하는 정치'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평가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런 스타일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관저 관계자를 인용해 "자민당 내에서 오랫동안 '비주류'로 지내온 것에 대한 반발심"을 꼽았다. 1993년 무소속으로 처음 당선된 다카이치 총리는 지역구 기반이나 세습 없이 스스로 길을 열어왔다. 여성 정치인이 극히 드물었던 시대에 홀로 커리어를 개척했다는 자부심이 기존 정치 관행과 거리를 두는 '다카이치류'의 뿌리에 있다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 스스로도 지난 2월 국회에서 "저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회식이 서툰 여자"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관행보다 합리, 조율보다 결단, 대면보다 문서. 다카이치류는 분명 새로운 총리상이다. 그것이 일본 정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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