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긴장이 다시 ‘경제의 목줄’을 죄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를 선언하자 세계 경제의 혈관은 다시 경직됐다. 불과 하루 전 조건부 통항 허용이 발표됐던 해협이 다시 닫힌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군사 충돌이 아니라 ‘협상 압박’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로가 아니다.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전략 요충지다. 이곳이 흔들린다는 것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불안, 공급망 충격으로 직결된다는 의미다. 이미 일부 유조선 피격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상황이 ‘경고 단계’를 넘어 ‘실제 리스크’로 전환됐음을 시사한다.
이번 봉쇄의 핵심은 명확하다. 이란은 미국의 해상 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양측 모두 전면전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통제된 긴장’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계산된 긴장이 언제든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해협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는 작은 충돌 하나가 즉각적인 군사적 확전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도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고 강경 메시지를 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종전 협상이 순조롭다고 강조한다. 이는 전형적인 협상 전략이지만, 시장에는 혼선으로 작용한다. 정책 신호가 일관되지 않을수록 시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반영하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수는 ‘시간’이다. 휴전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협상은 진행 중이고 군사적 긴장도 동시에 고조되고 있다. 이는 과거 중동 위기에서 반복됐던 패턴이다. 협상이 진전을 보일수록 오히려 현장에서는 긴장이 높아지고, 그 긴장이 다시 협상 조건을 바꾸는 구조다.
이제 시선은 한국으로 향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외교 뉴스가 아니라 곧바로 물가, 환율, 산업 비용으로 이어지는 ‘국내 변수’다.
단기적으로 정부는 비축유 방출과 긴급 수급 조정, 대체 항로 확보에 즉각 나서야 한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홍해 우회 항로를 활용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비용 상승을 감수한 임시 처방에 불과하다. 정유·화학·해운 업계 전반에 걸친 비용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금융·세제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미국 셰일오일,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의 공급망 분산을 가속화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리스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LNG, 재생에너지, 원전 등 에너지 믹스 전략을 재정비해 특정 해협에 대한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낮춰야 한다.
이번 사태는 또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글로벌 공급망은 여전히 취약하며 지정학 리스크는 ‘예외’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는 점이다. 기업과 정부 모두 더 이상 안정적 환경을 전제로 전략을 짤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불확실성 자체를 관리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구조다.
결국 해답은 외교에 있다. 군사적 압박은 단기적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은 막을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사자들이기에 결국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돌아오는 시간’이다. 시장과 세계 경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황을 낙관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최악을 전제로 한 준비다.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견디는 구조를 만드는 것—그것이 이번 위기가 던지는 가장 현실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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