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한국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구자은 LS회장 전선을 넘어 전력으로

  • 구자열 LS의장의 선견지명이 만든 LS 산업 전환

LS의 최근 행보는 단순한 기업 투자로 보기 어렵다. 초고압 케이블에 대한 공격적 투자, 베트남 생산기지 확대, 희토류 공급망 확보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전선을 만드는 제조 기업에서 전력 인프라를 설계하는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구자은회장의 기업가정신과 구자열의장의 선견지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AI를 데이터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서버가 많아지고, 알고리즘이 고도화되며, 데이터가 쌓이는 산업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 설명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AI는 결국 전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비한다. 연산량이 늘어날수록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AI 경쟁력은 곧 전력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구자은 LS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초고압 케이블의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히 전기를 전달하는 부품이 아니다. 전력을 멀리, 안정적으로, 손실 없이 보내는 핵심 인프라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전기차 산업 모두 이 전력망 위에서 돌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산업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다.


과거 산업은 생산 중심이었다. 얼마나 싸게 만들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생산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생산보다 인프라가 앞서는 시대다. 이 변화는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그리고 이 변화를 먼저 읽은 기업이 시장을 선점한다.


LS의 전략은 이 흐름을 정확히 짚고 있다. 전선 기업에서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품을 파는 기업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산업의 위치를 바꾸는 선택이다.


이 변화의 출발점에는 구자열 의장의 판단이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확장했다.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해외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을 축적했다. 전선 산업을 지역 산업이 아닌 글로벌 산업으로 끌어올렸다. 이 기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전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구자열 LS이사회 의장사진연합뉴스
구자열 LS이사회 의장[사진=연합뉴스]


그 위에서 구자은 회장은 방향을 바꿨다.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라 구조 전환을 선택했다. 전선이라는 제품을 넘어 전력이라는 시스템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는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새로운 시장은 투자 비용이 크고, 성과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동시에 성장의 여지가 가장 큰 영역이다. 구자은 회장은 이 지점을 선택했다.


베트남에서의 투자 확대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LS의 자회사 LS에코에너지는 현지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신규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 기존 공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으로의 수출이 급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왜 베트남인가. 이유는 명확하다. 생산과 물류가 결합된 전략적 거점이기 때문이다. 푸미 항구와 같은 물류 중심지는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되는 통로다. 생산과 동시에 수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공장 증설이 아니라 공급망 설계의 문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LS는 200킬로볼트급 초고압 케이블을 넘어 400킬로볼트급 초초고압 케이블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더 많은 전력을 더 먼 거리까지 안정적으로 보내는 기술이다.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에 필수적인 요소다.


이 기술은 쉽게 확보할 수 없다. 초고압 케이블은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진 산업이다. 품질 인증, 장기간 테스트, 프로젝트 경험이 필수적이다. LS가 글로벌 인증을 확보하고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술과 신뢰가 동시에 확보돼야 시장이 열린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희토류 사업이다. LS는 전선과 전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핵심 소재까지 확장하고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로봇, 방산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이다. 특히 네오디뮴과 프라세오디뮴은 고성능 모터의 핵심 소재다. 전력을 사용하는 산업의 기초다.


LS는 베트남에서 희토류 금속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호주 기업과 협력해 원료를 확보하고, 현지에서 가공까지 진행하는 구조다. 단순한 제품 생산을 넘어 공급망 전체를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큰 경쟁력을 만든다.


이러한 움직임은 하나의 변화를 보여준다. 제조업의 경쟁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생산 효율이 중요했다. 지금은 공급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공급망이 흔들리면 생산은 의미를 잃는다. LS는 이 구조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한 기업 중 하나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유럽 기업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이 사이에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기술과 가격, 두 가지를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이다.


여기에 정책이라는 변수도 존재한다. 전력 인프라는 국가 정책과 깊이 연결돼 있다. 송전망 구축은 규제와 주민 반발에 부딪히기 쉽다. 한국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이 전력 문제로 지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이 준비돼 있어도 인프라가 따라주지 않으면 성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질문은 명확하다. 한국은 AI 시대의 인프라 경쟁에 준비돼 있는가. 데이터센터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전력 생산, 송전, 저장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야 한다. 이 구조가 완성돼야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LS의 사례는 그 해답을 일부 보여준다. 산업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투자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시장이 완전히 열린 뒤에 움직이면 이미 늦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먼저 들어가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구자열의 기반과 구자은의 결단이 만들어낸 결과다.


더 중요한 것은 확장성이다. 초고압 케이블은 시작에 불과하다. 에너지 저장, 스마트 그리드, 전력 관리 시스템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 연결 구조가 만들어질 때 진정한 경쟁력이 완성된다. 전력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산업을 움직이는 플랫폼이 된다.


결론은 분명하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눈에 보이는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기술을 작동시키는 전력과 인프라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승부가 갈린다.


한국 산업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존 제조 경쟁력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인프라 산업으로 확장할 것인가. LS는 이미 답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속도다. 다른 기업과 정책이 이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가.


만약 따라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기술은 있었지만 구조를 만들지 못해 뒤처졌던 과거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 방향은 이미 제시됐다.


구자열 의장의 선견지명이 길을 열었고, 구자은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확장이다. 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산업 전체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신호는 충분하다. 남은 것은 실행이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늦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