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BTS가 불 지핀 외래객 3000만 시대 꿈… 사상누각 피하려면

기수정 문화부장
 
지난달 21일 광화문광장에서 단 하루 열린 방탄소년단(BTS) 무료 컴백 공연 ‘아리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파장을 낳으며 K-컬처의 폭발력을 숫자로 증명했다.

블룸버그가 추산한 하루 경제 효과만 2660억원에 달했고, 외국인 간편결제 와우패스의 일일 결제액은 역대 최고치(약 25억원)를 기록했다. 글로벌 숙박 플랫폼의 서울 여행 검색량은 150% 이상 뛰었다. K-팝 그룹 하나의 귀환이 글로벌 관광 수요를 단숨에 뒤흔든 것이다.

정부는 일찌감치 외래관광객 3000만명 유치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달성 시점마저 2029년으로 앞당겼다. BTS의 귀환은 정부의 목표를 향한 든든한 호재가 분명하다.

하지만 축제의 열기를 걷어내고 숫자를 뜯어보면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해 방한 외래객이 1894만명이었으니 당장 3년 안에 1100만명 이상을 더 끌어와야 3000만명 고지를 밟을 수 있다. 단발성 이벤트의 폭발력만 믿고 낙관하기엔 산술적으로 벅찬 과제다.

관광은 대외 변수에 몹시 취약한 산업이다. 최근 불거진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및 유류할증료 급등 사태만 봐도 그렇다. K-콘텐츠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널뛰는 환율과 치솟는 항공료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흔들리기 십상이다.

비싼 비용을 치르는 장거리 방문객일수록 단발성 이벤트 하나만 보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결국 대외 변수를 이겨내는 진짜 힘은 얄팍한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날씨나 환율에 구애받지 않는 '대체 불가능한 하드웨어'에서 나온다. 지난해 외래객 4270만명을 끌어모은 일본의 흥행 돌풍 역시 엔저라는 단기적 순풍에 오랜 기간 다져온 탄탄한 체류형 인프라라는 돛을 달았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내놓은 비자 완화, 지방공항 확대, 바가지요금 근절 등 체류 환경 개선책의 방향성은 옳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어디까지나 관광객 불편을 덜어주는 '수비형 정책'일 뿐이며 판도를 바꿀 무기로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체급을 키워야 할 때다. K-컬처가 호기심을 자극해 사람을 끌어모으는 '미끼'라면, 이들을 붙잡아두고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결국 탄탄한 '인프라'의 몫이다. 관광업계가 K-팝 팬덤을 거뜬히 소화할 대형 공연장, 글로벌 마이스(MICE) 단지, 그리고 이를 하나로 묶어낼 복합리조트(IR) 확충을 핵심 대안으로 꼽는 이유다.

선진 관광 시장에서 복합리조트는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는 거대한 관광 플랫폼이다. 당장 2030년 가을 오사카에 들어설 초대형 IR 역시 아시아 관광 수요를 독식하겠다는 일본의 승부수다.

반면 우리는 글로벌 팬덤을 수용할 번듯한 대형 공연장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체급을 키울 핵심 엔진 중 하나인 IR은 여전히 카지노를 ‘사행성 조장’이란 규제에 묶어둔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홀로 손발을 묶고 있는 꼴이다.

현대 관광 산업은 머릿수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며 돈을 쓰느냐’의 싸움이다. 단순 방문객 수보다 체류 시간과 1인당 소비액이 훨씬 중요한 지표다. K-콘텐츠가 지핀 관광 훈풍에 마냥 몸을 맡길 순 없다. 거센 외풍을 버텨낼 기초체력, 관광객 발길을 묶어둘 앵커 인프라, 가격과 서비스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

단순히 입국자 수를 세는 정량적 셈법은 이제 시효를 다했다. 외래관광객 3000만명이라는 '숫자의 착시'에 기대어 지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은 대외 변수라는 파도 한번에 흔적도 없이 휩쓸릴 수밖에 없다.

화려한 축제의 조명이 꺼진 뒤 진정 필요한 것은 일회성 모객이 아닌 관광객을 매혹해 체류하게 할 든든한 하드웨어다. 낡은 규제에 갇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는 정부가 결단하고 체급을 키울 제대로 된 판을 깔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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