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경의 '안구선사'(2025) 속 눈알이 뽑힌 제자는 미소를 짓고 있다. 눈에서 피가 철철 흘러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응급 상황임에도 그의 입가에는 기묘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안구선사'는 '구지선사'의 차용과 변형이다. 손가락 하나로 깨달음을 얻은 구지선사는 불법을 묻는 이들에게 늘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동자승이 스승을 흉내내다가 결국 스승에게 손가락 하나를 잘리고 만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아동학대인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지선사는 동자승을 불러 묻는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인고?" 동자승은 스승의 물음에 검지 손가락을 세우려다가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본 순간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박찬경은 손가락을 안구로 바꿔 그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화가로서 또는 시각예술가로서 선문답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다룬다면 손가락보다 눈이 낫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도통 이해가 안 간다. 동자승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형식 너머를 본 것인가. 조계종 관계자는 "요는 다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없는데 있다고 했구나' 하는 깨달음이죠. 있지만 없는 것이고, 없지만 있는 것이에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게 시작이죠. 이제부터 시작하면 되죠."
선명한 듯 흐릿하다.
그나마 선명한 것은 박찬경의 그림이 구지선사의 동자승과 닮았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9일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 기자간담회에서 변형과 차용, 그리고 개성에 대해서 말했다.
"제 작업에서 개성이 빠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로 관심은 한국 현대화의 독창적인 표현보다는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온 이야기나 그림 도상을 재창작하는 데 있어요. 절에 다니면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그 과정에서 발견한 그림에 있는 도상을 변형하거나 차용하죠."
이번 개인전에는 도를 얻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잘랐다는 혜가의 고사를 그린 '혜가단비도'(2026)와 스승에게 화로를 머리에 이고 가 불법을 배우고자 하는 결의를 보인 혜통의 이야기를 해석한 '혜통선사'(2025) 등 불가에서 전해오는 에피소드를 일종의 '선불교 그로테스크 SF'로 변형한 작업이 다수 출품됐다.
전시장 역시 사찰을 흉내 냈다. 박찬경은 "절에 가면 고동색과 녹색 계통을 많이 쓰죠.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자 전시장에 이런 색을 칠했어요."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사찰 벽화를 모방하다가 눈이 뽑히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는 자학적인 선문답이다. 다만 예부터 전해져온 서사와 이미지를 오늘날의 감각으로 새로이 호출했다는 점에서 제자의 미소가 떠오른다.
'늦게 온 보살-디오라마'(2026)는 부처와 가섭존자를 부처와 토끼로 바꿨다. "부처님 다비식에 가장 아꼈던 제자 가섭존자가 늦게 도착하자 부처님이 두 발을 내밀어 환영하는 장면이 많이 그려지죠. 그러나 옛날 그대로 그리는 것은 조금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봐요. 지금은 훨씬 더 우울한 시대이고 문제적 시대이기에 더욱 쓸쓸한 풍경에서 토끼 한 마리가 부처님의 발을 보고 있는 것으로 바꿔봤어요."
관객이 '안구선사'를 마주하는 것은 탑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제가 전통을 대하는 태도는 이를테면 그림 '남매탑' 속 탑을 바라볼 때의 감각과 비슷해요. 이전에 그 탑을 봤을 때 친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더군요. 이런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 작업이에요. 그림 속 인물들이 탑을 바라보는 것과 관객이 제 그림을 보는 것이 같은 것이죠."
전시는 국제갤러리 K1에서 5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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