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의 C] 인공섬 '베니스'와 자연섬 '제주도'… 그곳에 묻힌 폭력과 상처

  • 브라질 작가 나자레트의 '알지브라' 바닥엔 소금으로 노예선 윤곽 그려

  • 과거 베니스 '착취의 역사'와 마주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는 한강 작가의 조각 '더 퓨너럴' 제주 4·3 사건 불러내 '애도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 한때 세관으로 사용됐던 344년된 건물 2층에서는 브라질 작가 파울루 나자레트의 개인전 ‘알지브라(Algebra)’가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는 장소와 공간, 작품이 서로 밀고 당기듯 긴장감을 이루면서 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거쳐 피노 컬렉션의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이곳 바닥 곳곳에는 나자레트가 새하얀 소금 결정으로 그려낸 커다란 둥근선이 있었다. 노예선 '툼베이루(tumbeiro, 포르투갈어)'의 윤곽이다. 관람객의 발걸음에 소금은 흩어지며, 베니스의 화려한 풍경에 묻혀있던 아픈 역사와 상처를 끌어올렸다.

소금은 양가적이다. 식민지 경제를 떠받친 무역 상품 소금은 노예선의 식량을 보존했고, 상처에 쓰라림을 더했다. 그러나 동시에 치유와 정화의 상징이다. 부패와 액운을 막는다. 탐욕의 배를 움직였던 소금은 누군가에게는 짜디짠 고통 혹은 애도의 눈물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베니스는 한때 소금 무역의 중심지였다. 소금 독점으로 쌓아 올린 부로 세워진 화려한 인공섬에서 나자레트의 소금 노예선에 올라탄 관람객들은 망각에서 깨어나, 폭력과 착취의 역사를 본다. 

자르디니에 위치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도 소금은 애도의 매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선보인 조각 '더 퓨너럴(The Funeral)'은 소금 더미 위에 검게 마른 나뭇가지를 꽂은 형태다. 작품은 바다 밀물에 녹아 지워질 뻔했던 제주 4·3사건을 이국땅에서 불러낸다. 전반적으로 심심한 한국관에서 발걸음이 멈추게 되는 지점이다. 작별할 수 없는 혹은 작별해서는 안 되는 과거를 애도하게 된다.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한국관에서 선보인 한강 조각 더 퓨너럴 사진윤주혜 기자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한국관에서 선보인 한강 조각 '더 퓨너럴' [사진=윤주혜 기자]
 
떠다니는 무덤 위에 올라타다
과거 푼타 델라 도가나에는 소금이 보관됐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소금 독점을 바탕으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다. 소금은 값비싼 상품이자, 부와 권력이었다. 나자레트는 바로 이 장소에 '바다 위를 떠다니는 관' 노예선 툼베이루의 윤곽선을 소금으로 그렸다.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아프리카인들을 브라질로 강제 이송했던 툼베이루는 집단무덤이었다. 선원들은 긴 항해 기간 소금으로 절인 식량으로 배를 채웠지만, 납치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은 노예선에 갇혀 질병, 굶주림,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관람객들은 무심코 바닥의 소금 선을 넘어, 역사에서 배제된 죽음의 배에 올라타게 된다. 지배와 폭력의 시대로 이동해 망각된 죽음을 호출하고 애도한다.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식민지배와 집단학살이 파괴한 정체성을 복원하려는 작업들도 두드러진다. 작가가 국경지대에서 모은 왼쪽 신발들은 바깥 방향으로 빙그르르 배치돼, 식민주의가 파괴한 정체성을 되돌려놓는다. 과거 아프리카인들은 노예로 끌려가기 전 '망각의 나무(Tree of Oblivion)' 주위를 돌며 정체성을 지워야 했다. 인간이 아닌 사고팔리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전시장의 왼쪽 신발들은 '노예'로 뭉뚱그려졌던 이들의 발걸음을 되돌려, 지워졌던 이름과 기억을 불러내는 일종의 애도의식 같았다.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베니스의 운하 풍경을 배경으로 아이가 그린 듯한 난민선 그림은 지금도 바다 위 어딘가에서 생명을 건 사투가 이어지고 있음을 환기했고, 아이의 떼묻은 샌들 등으로 만든 취약한 배들은 전시장 창밖으로 유유히 지나가는 수상버스와 대비를 이뤘다. 즐기는 관광과 생존을 건 탈출,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동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무덤을 건져올리다
6일현지시간 한국관에서 관람객이 조각 더 퓨너럴을 보고 있다 사진윤주혜 기자
6일(현지시간) 한국관에서 관람객이 조각 '더 퓨너럴'을 보고 있다. [사진=윤주혜 기자]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9쪽) 

작가 한강의 조각 '더 퓨너럴'은 소금으로 쌓은 흰눈 위에 앙상한 나무를 세웠다. 추위 속에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수많은 남녀와 야윈 아이들이다. 또한 작품은 스러져간 존재들에 대한 애도다. 

새까만 나무들은 진흙과 바다 위에 세워진 베니스의 밑바닥을 떠받치는 무수한 나무 말뚝과도 같다. 인공섬 베니스와 자연섬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 아래 묻힌 폭력과 상처가 겹쳤다. 

두 전시 모두 11월 22일까지.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진행 중인 파울루 나자레트의 'Algebra' [사진=윤주혜 기자]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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