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 자리에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올랐다는 발표는 단순한 후계 확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전쟁과 체제의 성격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란 국영 매체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88명의 성직자로 구성된 전문가회의는 모즈타바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그는 오랫동안 후계자로 거론돼 왔고 혁명수비대와 안보 기구에 깊은 연계를 가진 강경 성향 인물로 평가된다.
결국 테헤란은 위기 국면에서 타협 가능한 과도 지도체제보다 응전과 결속을 택했다는 메시지를 안팎에 분명히 보낸 셈이다.
첫 번째 역설은 혁명국가의 세습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은 팔레비 왕조의 세습 통치를 부정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그 혁명 체제의 정점이 다시 부자 승계의 형태를 띠게 됐다.
모즈타바는 대중 정치인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그림자 실세’로 불려온 인물이다. 공식 공직 경력도 거의 없다. 그런 그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이란 지도부가 체제 정통성의 확장보다 권력 핵심부의 생존과 통제력을 우선했다는 뜻이다.
두 번째 역설은 이 결정이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맞대응이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모즈타바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란 차기 지도자 문제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내놨다.
그럼에도 이란이 바로 그 인물을 선택했다는 것은 외부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외교적으로는 협상 여지를 좁히는 선택이며, 군사적으로는 장기전을 감수하겠다는 신호다.
상황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하메네이 후계자들까지 추적하겠다는 위협적 메시지를 내놓았고, 전황은 지도부 제거와 핵심 인프라 타격이 뒤엉킨 위험한 단계로 들어섰다.
강경 후계자의 등장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체제 압박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고, 이란 역시 체제 보위를 명분으로 내부 통제와 외부 보복을 동시에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도자 교체가 휴전의 계기가 아니라 오히려 추가 표적화의 명분이 되는 구조라면 전쟁은 끝을 향해 수렴하기보다 다음 국면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다.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한국시간 이날 오전 7시 26분 기준 전장 대비 14.85% 오른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111.24달러까지 치솟았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길이 막히면서 중동 산유국들의 생산 차질도 현실화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라크 남부 주요 유전의 생산량이 이전의 3분의 1 수준인 하루 130만 배럴로 줄었다고 전했다.
이라크의 원유 수출도 급감했다. 지난달 하루 333만 배럴 수준이던 수출량은 이날 80만 배럴로 줄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유조선 두 척만 선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곧 수출이 완전히 중단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유가는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중동 에너지 인프라 공격, 역내 미군과 외교 공관을 둘러싼 긴장 고조가 겹치면 원유 가격은 단순한 상품 가격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지수가 된다.
특히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충격이 더 직접적이다. 유가 상승은 물가와 환율, 증시, 해상운임, 기업 비용을 동시에 흔든다. 중동의 권력 승계가 서울의 주유소 가격과 제조업 원가, 금융시장 변동성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전쟁 장기화 우려는 금융시장에도 즉각 반영됐다. 전쟁 2주차에 들어선 월요일 서울 금융시장은 개장과 동시에 크게 흔들렸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장 초반 6% 안팎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1,490원을 돌파했다.
모즈타바 선출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오히려 체제가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인선은 ‘강경’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결연함이면서 동시에 불안이며, 선택이면서 동시에 퇴로 상실의 결과다.
국제사회가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도자 제거와 보복의 악순환이 중동 전체를 더 넓은 전장으로 끌고 가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유가 급등과 물류 불안이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번지는 것이다.
세습의 역설 위에 세워진 이번 승계는 체제의 연속성은 확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평화의 출구는 그만큼 더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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