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외국인은 올해 들어 9조원 넘게 팔아치우면서 기관과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초부터 이달 20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9조156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코스피 순매도액(4조6550억원)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지수가 올해 37% 넘게 급등하자 대대적인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의 매도세는 반도체 대형주로 쏠렸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서만 59% 급등하며 사상 첫 '19만전자'를 기록한 삼성전자를 9조5540억원어치 팔아치웠고 SK하이닉스(5조9720억원)와 로보틱스 모멘텀으로 강세를 나타낸 현대차(5조2940억원)가 주요 타깃이 됐다.
뒤이어 SK스퀘어(6370억원), 현대모비스(6090억원), 현대글로비스(5420억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외국인은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도 올해 들어 3조7970억원 순매도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외국인의 매도세를 추세적 하락 신호보다는 그간 급등 폭이 컸던 데 따른 일시적 매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매도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코스피 추세적 하락에 대한 '베팅'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매도 대부분이 반도체주로 집중된 점을 볼 때 많이 오른 종목 비중을 줄이는 단기적인 리밸런싱(재조정) 과정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향후 전망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은 반도체 기업 이익 급증을 근거로 올해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5650에서 7250으로 상향 조정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산업 발전으로 반도체 실적이 상향 조정된 게 주당순이익(EPS)을 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상반기 중 반도체 주도 랠리는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밸류에이션 부담과 'AI플레이션(AI+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DB금융투자는 AI 시설 투자 가속화가 구리 및 반도체 가격 급등을 유발해 금리 인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코스피 하단 전망치를 기존 4500에서 4300으로 낮춰 잡았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하이퍼스케일러(AI 설비 운용사)들의 AI 시설 투자가 가속화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고용이 줄며 소비가 감소하면서 미국 크레딧 스프레드(국채와 신용채권 금리차)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AI 시설 투자는 구리 및 반도체 가격을 급등시키며 소위 'AI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어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 마찰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이는 반도체 업종 주가의 추가 상승 이후 변동성을 확대시킬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덧붙였다.
밸류에이션 상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배에 접근 중인데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 2007∼2008년 이후 처음"이라며 "저평가가 해소됐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상승에 한계가 드러날 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점차 기업들의 수익성과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을 동시에 고려할 시점"이라며 "반도체·조선은 수익성은 높지만, 자산 가치 기준 밸류에이션은 크게 싸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장의 시선은 오는 25일 예정된 AI 대장주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수익성 우려로 AI 관련주 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흐름 전환 가능성이 열리는 이벤트로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중요하다"며 "핵심은 실적 숫자보다 가이던스와 매출총이익률(GPM) 등 수익성 지표 유지 여부로,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되면 시장의 초점이 수익화 논란에서 성장 가시성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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