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본의 첫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5500억 달러 규모의 통상·투자 합의에 따라 일본이 약속한 첫 사업이 에너지·발전·핵심광물 분야에서 구체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관세의 성과”로 강조하며 정치적 성과로 부각시켰다. 워싱턴은 일본을 ‘약속을 실행으로 옮기는 파트너’로 평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한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은 이미 미국의 주요 투자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단일 국가 기준 여섯 번째 대미 투자국이며, 현대차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최대 투자자 가운데 하나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미국 산업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결코 뒤처진 위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워싱턴의 인식은 미묘하게 다르다. 일본이 ‘준비된 파트너’로 비쳐지는 반면, 한국은 ‘결정을 미루는 파트너’로 읽히고 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결심하지 못한 나라”로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한국이 일본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투자 규모를 경쟁하듯 맞출 이유도 없다. 이미 상당한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방향과 신뢰다. 언제, 어떤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협력을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일관된 그림이 아직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통상 전략은 분명하다.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자국 제조업과 에너지, 안보 산업을 재편하는 것이다. 일본의 투자 프로젝트가 전략 산업에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역할과 강점을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정치 환경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회 다수당 체제임에도 관련 입법과 제도 정비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은 해외에 그대로 전달된다. 내부 논의가 길어질수록 외부에서는 ‘결단력 부족’으로 해석되기 쉽다.
외교·통상 현안에서 시간은 중립적 자원이 아니다. 지연은 곧 불확실성으로 읽힌다.
시장이 가장 경계하는 것도, 동맹국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도 불확실성이다.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라, 계획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방향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무리한 약속도, 조급한 대응도 아니다. 이미 갖고 있는 투자 역량과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장기 전략으로 묶어낼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정부와 기업, 국회가 공유하는 하나의 큰 그림이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축적된 과정이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된 실행이다.
한국은 충분한 저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일관되게 전달되고 있는가이다. 이제는 기다림보다 설명이, 방어보다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선택이 향후 한미 경제 관계의 신뢰도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정부와 정치권 모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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