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의 글로벌 이슈] 사나카쓰의 시대, 고지(高地)를 점령한 정치와 민주주의의 시험대

  • 고지를 점령한 정치, 다카이치라는 선택지

정치는 전쟁의 다른 이름이다. 무기는 언어로 바뀌었고, 전장은 국회와 SNS로 이동했지만, 승패를 가르는 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오늘의 세계 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오래되고도 정확한 참고서는 여전히 손자병법이다. 손자는 전쟁의 본질을 병력이나 전술이 아니라 ‘형세(形勢)’에서 찾았다.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기는 전쟁, 그 핵심은 언제나 지형과 기세였다.

총선 승리를 축하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AFP
총선 승리를 축하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AFP]



2026년 일본 총선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거둔 압승은 이 고전적 통찰이 21세기 디지털 정치 환경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선거는 정책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경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권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다카이치를 선택할 것인가, 아닌가”라는 단일한 선택지를 유권자 앞에 내놓은 선거였다. 일본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고지 전략이었다.

중도 확장이나 조정형 메시지를 통한 저지대 공략이 아니라, 일정한 반발을 감수하더라도 논점을 단순화하고 결단을 요구하는 공격형 배치였다.


손자병법의 언어로 말하면, 다카이치는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싸움의 장소를 바꿨다. 고지를 점령한 순간, 이후의 모든 전투는 그 고지를 기준으로 전개된다.


야당과 중도 세력이 아무리 합리적 설명을 내놓아도 전장의 중심은 이미 이동해 있었다. ‘미움받지 않으려는 정치’는 안전했지만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반면 ‘미움받을 용기’를 선택한 정치는 위험했지만 형세를 장악했다.


이번 선거는 전략의 도덕성을 판별한 것이 아니라, 현대 정보 환경에서 어떤 전략이 살아남는가를 증명한 선거였다.


사나카쓰, 팬덤이 된 정치와 알고리즘의 병법


이번 선거를 이해하는 결정적 키워드는 ‘사나카쓰(サナ活)’다. 아이돌 팬 활동을 뜻하는 오시카쓰에서 파생된 이 말은, 다카이치 총리를 열렬히 지지하는 정치 팬덤 현상을 가리킨다.

유세장은 콘서트장이 되었고, 배지와 스티커, 포스터는 굿즈가 되었으며, SNS 공유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전통적 조직보다 더 강력한 동원 체계로 작동했다. 정치인은 정책 설계자가 아니라 브랜드가 되었고, 유권자는 시민 이전에 팬이 되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손자가 말한 ‘기세(勢)’는 오늘날 알고리즘 환경에서 ‘열량 높은 지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평균점은 확산되지 않는다. 절충된 메시지는 공유되지 않는다. 플랫폼은 중간값을 증폭시키지 않으며, 이해하기 쉬운 문장과 감정적 동일시를 선호한다. 다카이치의 구호,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는 이 조건을 정확히 충족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과 같은 계보에 놓인 정치 언어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고, 반복 가능하며, 논쟁의 여지를 줄인다.


여기에 개인 서사가 결합됐다. 세습 정치인이 주류인 일본 정치에서, 제조업 회사원 아버지와 경찰관 어머니 밑에서 자라 노력으로 최고 권력에 오른 인물이라는 서사는 젊은 세대에게 강력한 동일시를 불러왔다. 높은 청년층 지지율은 정책 선호라기보다 정체성의 선택이었다.


손자병법적으로 말하면, 병사에게 급여가 아니라 의미를 준 것이다. 의미를 얻은 군대는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강한 일본, 명분을 장악한 국가 서사


전쟁에서 명분은 병력보다 중요하다. 병사들이 왜 싸우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수가 많아도 군대는 무너진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사회에 하나의 강력한 국가 서사를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강한 일본’이다.


강한 미국을 상징하는 트럼프, 강한 중국을 이끄는 시진핑 사이에서 일본은 더 이상 조정자나 관리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메시지는 일본 사회에 누적된 피로와 열등감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저출산과 고령화, 장기 침체 속에서 일본은 오랫동안 ‘과거의 강대국’이라는 그림자에 머물러 있었다. 다카이치는 위로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존엄과 자존의 언어를 꺼냈다.


이는 병법적으로 가장 강력한 동원 방식이다. 패배를 설명하는 정치보다, 가능성을 선언하는 정치가 더 많은 병사를 모은다.


그러나 명분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강한 일본’이라는 서사는 곧 헌법 개정, 군사력 증강, 역사 인식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동북아 정세에 파고를 만든다. 한국과 중국에는 부담이며, 일본 내부에서도 제어 장치가 약화될 경우 우경화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다카이치 정권이 공명당이라는 완충 장치를 사실상 버리고 보다 강경한 연합 구도를 택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키운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고지를 지키는 정치, 일본의 오늘과 한국의 내일


손자병법은 고지를 점령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선명함으로 결집한 지지는 성과로 증명되지 않으면 빠르게 식는다. ‘강한 일본’은 구호로는 충분했지만, 정책으로 구현되지 않으면 곧 부담이 된다. 재정, 인구, 외교라는 현실의 전선은 슬로건보다 훨씬 단단하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보자면, 다카이치 총리의 압승은 한·일 관계, 한·미·일 협력, 중·일 관계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일본은 때로 거칠지만 예측 가능하다.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관리의 영역이다. 모호한 상대보다 선명한 상대가 오히려 다루기 쉬운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 선명함이 충돌로만 이어질지, 관리 가능한 경쟁으로 전환될지에 달려 있다.


이 지점에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돌아온다. 정치의 팬덤화, 야당의 무력화, 세대 간 정치적 양극화는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SNS로 증폭되는 감정 정치, 검증보다 진영을 앞세우는 선택, ‘찍고 보는’ 식의 지지는 민주주의를 빠르게 소모시킨다. 일본의 오늘은 한국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손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경고했다. 형세에 취한 장수는 패배를 준비한다고. 고지를 점령한 정치가 책임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 고지는 곧 함정이 된다.


다카이치 총리의 압승은 시대를 정확히 읽은 승리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의 승리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는 전쟁과 달리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통치로 이어져야 하고,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


역사는 지금 묻고 있다. 고지를 점령한 이후, 무엇으로 그것을 지킬 것인가. 이 질문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과 동아시아 전체를 향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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