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
한반도 ‘신 6자 회담’ 추진 특사 임명
“한국의 대중국 인식에 대해서 궁금하다. 독일은 대중국 전략을 현재 고심 중이다.”
지난 11월 22일 G20 정상회의가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한국 이재명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던진 질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바로 답을 하지는 않았다. 메르츠는 우리 대중국 인식을 고려해 대중국 전략을 짜는 데 참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우리가 독일의 경험에서 배울 게 많이 있다”면서 “어떻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독일을 이뤄냈는지, 우리 대한민국은 거기서 경험으로 배워서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혹시 특별한 숨겨 놓은 노하우가 있으면 꼭 알려주시길 바란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메르츠 총리는 “비밀 노하우는 없다”고 대답했다.
독일인들은 통일을 ‘역사적 선물’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여러 운동들이 작동하면서 만들어지듯이 독일 통일은 4레이어(층)가 작동한 결과이다. 먼저 위대한 ‘정치리더십’이다. 건국의 주역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서방정책’을 통해 번영의 양탄자인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새로운 비전의 정치가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지이자 책사인 에곤 바 장관(특사)과 함께 ‘동방정책’을 내걸고 새 국제질서를 만들어갔다. 1970년 사회주의 맹주국 소련과 수교한 것을 시작으로 1971년 폴란드를 거쳐 1972년 동독과 ‘특수 관계’를 맺고 교류에 나선다. 이어 중도우파 헬무트 콜 총리는 중도좌파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더욱 확장해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통일의 주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브란트가 정치적 정적이지만 콜 총리는 그를 멘토로 모시고 평화통일을 일구어갔다. 우리 지도자와 독일 정치 리더의 가장 큰 차이는 독일은 동서독 실핏줄 연결에 올인해 누가 집권해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고, 남북은 정상들끼리 만나 이벤트만 벌였다. 둘째, 동독 주민들의 민주화 운동(‘우리는 인민이다’)에 이어 통일운동(‘우리는 하나다’)이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에서 시작한 촛불운동은 동독 전역으로 확장되어 엑소더스인 대거 탈출과 함께 남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정권과 투쟁하기 시작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헬무트 콜 총리는 ‘동물적 감각으로’ 전광석화 같은 통일 프로세스를 주도했다. 구동독 주민들이 통일의 주체이기 때문에 ‘흡수통일’이라는 용어를 경멸한다. 셋째, 프랑스·미국 등 우방의 외교적 지원이 있었다. 이에 ‘독일 6자 회담’이 성공할 수 있었다. 동서독과 전승국 미·영·프·러 6자가 만나 평화통일을 논의했고 콜 총리가 이니셔티브를 쥐었다. 넷째, 소련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미하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다. 독일인들은 ‘지금 러시아의 푸틴이라면 통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자위한다. 독일 지도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871년 독일 첫 통일을 달성한 철혈 재상 오토 비스마르크는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고 말했고 후예들은 용기 있게 그렇게 행동했다.
일극에서 다극으로 국제질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지난 12월 5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발표했다. 향후 4년간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가이드라인’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에 충실한 4대 목표를 제시했는데 자국 국민과 국가 보호, 미국 번영은 성장, 군사력·경제적 힘을 통해 평화, 그리고 세계 영향력 확대 등이다. NSS에서 유럽연합(EU)과 현 집권정당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EU가 “잘못된 이민정책으로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면서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EU와 현 중도좌우파 정부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친유럽연합(EU)·친이민·중도 성향인 현 정부들이 “유럽 문명을 삭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 이민정책으로 가면 정체성을 잃고 비유럽인의 대륙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를 막기 위해 ‘애국정당’을 지원하는데 극우 영국의 개혁당, 독일의 AfD, 프랑스의 국민연합 등으로 반EU이자 친러시아·반우크라이나 지원 등을 내세우고 있다. 둘째, 초국가기관 EU가 자유와 주권을 훼손하고 언론 자유를 검열하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짓밟고 있다”고 비난한다. EU는 엘론 머스크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X에 1억4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J D 밴스 부통령은 X에서 EU가 “미국 기업을 공격하고, 언론의 자유를 해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트럼프 방식에 유럽은 크게 우려한다. 트럼프는 “나토가 끊임없이 확장하는 동맹”이라면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푸틴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반대한 것이다.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거대 식물공룡 유럽이 스스로 방어하고 푸틴을 상대하라는 것이다. NSS에 대한 유럽 반응은 극과 극이다. 유럽의회 이탈리아 브란도 베니페이 의원은 “EU에 대한 정면 공격”이라며 흥분했다. 반면 트럼프 최고지지자인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미국과 러시아 같은 강력한 선수들이 협상하고 거래하지만 허약한 유럽은 말만 한다”고 조롱한다. 그는 EU의 우크라이나 전쟁지원을 비판하고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종식 협상을 칭찬한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NSS는 미국 ‘라이벌’로 규정한다. 트럼프는 “중·러와 치열한 군사적·정치적·경제적 경쟁을 수용한다”면서 “미국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냉전 시기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우리가 이기고, 그들이 진다”고 표현했듯이. 하지만 트럼프가 중국과 러시아을 대하는 결에 차이가 있다.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상거 칼럼니스트는 “중국은 자신들 목표에 따라 국제규칙을 변경하려 들지만 러시아는 그럴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진단한다.
미국 NSS와 중국의 군비백서는 과거 중심축인 대서양 유럽에서 인·태 지역으로 옮겨오고,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해 한반도까지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을 봉쇄하고 러시아와 관계를 복원하려는 트럼프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트럼프가 북핵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과 중국 군비백서에 따라 북한 비핵화 이슈는 국제무대에서 잠수할 수 있다. 격동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미들파워 우리가 나설 시기다. 독일은 ‘6자 회담’으로 유럽의 새 질서와 평화통일에 성공했듯이 정전체제를 끝내고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이라는 이슈 해결에 전념하는 ‘신 6자 회담’을 주도할 때다. 1969년 독일 브란트 총리의 에곤 바 장관, 1972년 ‘핑퐁외교’ 주역 닉슨 대통령의 헨리 키신저 장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한반도 특사’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특사를 임명할 것인가!
김택환 원장(미래전환정책연구원)
국가비전전략가로 문명을 공부하고 있다. 독일 본(Bonn)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방문학자를 지냈다. 중앙일보 기자, 대학 교수를 거쳤다. <미중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 미래> 등 20권 이상을 저술한 작가이자 국회·삼성전자 등에서 350회 이상 특강한 유명 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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