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장기 국채금리가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장기채 쇼크에 국내 증시가 또다시 폭락했다. 미국 재정 적자 우려와 인공지능(AI) 빅테크들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금리를 밀어 올린 가운데 금리 상승에 민감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폭풍 매도가 쏟아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7%, 9%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채 쇼크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데 무게를 둔다.
◆또 와르르 무너진 코스피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98.66포인트(5.80%) 내린 6471.17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7월 29일(-5.98%) 이후 최대 낙폭이다. 이날 지수는 전장보다 341.06포인트(4.96%) 내린 6528.77로 개장한 뒤 장 초반 6.83% 급락한 6400.81까지 밀려났다.
장 초반 지수가 폭락하자 오전 9시 6분 유가증권시장에서는 프로그램 매도호가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이번이 25번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4조242억원, 1조7926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개인이 5조6403억원을을 순매수하며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지수 방어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닥 지수도 전 거래일 대비 9.74포인트(1.17%) 내린 824.46에 장을 마감했다.
증시 폭락의 진원지는 미국발 장기 국채금리 급등이다. 간밤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연 5.33%대까지 올라 2007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금리도 연 4.75% 수준까지 올랐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도 장중 2.9%를 돌파하면서 30년 만에 최고치를 고쳐 썼다.
장기채 금리 급등은 미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확대 우려가 일차적 원인으로 꼽힌다. 미 국가부채가 40조 달러 돌파를 앞둔 상황에서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군사비 지출, 사회보장 비용 증가로 시장이 요구하는 기간 프리미엄(장기채 보유에 따른 초과 수익률)이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를 위한 대규모 장기 회사채 발행이 쏟아지며 채권 시장에 수급 부담을 더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데이터센터 구축 및 AI 반도체 수급을 위해 10년 이상 장기채 발행을 늘리면서 국채와 자금 조달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장기 금리가 급등하자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반도체 및 AI 밸류체인 종목에 타격을 가했다. 간밤 미 증시에서 마이크론(-7.0%) 등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4.98% 급락한 여파는 국장으로 전이됐다. 이날 삼성전자(-7.82%)와 SK하이닉스(-9.75%)가 폭락했고 SK스퀘어(-11.54%), 삼성전기(-3.68%), 현대차(-4.83%) 등 주요 대형주가 일제히 무너져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환율은 11개월 만에 1300원대
증시가 패닉을 보인 와중에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약 11개월여 만에 1300원대로 내려앉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종가 대비 14.1원 내린 1397.7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약 11개월 만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 달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며 달러화가 약세를 보인 영향이다. 수출업체의 달러화 매도 물량이 유입된 점도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금리 쇼크 여파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 통화정책 변수보다 국가 재정 적자와 부채,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이라는 구조적 악재가 장기 금리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일 금리 동조화 현상과 이에 따른 일본계 자금의 환류(리패트리에이션)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일본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엔저에 따른 헤지 비용이 증가하면서 해외에 투자됐던 일본 생명보험사 및 연기금 자금이 일본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며 "일본계 자금이 미국 국채 매입을 줄이거나 매도하면 2022년 영국에서 발생했던 '트러스 쇼크'와 같은 금리 발작이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재현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기백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글로벌 장기 금리의 동반 상승은 성장주의 할인율을 높이고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 부담을 부각해 증시 반등을 멈춰 세웠다"며 "채권 시장의 불확실성이 당분간 증시 상단을 제한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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