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제철이 추진해 온 미국 철강 대기업 US스틸의 인수합병이 1년 반에 걸친 교섭 끝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어려운 협상을 끝내 마무리한 일본제철의 ‘집념’을 향한 박수가 쏟아지는가 하면, 미국 정부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황금주’의 존재가 향후 계속해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사실상 허용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일본제철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발표 직후 미국 정부와 ‘국가안보협정’을 맺었다. ‘국가안보협정’에는 일본제철이 2028년까지 약 110억달러(약 15조원)를 현지 철강 시설 등에 투자하고, 핵심 경영 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미국 정부에 부여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일본 제철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거액의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일본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후 US스틸 인수 승인을 받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제안하며 설득해왔다. 일본제철이 트럼프 행정부 승인을 얻기 위해 US스틸에 제시한 투자액은 총 141억달러(약 19조원)다. 이는 기존에 공언한 투자액의 5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화제가 됐다.
황금주에 거액 투자까지 제시하며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를 강행한 배경은 미·중 대립으로 인한 세계 분열 양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으로의 전환이 필수 불가결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제철은 그동안 수출에 의존하지 않고 수요가 있는 장소에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전략을 펴왔다. 닛케이는 일본제철이 “미국을 축으로 한 성장 전략에 나서게 됐다”면서 “전통적인 내향적 체질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 제품 관세를 50%까지 올린 것도 US스틸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려 한 요인이라고 해설했다.
일본제철은 앞서 1년 반에 걸친 협상 과정 동안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인수 합병을 차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한때 난항을 겪기도 했다. 일본제철은 2023년 12월 US스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지만 85만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미국철강노동조합(USW)이 일관되게 반발했고,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표를 노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후보 모두 인수 계획에 반대해 정치 문제로 비화했다.
최종 판단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맡겨져 결국 올해 1월 3일(현지시간), “국가 안보와 매우 중요한 공급망에 위험을 초래한다”며 인수를 사실상 불허했다. 이로부터 US스틸 인수 문제는 미·일의 ‘국민 감정’을 건드리며 양국 관계의 뇌관이 되어왔다. 그러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0일 취임한 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는 2월 7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간 강경하게 반대해 온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에 대해 “인수 대신 투자라면 허용하겠다”며 발언의 톤을 다소 누그러뜨렸다.
이후 5월부터 US스틸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제철이 미국 정부에 ‘황금주’를 부여하는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결국 일본제철이 US스틸의 보통주 전량을 취득하고 ‘황금주’를 미국 정부에 발행하는 방식으로 매듭지어졌다.
1년 반에 걸친 인수합병 드라마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완전 자회사’로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지만, 우려 또한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협정 위반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가정해 일본제철이나 US스틸에 대해 “추가 명령을 내릴 권한을 보유한다”고 명시했다. 무엇보다 황금주의 존재는 경영에 제약이 될 전망이다. 닛케이는 “이사회 과반수를 미국인으로 구성하고, 미국 정부의 동의 없이 US스틸의 생산 능력을 감축하지 않는 등 많은 양보를 강요받은 것도 사실로, 향후 미국 정부와의 협력이 관건이 될 전망”이라고 짚었다.
이밖에도 미국에서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상징적인 명문 기업인 US스틸을 일본제철이 인수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강하다. 일본제철은 회사명이나 본사를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사회 과반수를 미국 국적자로 구성할 것이라고 이미 밝혔지만 인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 내 여론을 고려한 어려운 균형 잡기가 일본제철에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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