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미 정부 당국자 및 협력업체들과 함께 대형 원전 10기 건설을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원자력 산업 재건 의지를 천명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배로 확대하고, 2030년까지 대형 원자로 10기의 건설을 시작하며, 신규 원전 인허가를 18개월 이내에 마치도록 규제 프로세스를 대폭 단축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댄 섬너 웨스팅하우스 임시 최고경영자(CE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승인된 원자로 설계, 다양한 공급망, 최근 조지아주에서 원자로(AP1000) 2기 건설 경험을 가진 웨스팅하우스가 대통령의 정책을 실현하는 데 독보적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와 적극 협력하고 있으며 대출 프로그램 사무소와의 주요 접점도 포함된다. 이는 건설에 자금 조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명령에는 대형 원자로 10개가 포함돼 있다. 우리는 (10개) 모두를 AP1000 원자로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며 "우리 고객사,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보유 회사), 기술 기업, 공급업체들이 모두 함께 정확히 어떻게 건설할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웨스팅하우스는 1000메가와트(MW)급 원자로를 설계·건설할 수 있는 기업 중 하나다. FT는 웨스팅하우스가 해당 분야에서 몇 안 되는 기술력을 갖춘 업체라고 평가했다.
경쟁 구도도 웨스팅하우스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FT는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이 미국에서 원자로 설계 승인을 받았지만 현지에서 대형 원전을 시공한 이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EDF는 이미 10여 년 전 미국 원전 시장에서 철수했고, 러시아 로사톰과 중국 원자력그룹(CGN)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사실상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히타치와 합작한 GE 버노바는 수십 년간 대형 원전을 짓지 않았고, 현재는 소형모듈원자로(SMR)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원전 10기 건설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애덤 스테인 미국 브레이크스루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에서 승인된 원자로 설계가 소수에 그치는 점이 웨스팅하우스에 유리하다면서도 대형 원자로 10기 건설은 매우 야심 차고 도전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다수의 에너지 건설 프로젝트가 비용 회수를 보장하지 않는 전기 시장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지금 미국 시장은 대형 원전 건설에 가장 유리한 시장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또 "행정명령은 직접적인 명령이 아니다. 발전회사들이 신규 원전 건설에 투자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고, 주 정부의 공공유틸리티위원회가 (원전) 건설 비용을 요금에 전가할지를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는 대형 원전 건설을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막대한 사업비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원전 10기를 짓는 데 최소 750억 달러(약 102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건설 지연이나 예산 초과를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실제 웨스팅하우스는 조지아주 보글(Vogtle) 3·4호기 건설 당시 일정 지연으로 비용이 예상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바 있다.
이에 대해 섬너 CEO는 미국과 중국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계는 이미 고정(frozen)된 상태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모듈형 원전 건설을 실제로 해본 유일한 기업이며, 그 과정에서 얻은 모든 실전 경험이 앞으로의 공급 모델에 완전히 반영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쟁구도를 이룰 수 있는 SMR 개발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케일(NuScale)은 77MW급 SMR 모듈 12기를 통해 총 924MW의 발전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SMR 개발업체 홀텍의 켈리 트라이스 사장도 320MW급 SMR을 두세 개 묶어 대형 원자로와 경쟁할 수 있다며 “더 낮은 비용, 적은 인력, 간편한 유지관리로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어 대형 원전과 정면 승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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