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업계에 따르면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 안보 이슈가 맞물리면서 세계 각국의 탈원전 기조가 점차 완화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원전 산업 활성화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원자력 에너지 정책 대전환에 나섰다. 인공지능(AI) 서비스와 전기차 이용이 늘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원전으로 이를 대응하겠다는 취지에서다. 2050년까지 미국 내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 100기가와트(GW)에서 400GW로 4배 확대하고, 최소 2~3년 이상 걸렸던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신규 원자로 인허가도 18개월 이내로 단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핵연료 공급망을 미국 내로 재편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탈원전 흐름을 주도하던 유럽도 ‘원전 유턴’ 바람이 불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안보가 중요해지면서 주요국들이 원자력 발전을 청정에너지로 재정의하고 재도입을 검토하는 등 ‘탈(脫) 탈원전’에 가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기존의 탈원전 입장을 철회하며 원전 기술 확보와 공급망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선언했고, 체코·폴란드·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신규 원전 건설 또는 노후 원전 대체를 추진 중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도 원전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의 원전 기조 변화는 국내 원전 설비 및 시공업체에 호재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2010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을 수주한 현대건설을 비롯해 국내 유수 건설사들은 해외 대형 원전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원전 EPC(설계·조달·시공) 역량을 입증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은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원전 사업 확대 기회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 1~4호기 수주를 통해 한국형 원전의 해외 첫 수출을 일군 현대건설은 국내외 한국형 대형 원전 34기 중 22기를 시공하며 경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미시간주 팰리세이드 원전 부지에 SMR-300 1호기 착공을 앞두고 있는 등 SMR 시장 선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MR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원전 시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35년 전세계 SMR 시장 규모는 6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도 글로벌 SMR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일본 대표 중공업기업인 IHI사와 협력해 SMR 시설 공사의 핵심인 주요 벽체를 강판 콘크리트 모듈화(조립식) 공법으로 제작, 실증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공사 현장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기존 공법에서 벗어난 것으로, 공사 기간 단축과 안전성, 품질 향상, 비용 절감 부분에서 기존 공법보다 장점이 커 사업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삼성물산은 루마니아, 스웨덴, 에스토니아 등과 SMR 프로젝트 사업 협력을 체결하는 등 유럽 원전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으며, 이번 실증을 통해 글로벌 SMR 프로젝트 참여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우건설의 경우 한국수력원자력이 주도하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건설 프로젝트에서 시공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앞서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프로젝트를 수주해 2010년 착공, 2016년 첫 가동에 들어간 바 있다. DL이앤씨는 미국 SMR 개발사 엑스에너지(X-Energy) 투자를 진행하며 SMR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원전 시장에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며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쌓아왔다"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원전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해외 원전 수출에 국내 건설사들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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