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②] 세르주 블로크 "상상은 나이가 아니라 자유에서 나온다"

세르주 블로크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선 하나, 여백 하나에도 삶의 깊은 통찰과 유머가 깃들어 있다. 그에게 그림은 일상이자 놀이이며,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창이다. ‘창작’은 특수한 재능이 아닌 모두에게 내재된 능력이며, 그림을 그리는 손은 곧 마음과 생각의 연장선이라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없다. 그는 어른이 된 지금도 자신이 어른인지 잘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한다. 상상은 나이가 아닌 자유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그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위로와 웃음을 전하고자 한다.

책과 신문, 어린이와 어른, 유머와 철학 사이를 넘나드는 그의 예술은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손끝에서 탄생한 수많은 선들은, 결국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인 기록이 된다.

세르주 블로크는 말한다. “상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용기다.”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응원이다.

 
세르주 블로크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세르주 블로크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어른이 된 지금, 상상력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
-저도 어른이 된지 모르겠다(하하).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크기만 다를 뿐이다. 창의성은 신비로운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창의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손으로 뭔가를 잘만드는 사람도 창의적인 거고 욕실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창의적인 거다. 일상 속에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아동도서 등)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
- 제가 어린이와 관련된 책을 만들 때 이미 세상에 많은 책이 있는데 왜 또 한권의 책이 있어야 되는지, 거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건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평화나 인생, 전쟁 등 제가 확실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은 어떤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가
- 지금 작업 하고 있는 책에 대해 생각을 많이하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른이 아니었다 라는 주제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옛날 아이들은 어땠는지 들려주고 싶다. 옛날에는 차가 지금보다 더 작았지만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녔었다는 것과 옛날에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검정색 판을 얹어서 들어야 됐다는 이야기, 전화를 하려면 선까지 가져가야했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만큼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여러 작가들과 협업하셨는데, 특별히 인상 깊었던 협업이 있나. 협업 요청에 응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 여러 글 작가들과 작업할 행운이 있었어서 많은 작가들이 기억에 남는다. 다비드 칼리라는 글 작가과 작업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굉장히 메시지가 강한 작가였다.
수지모건 스턴이라는 글 작가와도 작업을 여러개 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협업에 있어서 중요한 건 경이로움과 신선함이 있어야 되고 작던 크던 즐거워야 된다. 서로가 공존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늘 잘되는 건 아니다.
 
 
언론(예: 뉴욕 타임즈, 르몽드 등)과의 작업은 그림책 작업과 어떻게 다른가
-책은 오래 남고 보존된다. 간직하고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반면에 신문은 보고 버려지는 순간적인 존재다. 신문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잘팔려봐야 1만부~3만부 정도이지만 신문은 10만부~100만부까지 찍히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특히 미국 신문에 그림 그리는게 좋았는데 판형이 엄청 크고 종이가 색달라서 미국 신문과 일할 때 재밌었다. 신문은 역사가 오래됐기도 하고 비싼 종이가 아니라 일회용 종이다. 요즘에는 SNS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신문이 가지고 있던 매력이 없어지는게 안타깝기도 하다. 책과 신문의 공통적인 건 생각을 공유 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님의 작업에서는 유머와 철학이 공존한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
- 요즘은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리는 거다. 현실이 우리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현실을 보고 실망하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계속 그리게 되고 그림 속에서 유머가 있어야 되지 않나 싶다.
 
오늘날의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그림과 이야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게 역할이다. 세상이 복잡한 건 오늘날만의 일은 아니다. 20세기 초, 1900년대 초에도 역시 복잡하고 악몽의 시대였다. 지금 시대는 20세기처럼 큰 전쟁이 있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떤 행위인가. 일처럼 느껴지나, 아니면 삶의 한 방식인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기준이 궁금하다
- 그림을 그린다는 건 제게 즐거움이고 노동인지는 잘모르겠다. 제가 존경하는 쉘 실버스틴이라는 작가님께서 모든 선을 아름답다고 했다. 모든 선을 아름답고 창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잘그린 그림이나 명화와는 반대되는 사람이라고 본다. 자주 실패하는 것에서 진정한 의미가 있고 명작이 주는 내용보다 실패한 그림이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같은 그림을 여러번 그리면 처음 그렸던 그림이 서툴러 보여도 제일 나아보일 때가 많다.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시나. 창작의 막힘은 어떻게 극복하시는 편인가
- 안될 때도 그냥 하다 보면 된다. 잘 안되는 것 같아도 잘 되고 있다고 믿으면 된다. 재즈 음악처럼 즉흥적인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게 막혔다고 느끼는 게 적은 편이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오셨는데, 그 시간 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소가 계속 바뀌고 그림을 그리는 재료나 바탕이 계속 바뀌고 매체가 바뀌기 때문에 매순간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즐거움을 느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디지털 도구가 발달한 시대에 여전히 손으로 그리는 방식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있나
- 컴퓨터가 발명 되기 전부터 그림을 그린게 다행이다(하하). 그림은 손으로 그리지만 컴퓨터를 잘 이용하는 편이다. 컴퓨터나 태블릿에 그리는 것보다 종이에 그리는게 더 편한 편이다. 사람이 동굴에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행위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선사시대에 동굴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보면 그 사람들도 꽤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예술가는 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창작합니다. 선생님에게 ‘기억’은 어떤 재료인가
- 많은 훌륭한 선배 작가들의 인생을 탐구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나를 늘 기억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낙서 하나가 훗날 작품이 되기도 하나. 오래 묵은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보는 편인가. 사람들에게 작가님의 작품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나
- 그런 경우가 많다. 과거에 끄적였던게 지금 도움이 되기도 하고 옛날에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보는 편이다. 음식과 틀려서 유통기한이 없다. 오늘날에 이미지가 넘쳐나기 때문에 과연 20년 후에 제가 작업한 작업들이 사람들 기억 속에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제가 40년 전에 했던 작업들이 아직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기억해주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미지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잘 모르겠다.
 
세르주 블로크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세르주 블로크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작가님의 꿈은 뭔가
- 평화다. 사람들이 지금보다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르주 블로크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세르주 블로크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