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전세계 '올해의 차' 휩쓴 현대차그룹의 두뇌...남양기술연구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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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경기)=한지연 기자
입력 2024-03-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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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환경풍동실
상용환경풍동실에서 내구성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실험실로 들어서자마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쨍한 햇빛과 숨이 턱턱 막히는 후텁지근한 늦여름 날씨, 거대한 바람줄기가 동시에 새어나왔다. 언뜻 영화 세트장 같은 이곳은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상용차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환경풍동실험실이다. 이곳에서 2층 버스 높이의 수소전기 트럭은 냉각, 열해, 연비, 모드 주행 등 혹독한 담금질을 거치고 있었다. 상부의 태양광 시스템, 바람을 일으키는 유로 시스템, 위험 사태에 대비한  화재 차단시설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 최대·최초 규모인 이 공간은 2021년 현대차그룹이 약 300억원을 투자 설립한 환경풍동실험실이다. 실험실 관계자는 "영하 40도~영상 60도에 달하는 실내온도, 습도(5%~95%), 시속 120km에 달하는 기류 등 세계 곳곳의 날씨는 물론 극한 환경까지 모두 재현가능하다"면서 "이 정도의 실험실을 갖추고 실제 테스트하는 곳은 현대자동차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남극부터 중동까지...세계 최초 상용환경풍동실

지난 27일 방문한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기술연구소의 상용환경풍동실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이 왜 세계 3대 '올해의 차'를 휩쓰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압도적 규모와 기술력을 자랑했다. 상용환경시험동 내 3개 시험실 중 하나인 상용환경풍동실은 내연기관 및 친환경 상용차(전기차, 수소차 등)를 연구하고 테스트하는 곳으로, 주행 환경시험을 위한 다양한 융복합 연구 장비들이 설치됐다. 환경풍동시험실에서는 냉각, 열해, 연비, 냉시동, 히터·에어컨, 충·방전, 동력, 모드 주행, 배기가스인증 등 실차 주행 성능시험을 종합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실제 풍동실 내부 천장 및 측면에는 태양광 장비가 설치돼 화창한 여름날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시험실 온도가 중동 지역 테스트 기준 온도인 45℃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45℃ 환경에 방치한 자동차의 실내 온도는 보통 60℃ 이상으로 올라가는데, 상부의 태양광 시스템이 이와 같은 온실효과를 동일하게 재현해 미국 현지 판매 조건으로 시험을 했다.
 
환경풍동시험실은 상용 전기차 개발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온도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는 전기차의 특성상 배터리 충·방전 및 냉각 성능 등 각종 성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험실에는 400kW급 초고속 충전기 3대가 마련돼 혹서, 혹한 상태에서의 배터리 충전 효율을 점검할 수 있다. 이외에도 수소차의 연비를 중량법으로 시험 가능한 수소 공급 전용 설비 또한 마련됐다. 장시간의 시험과 반복 재현성이 필요한 경우 로봇 드라이빙을 이용한 시험도 진행한다. 로봇을 이용한 평가는 사람의 운전 패턴과 유사한 재현성으로 신뢰성 높은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이날 현장에서는 고온 조건 테스트 시연과 함께 유동 가시화 시험을 실제로 지켜볼 수 있었다. 유동 가시화 시험은 풍동 내부에 가스를 분사시켜 차량 주변의 공기 흐름을 확인함으로써 공력성능 향상에 기여하는 테스트이다. 시험실 내부는 위험에 대비해 수소 방폭 설비로 됐으며,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감지기(열·연기·불꽃·수소 등)와 자진 소화 설비까지 갖췄다. 이강웅 상용연비운전성시험팀 책임 연구원은 "실험실의 희소성과 기술력 덕분에 국내 정부·학계 등은 물론 해외에서도 수많은 기업과 정부 기관이 협업을 위해 계속해서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 4축 동력계 시험실에 아이오닉 5가 올라가있는 모습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4축 동력계 시험실에 아이오닉 5가 올라가 있는 모습[사진=현대차그룹]

◆전기차의 심장...고성능 EV의 산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남양연구소는 1995년 출범한 현대차그룹 종합기술연구소로 신차 및 신기술 개발은 물론 디자인, 설계, 시험, 평가 등 기반 연구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연구소는 환경풍동실험실 외에도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배터리 분석실 △상용시스템시험동 등을 갖췄다.

이날 방문한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EV 핵심 구동계인 모터와 인버터의 성능을 사전 개발하고 실차 효율을 평가해 전기차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실도로에서 이뤄지는 주행 테스트와 달리 실내 시험 공간 내에서 가혹한 테스트를 반복해서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총 3곳으로 구성된 시험실 내부는 모터와 인버터를 측정하는 커다란 장비들이, 그리고 한쪽에는 현대차 아이오닉 5 차량이 장비에 맞물려 있었다. 곽호철 전동화구동시험3팀 책임연구원은 "모터 단품 시험부터 차량 양산까지 종합적인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3가지 동력계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동력계 장비의 개수에 따라 크게 1축과 2축, 그리고 4축 동력계 실험실로 나눠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1축 동력계 시험실은 모터와 인버터의 기본 특성에 대한 시험을 하는 곳으로 단품 시험이 이뤄지는 곳이다. 주로 차량 개발 초기 단계에 이뤄지는 시험으로 모터 시스템의 성능, 효율 개발과 함께 글로벌 시장용 제품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축 동력계 시험실은 모터와 인버터에 감속기, 구동축을 추가해 실제 차량의 구동계를 모사한 환경이 구축돼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오닉 5가 올라가 있는 4축 동력계 시험실은 실체 차량을 직접 구동해 사륜구동(AWD) 포함 구동계 전체의 시험 평가가 가능한 곳이다. 배터리 시뮬레이터를 사용했던 1, 2축 시험실과 달리 전기차에 탑재되는 실제 배터리를 직접 활용하며, 고객의 주행 환경과 동일한 조건에서 평가가 이뤄진다. 
 
특이한 점은 운전석에 두 발과 한 손이 달린 로봇이 배치돼 직접 기어, 액셀,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전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이 로봇은 가속과 제동을 위해 페달을 밟는 동작을 사람과 유사하게 따라 하고, 심지어 자동으로 변속까지 할 수 있다.

연구원이 장비를 가동하자 실제 아이오닉 5 차량 구동축에 연결된 장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차속에 따른 토크, 모터 온도, NVH 파형 등이 그래프로 나타났다. 차량 이용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운전 영역에 대한 효율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모습에서 차량 품질 확보를 향한 의지가 느껴졌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현대차그룹의 고성능 전기차 탄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실험실 관계자는 "일반적인 전기차와 달리 고성능 전기차는 가혹 조건에서의 주행을 고려해야하는데 시험실에서 아이오닉 5 N이 도달할 수 있는 시속 260km의 초고속 시험이나 극한의 부하 조건을 구현할 수 있다"면서 "이런 데이터 습득과 평가는 고성능 전기차 개발의 단초가 된다"고 설명했다.
 
◆완성도 높이는 미세한 격차는 소재 단계부터...배터리 분석실

또 다른 기초소재연구센터 소속 배터리 분석실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분석해 세부 구성 물질을 연구하는 곳이다. 배터리 셀을 구성하는 소재에 대한 정밀 분석을 통해 셀의 성능, 내구성, 안정성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 현대차∙기아가 자체 연구하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에 적용될 신규 소재에 대한 분석도 진행하고 있다.
 
배터리 분석실은 반도체 연구실을 방불케 했다. 온·습도가 철저하게 관리되는 드라이룸과 폭발 가능성에 대비한 셀 해체실 등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먼저 분석을 위해 배터리가 처음 옮겨지는 장소는 '셀 해체실'이다. 배터리 셀의 구조 파악과 구성 소재 분석을 위한 시료 채취 작업이 진행된다. 배터리 셀 해체 시 발생할 수 있는 화재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연구소 최초로 셀 해체 전용 공간도 구축했다. 
 
채취된 시료는 드라이룸의 '전처리실'로 옮겨진다. 이곳에서는 정밀 분석 장비에 시료가 장입될 수 있도록 글로브 박스 내에서 시료 절단 및 샘플링 작업이 진행된다. 샘플링 된 시료는 이후 '메인 분석실'로 이동해 레이저 광원을 통해 배터리 구성 소재에 대한 재질 및 화학구조 정밀 분석이 진행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배터리 소재 기술에 대한 연구가 차세대 배터리 개발의 출발점"이라며 "소재 단계에서 그 특성을 이해하고 개선하면 문제점을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으며, 최적의 소재 개발을 통해 전기차의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처럼 미세한 격차를 만들기 위한 현대차∙기아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용시스템시험동 - 로봇을 활용해 쏠라티의 개폐내구 시험이 진행되는 모습
상용시스템시험동에서 로봇을 활용해 쏠라티의 개폐내구 시험이 진행되는 모습[사진=현대차]

◆운전자를 위한 1%의 환경도 놓치지 않는다...상용시스템시험동

상용시스템시험동은 차량 개발 및 평가에 필요한 300여 가지 시험을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4400여 평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한다. 국내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는 실차 거동 재현과 필드 환경을 반영한 차량 평가 검증이 한창이었다. 차체∙안전, 조향∙현가, 구동∙제동, 품질∙내구, NVH 등 크게 다섯 가지 구역으로 이뤄졌다.

차체∙안전 구역 로봇시험실에서는 로봇 팔이 차 문을 일정한 강도로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부품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BSR(Buzz, Squeak, Rattle) 시험실은 사방이 삼각뿔 모양의 흡음재로 둘러싸여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했다. 차량 부품 간 발생하는 민감한 소음을 잡아내는 공간이다.

조향∙현가 구역으로 넘어가자 거대한 장비들이 대화가 어려울 정도의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유압 액추에이터로 구동되는 육중한 로봇이 전기버스 일렉시티의 서스펜션을 연신 흔들며, 서스펜션의 내구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위치한 또 다른 장비는 6축 무빙 기계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의 마운트를 걸고 실제 주행과 마찬가지로 거세게 흔들며 충격을 주고 있었다. 각종 연료전지시스템 외에도 배터리, 모터, 감속기 등 수소전기 상용차에 장착돼 있는 모든 부품의 내구성을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상용시스템시험동의 마지막 구역은 NVH 다이나모 무향실이다. 실험실로 입장하자 1만3000개의 흡음재로 둘러싸인 7.5m 높이의 방음벽이 눈에 들어왔다. NVH 구역에서는 엔진 구동계 소음부터 실내외 소음까지 실제 차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소음을 평가한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에는 수소전기 유니버스의 소음에 대한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상용차의 누적 주행거리는 100만km를 훌쩍 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내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욱 꼼꼼하게 문제를 찾고 해결하기를 반복해야 한다"면서 "극한의 환경을 상정해 시험을 거듭하며 개선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현대차∙기아의 자동차들이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는 저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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