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학개론] 그제·어제 급등주, 오늘은 왜 안 보이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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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철 기자
입력 2024-01-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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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주식 투자자의 목표를 단순화하면 '내 자산을 늘려 줄 종목'을 찾는 것입니다. 배당률이 높은 우량 기업의 주식을 꾸준히 매수해서 두둑이 배당금을 챙기는 것부터, 가격이 급등할 것 같은 기업을 찾아 투자하고 빠르게 익절매하는 '단타' 매매까지 방법은 다양합니다. 며칠 연속으로 상한가에 도달한 종목에 관심을 가져 봐도 좋겠네요.

투자자들은 종종 '가격제한폭'에 걸린 종목들을 보게 됩니다. 가격제한폭은 주식시장에서 거래일 하루 동안 개별 종목 주가가 오르거나 내릴 수 있는 한계치를 뜻하는데요. 우리나라는 한 종목의 가격이 전일 종가의 30%까지 오르거나 30%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30%까지 오른 가격을 '상한가', 떨어진 가격을 '하한가'라고 하는 거죠.

예를 들어 그제 종가보다 어제 가격이 30% 올랐고, 어제 종가보다 오늘 가격도 30% 오른 주식이 있다? 그제 10만원짜리 주식이 이렇게 이틀 연속 상한가에 닿았다면 이제 주가는 16만9000원입니다. 이틀 전에 이 종목을 미리 눈여겨볼 계기가 있었고 제대로 투자도 해 놓았다면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수익률(69%)을 거두는 셈입니다.

일례로 최근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이 있었어요. 아파트 월패드 같은 스마트홈 솔루션 제조 전문 중견 기업인 현대에이치티(현대HT)예요. 현대에이치티는 '현대통신산업'이란 이름으로 1998년 설립돼 2000년 코스닥에 입성했는데 이후 '현대통신'이 됐다가 2021년부터 현대에이치티라는 이름을 쓰고 있죠.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15일 2거래일 연속 장중 상한가를 기록해 11일까지 종가 기준 6000원을 밑돌던 주가가 1만원 가까이 뛰었어요. 지난 16일에도 장중 1만1440원까지 올랐다가 8000원대로 내려왔죠. 주가가 오르는 게 잠시나마 당사자인 기업에 좋은 일이었겠다 싶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일단 이 기업의 IR 담당자도 "주가가 왜 오르는지 모르겠다"는 상황이었거든요.

현대에이치티의 가격 급등이 시작된 12일 오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삼성넥스트가 투자한 로봇 기업(1X테크놀로지스)의 시리즈B 투자 유치와 휴머노이드 로봇 출시 계획 소식이 알려졌을 때입니다. 그래서, 앞서 이 분야 선도업체(유비테크로보틱스)의 국내 파트너들이 현대에이치티와 스마트홈 네트워크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 재조명을 받았을 수 있어요.

현대에이치티와 삼성넥스트를 투자자로 맞이한 로봇 기업은 아무 상관이 없지만, 굳이 연결고리를 찾자면 이렇다는 거예요. 이게 맞는지 틀렸는지 모르지만, 이 순간 이후 연이틀 거래 기간 현대에이치티 주식에 뭉칫돈이 몰렸고요. 주가가 급등하는 과정에서 현대에이치티는 오히려 좀 곤란한 처지가 됐습니다. 한국거래소의 시장감시 업무인 '시장경보제도' 때문입니다.

법제처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투기적이거나 불공정거래 개연성이 있는 종목' 또는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종목' 등에 대해 시장경보제도를 운영해요. 이 제도로 주가가 일정 기간 급등하는 종목을 투자 주의 종목→투자 경고 종목→투자 위험 종목 등으로 지정하는 단계를 거치는데, 이때 해당 종목에 '매매거래 금지' 등 불이익을 줄 수 있어요.

실제로 한국거래소가 기업공시 채널(KIND)을 통해 지난 16일 하루 동안 현대에이치티를 '투자 주의 종목'으로 지정했다고 밝혔어요. 투자주의종목 지정 사유는 연이틀 상한가를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라 △15일 종가가 5일 전 종가 대비 60% 이상 올랐다는 점 △15일 종가가 당일을 포함한 최근 15일 종가 중 가장 높다는 점 △5일 전 기준 주가 상승률이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의 5배 이상인 점 등이었고요.

현대에이치티가 상한가 행진을 더 이어가서 주가가 급등하면 불이익의 수위가 더 강화되는 '투자 경고 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어요. 다행히 투자 주의 종목에 지정된 이후 상한가를 기록하진 않고 있는데요. 공시에 따르면 한국거래소가 현대에이치티에 대한 투자 경고 종목 지정여부를 오는 29일까지 계속 살펴 보겠다고 하니 회사는 안심할 수가 없죠.

이런 전례가 있어요. 대상홀딩스 우선주(대상홀딩스우)가 지난달 1일 가격제한폭(29.98%)만큼 주가가 오른 2만8400원에 거래를 마치면서 투자 경고 종목에 지정됐고 지난달 4일 하루 거래를 정지당했어요. 당시 이 종목은 회사 사업과 무관하게 투자자 사이에서 '한동훈 테마주'로 묶여 관심을 모았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할 것이란 소문에 휩쓸린 여러 '정치 테마주' 중 하나였어요.

대상홀딩스는 임세령 부회장과 연인 관계인 이정재 배우와 한동훈 위원장의 학연(현대고교 동창) 때문에 엮인 사례입니다. 한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을 지낼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울 서초구 소재 고급 갈빗집에서 두 사람이 식사를 함께하고 찍은 사진이 공유됐죠. 비슷한 이유로 이 배우가 정우성 배우와 함께 투자하고 최대 주주 자리에 오른 와이더플래닛의 주가도 지난달 7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죠.

그다음은 어떻게 됐냐고요? 와이더플래닛 주가를 보면 12월 내내 급등하다가 한 위원장이 '불출마 선언'과 함께 취임한 연말부터 빠르게 내리막을 탔죠. 대상홀딩스우 주가는 11월 말부터 초고속으로 올랐다가 중순부터 오락가락하더니 역시 연말부터 대체로 내리막길이고요. 정치 테마주로 흥망성쇠한 이번 연말·연초 장세에 투자자 중 일부는 흥미진진했겠지만, 대다수는 우울했을 것 같네요.

어쩌면 기업의 사업 내용과는 무관하게 소유주·경영인과 특정 정치인 간 관계 때문에 주가가 급등락하는 정치 테마주 현상은 가격제한폭을 두고 시장을 감시하며 변동성을 낮추려는 당국과 거래소의 노력을 무색게 합니다. 당사자 기업과 여러 시장 참여자에게도 해로울 뿐이고요. 아무리 국내 증시의 격언 중 하나가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라'지만, 소문도 가려들을 줄 알아야겠지요.
 
주요 테마주 시세와 위탁매매 미수금 추이 그래픽아주경제
주요 테마주 시세와 위탁매매 미수금 추이 [그래픽=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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