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 발행 계획을 공식화하자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강세를 나타냈습니다. '호재'라는 평가는 많지만, 왜 호재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ADR은 일반적인 미국 상장과 무엇이 다르고, 기업들은 왜 직접 상장 대신 ADR을 선택하는 걸까요.
ADR, 주식과 동일한 효력으로 거래한 증서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 상장을 위해 최대 45조4500억원 규모의 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할 예정이라고 지난 24일 공시했습니다. 앞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ADR 상장을 위한 등록신청서(Form F-1)를 비공개 제출한 지 약 석 달 만에 이를 공식화한 것입니다.
회사는 기존 발행주식의 약 2.5%에 해당하는 1779만주의 신주를 발행할 예정이며, ADR 상장 예정일은 다음 달 10일입니다. 이번 ADR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기기계장치 취득에 활용될 계획입니다.
ADR은 미국 내 예탁 기관이 해외 기업의 주식을 보관한 뒤 이를 기초로 발행해 미국 증시에서 주식과 동일한 효력으로 거래한 증서를 말합니다. 확 와닿지 않는 개념인데요, 해외 거주자가 한국 쇼핑몰 상품을 구매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미국 소비자가 한국 쇼핑몰에서 직접 물건을 사려면 한국 결제수단과 배송 절차 등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현지 플랫폼이 한국 상품을 미리 확보한 뒤 미국 사이트에서 달러로 판매한다면 소비자는 미국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것처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ADR도 이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미국 투자자는 미국 증권계좌로 ADR을 거래하지만, 실제 기초자산은 한국에 상장된 SK하이닉스 주식입니다.
거래 유동성 확대…직접 상장보다 절차·비용 절감
기업 입장에서는 국내 상장을 유지한 채 미국 자본시장에 있는 투자자들의 투자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거래 유동성이 확대되고, 해외 기관투자자 기반도 넓어질 수 있겠죠. 별도의 직접 상장을 추진하는 것보다 절차와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ADR의 장점으로 꼽힙니다.
이러한 ADR은 미국에서의 거래 방식과 자금조달 여부에 따라 세 단계 레벨로 구분됩니다. 레벨 1은 미국 장외시장(OTC)에서 거래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해외 브랜드가 미국 백화점에 팝업 매대를 여는 것과 같습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판매 규모나 활동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레벨 2는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 등에 상장할 수 있지만,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백화점에 정식 매장을 열어 고객은 크게 늘었지만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금까지 받는 단계는 아닌 것입니다.
레벨 3은 미국 거래소 상장과 함께 신주를 발행해 미국 투자자로부터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미국 공모를 통해 자금을 모집한다는 점에서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성격을 갖지만, 미국 회계기준과 공시 의무 등 규제도 가장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정식 매장을 열고 동시에 투자설명회를 열어 신규 투자자들로부터 사업 확장 자금까지 유치하는 단계와 같습니다. 이번 ADR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인 SK하이닉스의 ADR 형태는 레벨 3에 해당합니다.
TSMC 성공 사례 재현 주목…"마이크론과 밸류 격차 좁힐 수도"
SK하이닉스는 다음 달 6일 증권신고서의 효력이 발생하면 투자설명서를 제출하고, 같은 날 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이후 9일까지 해외 투자기관을 대상으로 로드쇼를 진행한 뒤, 10일 공모가격을 확정하고 대표주관사와 인수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TSMC의 ADR 성공 사례를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TSMC는 1997년 뉴욕증권거래소에 ADR을 상장한 이후 미국 투자자 기반을 크게 확대했고,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미국 시장을 주요 자금조달 창구 중 하나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ADR 상장을 통해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향후 각종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와 글로벌 액티브펀드의 투자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나스닥 상장 이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나스닥 계열 지수와 미국 반도체 관련 ETF 편입 가능성도 기대됩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지면 경쟁사인 마이크론과의 밸류에이션 격차를 좁힐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시장에서 동일한 투자자층을 대상으로 평가받게 되면 국내 시장에서도 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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