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 러·우 전쟁에 웃고 이·팔 전쟁에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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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4-01-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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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특수' 수에즈 운하, 홍해 긴장에 '꽁꽁'

  • 관광업도 타격…이집트 경제난 가중

2023년 12월 22일현지시간 MSC 컨테이너선이 이집트 이스마일리아에서 홍해를 향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2023년 12월 22일(현지시간) MSC 컨테이너선이 이집트 이스마일리아에서 홍해를 향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1956년 7월 26일 저녁, 가말 압델 나세르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오늘 밤 나는 이집트 국민을 대표해 (수에즈 운하) 회사 통제권을 쟁취한다. 우리가 굶어 죽는 동안, 이 제국주의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되찾겠다”고 외쳤다. 
 
그의 국유화 선언에 이집트 국민들은 열광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들로부터 얻는 연간 1억 달러의 통행세 수익을 사용해, 이집트 산업화에 쓸 전력을 생산할 아스완댐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에즈 운하가 이집트 경제 발전의 상징이 된 것이다.
 
나세르의 선언 이후 수에즈 운하는 세계 물류의 주요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무역량의 12%, 컨테이너선의 30%, 해상 원유 무역의 10%, 천연가스의 8%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다.
 
특히 ‘홍해-수에즈 운하-지중해 루트’는 아프리카, 아시아 및 유럽 상품 시장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항해 통로다. 전 세계 컨테이너선들의 핵심 교역로인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수에즈 운하가 꽁꽁 얼어붙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를 통과해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들을 잇달아 공격하면서, 세계 주요 해운사는 물론이고 정유사들도 홍해를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키를 돌리고 있다.
전쟁 특수 누린 수에즈 운하, 홍해 긴장에 '꽁꽁' 
CNBC 등 다수 외신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촉발된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이 이집트 경제에 후폭풍이 될 수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그간 수에즈 운하 운영을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번 이집트가 홍해 불안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예상이다.
 
후티 반군이 국적과 상관없이 홍해를 지나 이스라엘 항구로 향하는 선박들을 잇달아 공격하면서 홍해는 ‘피해야 할 바다’가 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래 후티 반군은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모두 23차례나 공격했다. 후티 반군은 상선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무인항공기(UAV) 공격을 가했다. 피해를 본 선박 다수는 홍해 입구로 통하는 바브 알만데브 해협 주변을 지나는 중이었다.
 
홍해 긴장은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지난달 31일 미군은 헬기 사격으로 후티 반군 선박들을 공격해 최소 10명의 후티 대원을 사살하고 선박 3척을 침몰시켰다. 이에 이란의 구축함 알보르즈호가 홍해에 진입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다. 
 
주요 해운사 및 정유사들은 공격에 노출돼 있다는 불안감에 홍해 통행을 속속 중단하고 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유조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들 역시 수에즈 운하를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희망봉을 경유하면 운송 기간이 2~3주나 늘어나는 데도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장거리 항로를 택하는 것이다
 
수에즈운하청(SCA)에 따르면 11월 19일부터 12월 중순까지 총 55척의 선박이 예멘 앞바다인 바브 알만데브 해협을 피해 희망봉 항로로 향했다. 주요 해운사들이 홍해 운항을 중단한 만큼, 항로를 변경하는 선박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란 점이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 수익은 이집트 정부의 연간 예산의 약 10%를 차지한다. 운하 이익은 △수출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 △관광업에 이어 이집트의 네 번째로 큰 외화 수입원이다.

사실 수에즈 운하는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지난 2년간 특수를 누려왔다.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꺼리면서, 카타르산 LNG 수입을 늘리는 등 유럽의 중동산 에너지 수입이 늘어난 영향이다.  

이에 수에즈 운하는 2022~2023 회계연도(2022년 7월~2023년 6월 30일)에 94억 달러(약 12조3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 중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선박은 무려 2만5887척에 달했다. 
 
오사마 라비에 수에즈운하청 청장은 지난해 이집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우 전쟁은 부정적 효과보다 긍정적 효과가 크다”면서 걸프만에서 유럽으로의 석유 및 가스 운송 증가가 수에즈 운하 수입 증대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식품, 연료 및 보험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에즈 운하 통행세를 인상한 점도 이익 증가로 이어졌다. 수에즈 운하 당국은 2021년부터 매년 통행세를 올렸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긴장이 확산하면서 수에즈 운하의 외화 수입은 대폭 감소할 처지다. 지난 2021년 3월 초대형 컨테이너 화물선인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돼 6일간 수에즈 운하 통행이 중단됐을 때 이집트의 추정 손실액은 1억 달러(약 1303억원)에 달했다.
 
관광업도 타격…이집트 경제난 가중
중동 긴장은 이집트 경제의 주요 외화 수입 원천인 관광업까지 옥죄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ESCWA)에 따르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3개월 넘게 연장되면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의 관광업은 총 16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에 따른 관광업 위축으로 이집트가 국가 부채 상환에 애를 먹고 있는 가운데 전쟁으로 인한 관광업 추가 위축은 이집트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통상 관광업은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의 약 10~15%를 차지한다. 이집트의 국가 부채는 2022년 12월 말 기준으로 1695억 달러에 달했다. 실제 수치는 더 높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이집트의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지난 9월 역대 최고치인 38.0%를 기록했고, 지난해 이집트 파운드화의 가치는 미 달러 대비 50% 넘게 하락했다. 이집트 인구 1억500만명 가운데 약 3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 관광업과 수에즈 운하 운영마저 흔들리면 이집트 경제는 주저앉을 수 있다. 더구나 엘 시시 이집트 정권이 경제 정책의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려, 정권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집트 전문가는 "이집트 국민에게 더욱 위험한 것은 시시 정권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경제 정책 실패의 핑계로 삼고 있다는 점"이라고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MEMO)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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