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방중 대신 방러 택한 김정은의 속셈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주재우 교수
입력 2023-09-22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주재우 교수]
[주재우 교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3일부터 5박 6일 동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방문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을 봉쇄한 이후 그의 첫 해외 방문국이 중국이 아닌 러시아였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2018~2019년 2년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5차례 정상회담을 한 사실을 고려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팬데믹 이후 첫 방문 국가로 중국을 다시 찾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북·중 관계에 이상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그리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우선 김정은이 중국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한 측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단지 정황 증거로 이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 북한 문제를 두고 나눈 회담 내용에 근거할 수 있다. 올해 2월부터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포탄 등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같은 달에 왕이 중국 국무위원과 독일 뮌헨에서 회담하면서 두 가지를 요청했다. 하나는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지 말 것과 하나는 북한도 그렇게 하지 않게 중국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블링컨 장관이 각각 5월과 6월에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도 이들의 대북 메시지는 일관적이었다. 

중국 측 고심이 커졌을 법한 정황도 이후 드러났다. 7월 북한 전승절 기념행사에 중국이 예상외로 당 서열이 낮은 인사를 파견했기 때문이다. 리훙중 중국인민대표자대회 부위원장이자 당 정치국 위원이었다. 그는 당 서열 24위로 정치국 25명 중에서 간신히 턱걸이한 인사였다. 그리고 9월에 있은 북한 노동당 창당 기념행사에 중국은 류궈중 부총리를 참석시켰다. 그는 정치국 위원도 아니었다. 그러면 당 서열 25위에도 끼지 못한 인사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서열이 낮은 인사를 북한의 중대한 기념행사에 파견한 것도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북한이 기념행사에서 열병식을 한 이후 중국은 줄곧 고위급 인사를 보냈다. 가령 2010년 9월 노동당 창당 행사에는 저우용캉 중앙기율위원회 위원장(서열 9위)이 참석했다. 2013년 전승절에는 리위안차오 부주석(서열 8위)를 파견했다. 2018년 건국 70주년 행사에는 서열 3위였던 리잔수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위원장이 열병식을 참관했다. 이처럼 북한의 뜻깊은 국가적 행사, 그리고 특히 열병식이 개최될 때 중국 측은 항상 고위급 인사를 보내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두 차례 행사에는 이에 못 미치는 인사를 파견함으로써 중국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음을 감지할 수 있겠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 동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또한 그가 방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알아봐야 한다. 왜냐면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기와 이득에 대한 분석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우크라이나와 한창 전쟁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과 회담을 한 이유를 동기와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전쟁 중에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6000㎞ 이상 떨어진 극동 러시아 지역까지 와서 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또한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김정은과 푸틴의 노림수를 읽음으로써 김정은이 코로나 이후 러시아를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이유를 규명할 수 있겠다.

야당과 언론에서 지적했듯 김정은의 선택을 추동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이념외교나 진영외교의 결과도 아니다. 그가 군사시설을 방문했다고 해서 무기 거래를 목표로 푸틴과 회담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미·일 3국의 군사관계 강화가 북·중·러 3국의 단합을 유발해 대항마로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북·중·러 3국의 군사관계는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한·미·일 3국에 대항마가 될 수 없다.

우선 북·중·러 3국 군사관계에서 북한이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7년부터 연례 연합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동참할 리 만무하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상 훈련에 참여하려 해도 현재 북한 함정과 군함 수준으로는 수치스러울 것이다. 북한에는 중·러가 동원하는 이지스함급 군함이 없다. 공군 훈련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듯 북한의 최신예 전투기는 1980년대에 소련에서 제공받은 미그기가 전부다.

둘째, 북한에 군사훈련 참여를 유발하도록 중국과 러시아 그 어느 누구도 현재로서는 무기를 제공할 의사가 없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 향상과 개선을 위해 중국을 찾아간 바 있었다. 북한은 최고지도자 수행 방문단 일원이 아니라 처음으로 단독으로 공군과 해군 사령관을 각각 2007년과 2011년에 베이징에 파견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중국 최신예 전투기와 군함 구매를 타진해봤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빈손으로 귀국한 바 있다. 이후 북·중 간 재래식 무기 거래설이 나오지 않은 지 오래다. 러시아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논한 지는 1980년대 이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시급히 해소해야 할 당면 과제는 경제다. 코로나 시기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북한 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경제 성장률에서부터 식량 생산까지 총체적인 난국에 처했다. 이는 올해 김정은이 주재한 당 회의에서도 식량과 농업 문제를 강조한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 무기 구매나 거래가 최우선 과제는 아닐 것이라고 가늠할 수 있다.

비록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지 대부분이 군사무기 제조·생산시설이었음에도 주된 회담 의제는 경제라는 점이 간과되었다. 특히 북·러 양국이 건설·관광·농업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연내에 추진하기로 합의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 경제난을 위한 김정은의 포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 김정은과 회담할 때 푸틴을 배석한 러시아 인사들을 주목할 필요 또한 있다. 러시아 부총리를 비롯해 산업, 교통, 자원 부처 수장 등이 모두 동석했다. 푸틴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는 분명히 경제협력 문제, 인도주의 성격의 문제, 지역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북·러 양국 간 경제협력이 주된 의제였음을 시사했다.

푸틴의 발언을 방증하는 증거 또한 실무급 회담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특히 12일 새벽 러시아 국경역 하산에 도착한 김정은은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한 러시아 인사들을 보면 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자리에 알렉산데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환경장관이 배석했다. 코즐로프 장관은 북·러 통상·경제와 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 의장직을 겸하고 있다. 13일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코제먀코 주지사는 본인 텔레그램에 “(김 위원장과) 올해 관광·농업 발전과 연계된 공동 프로젝트들을 개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이는 건설과도 연관된 문제”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북·러 양국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 지역에서 농업특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특히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와 관광·문화 교류 사업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북한이 비(非) 군사 영역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타진한 이유는 더 현실적이고, 더 수월하고, 북한에 더 이득이 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무기 거래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푸틴도 전쟁 중에 북한에 무기를 제공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언론과 전문가들 예측대로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된 이유가 북한에서 포탄과 탄약을 조달하는 것이라면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신 북한이 러시아 측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기 생산 공장 가동이 전제된다. 이를 위한 에너지원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전력도 에너지 동력도 부족한 북한에서 러시아 측 주문을 맞추기 위해서는 러시아에서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자 식량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원활한 에너지 자원과 식량 수급은 군사력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양상에 현혹돼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에너지든, 식량이든,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경협이든 물자가 왕래할 때 러시아 첨단 무기 부품과 소재가 포함되어 운송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들 부품과 소재는 눈속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국제사회는 경계해야 하며 우리 당국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