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세계는 각자도생 보조금 전쟁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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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 J 인스티튜드 원장
입력 2023-08-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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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지난달 미국 백악관은 반도체지원법 시행 1년을 맞아 그 성과를 공개하였다. 핵심은 소위 반도체법(Chip Act) 시행으로 전 세계 기업들이 미국에 약 220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하겠다는 발표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세계 유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반도체법에 따른 지원을 받기 위해 460건의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인텔이나 IBM, 마이크론과 같은 미국 기업도 있지만 우리나라 삼성전자나 SK 하이닉스, 대만 TSMC나 독일 반도체회사 등 외국계 기업도 다수 포함된다.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규모가 약 70조원이라고 하니 미국은 1년 만에 3배가 넘는 투자 성과를 확보한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내에 최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도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은 부가적 선물이다. 그러니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반도체 투자 유치 성과를 자랑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미국 반도체법은 미국만을 위한 법으로, 다른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서 공정한 경쟁을 해칠 수 있다. 때로는 경쟁국이 유사한 법을 만들어 소위 세계적인 보조금 전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사실 미국 반도체법은 국제 통상규범에서 보면 사실상 보조금으로 볼 여지가 크다.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과 연구·인력 개발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것이므로 WTO 보조금협정에서 말하는 보조금의 의미에 가깝다. 보조금은 본질상 공정한 경쟁을 해치며 자유무역과 투자 결정에 왜곡을 가져온다. 이에 따라 상대방의 보복 조치나 대응 차원의 또 다른 보조 정책을 유인하고 궁극적으로 세계가 보조금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이 때문에 국제 통상규범에서 산업보조금을 엄격히 다루고 있다.
 
흔히 산업보조금을 스포츠에서 금지하고 있는 약물 복용에 비유한다. 금지 약물을 복용한 선수가 월등한 경기력으로 금메달을 따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아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매출을 증가시키는 것을 그냥 둘 수 없다. WTO에서는 다른 회원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는 소위 ‘허용보조금’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즉 모든 산업보조금은 WTO 협정 위반인 금지 보조금 아니면 조치 가능 보조금 등 두 종류뿐이다. 금지 보조금은 수출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수출보조금이나 국내산 부품 사용을 조건으로 하는 보조금을 말한다. 이러한 보조금은 당연히 금지되고 그 자체로 WTO 협정 위반이다. 나머지 산업보조금은 모두가 조치 가능 보조금이다. 조치 가능 보조금은 다른 회원국이 언제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보조금을 말한다. 소송이 제기되어 해당 보조금이 다른 국가나 산업,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입증되면 WTO 협정 위반이 되며 상대방의 보복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WTO에서 규제하고 있는 보조금 범위도 상당히 넓다. 보조금 하면 흔히 정부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만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리의 특혜 금융이라든지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도 보조금이다. 흔히 보조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연구개발 지원도 그것으로 인해 특정 기업이 명백한 혜택을 받았다면 조치 가능 보조금으로 분류되어 WTO 협정 위반으로 판정나면 보복 조치를 당할 수 있다. 지금까지 WTO에 제소된 보조금 관련 패널을 보더라도 보조금을 지급한 국가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은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이렇게 엄격한 국제 규범이 있고 그것이 실제 무역 분쟁에 적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국들이 자국 산업 발전 또는 첨단 기술 개발을 명분으로 앞다투어 대규모 정부 지원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앞에서 언급한 반도체법(Chips), 유럽연합(EU)의 그린딜 산업계획이나 중국의‘제조 20256’도 보조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 EU, 중국 등 3대 거인 모두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국만을 위한 막대한 보조 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국제 통상 현실이다.
 
그렇다면 각자도생의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분열의 시대에 우리나라 통상정책은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할까? 우선 보조금 전쟁에 동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지원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가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미국이나 EU, 중국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 보조금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이 차선책이다. 그렇다고 해도 핵심 기술과 제조시설은 만약을 대비해 일정 부분 국내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첨단산업단지 건설과 인력 확보를 위한 국내 지원과 관련 규제에 대한 과감한 혁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편 세계 경제와 무역을 왜곡하는 지금과 같은 보조금 경쟁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장기적으로 보조 축소를 주장해야 한다. 보조금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는 단계적 접근이 유효하다. 먼저 각국이 지급하고 있는 보조의 세부 현황을 WTO에 통보하여 보조금에 대한 글로벌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투명성이 확보되면 보조금의 폐해를 잘 알고 있는 이상 현 수준에서 동결과 점진적 축소 그리고 결국 폐지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시간을 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정책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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