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미국의 대중 투자 제한명령.. 앞에선 디리스킹 뒤에선 디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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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8-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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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올해 4월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정책의 기조를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지난 6월과 7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이 중국을 연이어 방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다양한 대중 압박 조치를 연이에 발표하고 있다. 앞에서는 디리스킹을 이야기하지만, 뒤에서는 디커플링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8월 9일 발표된 대통령 행정명령이 가장 대표적 사례이다. 이 행정명령이 입법화되면,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터, 군사용 인공지능(AI)에 대한 미국인과 미국기업의 투자가 대폭 제한된다. 미국 자본이 중국의 추격을 돕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선제적으로 군사, 정보, 감시 및 사이버 능력과 관련된 기술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재무부는 이 행정명령의 구체적 내용을 사전 입법예고한 후 45일간 의견수렴을 거쳐 초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행정명령은 기존의 대중 제재와 다른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투자 제한 대상이 확대된다. 중국본토뿐만 아니라 홍콩과 마카오에 있는 중국인과 중국기업에 제한 조치가 적용된다. 따라서 중국인과 중국기업이 홍콩과 마카오를 통해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투자 주체가 포괄적으로 규정된다. 미국 밖에 거주하는 미국인과 미국기업은 물론 미국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과 외국기업도 이 행정명령을 준수해야 한다. 이러한 미국법의 역외적용은 제3국을 통한 중국인과 중국기업의 우회 투자 기회를 대폭 차단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셋째, 투자의 방식도 세분화된다.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인수합병(M&A), 법인신설(그린필드), 합작투자 등의 직접 투자는 금지된다. 그러나 상장 증권, 인덱스 펀드, 뮤추얼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유한책임파트너의 투자, 회사 내 이전 등의 간접 투자는 허용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동맹·동반국들과 협의가 명시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할수록 효과가 더 강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미국은 G7 회원국에게 이미 협조를 요청하였다. 동맹·동반국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되면, 중국기업이 세계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투자 제한 조치에 단호히 반대하였다. 경제·무역 과학기술 문제를 정치화·도구화·무기화하는 경제적 강압은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약속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11일 중국 경제를 시한폭탄이라고 비판하자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이 세계 최대의 불안정 요인이라고 즉각 반박하였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미국에 보복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중국기업은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는데, 무역전쟁 이후 해외직접투자(FDI)가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올 2/4분기 순 FDI가 전년 대비 87%, 분기 대비 76% 각각 하락한 49억 달러였다. 이는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이번 행정명령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무역전쟁 이후 미국 자본의 대중 투자가 감소세였기 때문에, 단기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벤처캐피탈의 대중 투자액은 2021년 329억 달러에서 2022년 97억 달러로 급감하였으며 올해 7월 말까지 투자액은 12억 달러에 불과하다. 또한 직접 투자는 제한되지만 간접 투자는 허용되기 때문에, 이 행정명령에 상당한 빈틈이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기업의 지지도 전폭적이지 않다. 지난 7월 17일 미국 정부에 대중 제재의 자제를 요청했던 미국반도체협회는 8월 9일 의견수렴 과정에서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장기적인 효과는 클 것으로 보인다. 이 행정명령은 대중 투자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더 나아가 제한 대상 분야가 바이오, 배터리 등과 같은 첨단산업으로 확대되면, 그 충격이 증폭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중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도 대중 투자 전략을 심각하게 재고하고 있다.
지난 10일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외교부는 이 행정명령이 미국인과 미국기업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대중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우리 정부에 유사한 조치의 도입을 압박하게 되면, 중국에 생산시설을 보유한 반도체 기업이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기업이 범용반도체의 국산화에 성공한 상황에서 대중 투자의 위축으로 중국 내에서 제조 능력을 확대하지 못하게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오늘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대중 투자 제재에 참여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이 문제가 논의가 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반도체 산업이 받는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바이든 대통령을 잘 설득해야 한다. 우리 기업의 중국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가 중단되게 되면,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 부진, 무역적자, 경기침체의 삼중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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