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42주년 5.18 기념식 통합 출발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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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5-2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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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보면서 영화 <몬태나>를 떠올렸다. 윤 대통령이 보수정치인들을 이끌고 기념식에 참석한 행보가 영화와 겹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 비서진, 국무위원과 함께 광주를 찾았다. 더 놀라운 건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0여명이 참석한 것이다. 융단폭격이 다름없는 행보를 바라보는 야당의 시선은 뜨악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이었다. 통념을 깬 과감한 행보는 증오와 적의를 넘어선 통합을 향한 손짓으로 읽혔다. 거창한 구호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인 통합 행보라는 해석이다.

<몬태나>는 증오와 적의를 넘어선 영화다. 영화는 미움과 적대감을 뛰어넘어 보듬고 화해하는 이야기다. 5.18은 피해자와 가해자,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이라는 진영대결을 심화시켰다. 미국 또한 개척 당시 백인과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깊은 증오의 강이 흘렀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서로 경계하며 미워한다. 미군 장교는 인디언 토벌을 신념으로 알고 살아온 인물이다. 인디언 추장에게 그런 백인은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인디언에게 일가족을 잃은 여성 또한 추장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물과 기름 같은 이들은 몬태나까지 1,000마일이 넘는 긴 여정을 함께한다. 그리고 끝내는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19세기말 미국은 사회적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인디언에 대한 유화책을 쓴다. 그들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엘로우 호크 추장과 가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호송을 책임진 조셉 대위는 인디언 학살을 정당하다고 믿고 산 인물이다. 이들은 애리조나에서 몬태나까지 불편한 동거를 한다. 긴 여정은 용서와 화해로 완성된다. 함께하는 동안 적개심을 내려놓는다. 또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믿었던 신념이 얼마나 허망한지 확인한다. 영화는 과도한 신념과 편견이 갖는 위험성을 말한다. 조셉 대위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부여한 임무에 충실했다. 그는 그릇된 신념이 빚은 과오를 인정하고 속죄한다.

영화는 이렇게 묻는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부여한 신념은 항상 옳은지. 또 과도한 신념과 편견은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 영화 <몬태나>를 보면서 5.18을 둘러싼 해묵은 증오와 적의를 생각한 건 이래서였다. 소망하기는 백인과 인디언이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듯 우리사회도 그러하길 바란다. 제42주년 5.18 기념식은 정치적 계산이 아닌 통합과 화해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어야 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당신이 기억하는 일과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몬태나>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고통스런 과거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용서는 말처럼 쉽지 않다. 가슴 밑바닥에 자리한 증오와 적의를 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혀 있어야 할까. 영화 속 주인공은 참회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한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용서를 구한다. 우리도 그럴 때가 됐다. 언제까지 미움과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광주와 5.18을 기억하는 방식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우리사회는 격렬한 진영대결로 몸살을 앓았다. 새 정부 지향점은 분명하다. 화해와 포용을 바탕에 둔 통합 정부다. 손을 내밀지 않고는 도달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제42주년 5.18 기념식 참석은 파격적이었다. 역대 어느 정권도 보여주지 못한 행보였다. 진보정부 대통령조차 시위대 반대로 민주묘지 문을 통과하지 못했던 전례를 회고하면 놀라운 변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됐거나 해외출장 중인 의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원 참석했다. 얼마 전까지 5.18 망언을 늘어놓았던 정당이 맞나 싶었다. 과감한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층적이다. 야당은 정치적 꼼수라며 인색하게 해석한다. 여론은 진일보한 행보라며 우호적이다. 우리사회를 가로막았던 또 하나의 벽이 무너졌다는 평가도 있다.

윤 대통령은 유가족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동안 ‘제창’이냐 ‘합창’이냐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걸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한쪽에서는 “그깟 노래하나 부르는 데 40년 걸렸다”고 한다. 보수정부 인사들이 5.18 기념식장을 찾은 의미는 반목을 넘어 포용과 화합을 향한 한층 성숙된 사회로 진전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광주의 한을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으로 승화시키자”고 제안했다. 5.18과 관련 보수정권이 내놓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미래 지향적이다. 더는 소모적 충돌은 없어야 한다는 의지다. 우리사회는 지난 40여 년 동안 5.18을 놓고 반목과 갈등을 반복해왔다. 42주년 기념식은 해원(解冤)하는 자리였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호남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5.18 묘역에서 무릎 사과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 국민의힘은 오월 3단체 공법단체 전환을 주도했다. 당내 ‘호남특위’도 설치했다. 정운천 국민통합위원장은 호남지역 기초단체와 국민의힘 의원을 묶는 ‘호남 동행의원’을 만들어 다가갔다. 2020년 8월 섬진강 유역 물난리 때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먼저 수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윤 대통령 또한 지난해 광주에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광주 민심도 호응했다. 정운천, 성일종 의원은 보수정당 사상 처음으로 5.18단체로부터 ‘자랑스러운 5.18광주인상’을 받았다.

역사는 때론 퇴행하는 듯 보이지만 긴 호흡에서 보면 전진한다. 그렇기에 보수정치권이 보여준 행보를 박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관건은 진정성이다. 정치적 꼼수가 아닌 실천적 의지다. 다행히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이 존속하는 한 5·18 기념식 참석을 계속해야 한다”며 진정성을 강조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로 “지극히 당연한 과제였다”고 말한바 있다. 5.18 기념식 참석은 말이 아닌 행동임을 보여줬다. 민주당은 이 같은 변화가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내민 손을 뿌리치지 말아야 한다. 42주년 5.18 기념식은 국민통합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기에 의미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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