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尹정부는 규제 개혁에 승부를 걸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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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입력 2022-05-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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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규제는 무엇일까? 내가 다니던 고향길 국도변에 군부대가 있었고 신호등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빨간불 앞에서 정지했다가 신호가 바뀐 후 출발했다. 군부대가 이전한 후에도 그 신호등은 없어지지 않았다. 왜 안 없어질까? 어느새 그 신호등이 조금이라도 필요해진 일부 동네 사람들이 신호등 폐지를 반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군부대가 이사간 곳에는 신호등이 새로 생겼다. 사람들은 또 섰다가 출발한다. 두 개로 늘어난 신호등, 이게 규제가 아닐까?
 
윤석열 정부는 5월초 경제 등 5개 분야의 110개 과제와 520개 실천과제를 발표하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민간이 끄는 자유로운 시장과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목표로 삼았다. “민간”과 “시장”을 강조하는 경제 운용 방향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강조된 “자유”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10개 과제 중에서 “민간이 끌도록 만드는” 과제는 많지 않다.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를 위해서 필수적인 규제개혁은 3개 과제에서 나타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제16: 규제시스템 혁신)으로서 전방위적인 규제개혁을 표방한다. 특히,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하여 사회 갈등 핵심과제를 해결하고 민간주도의 규제혁신추진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기업투자 규제 셰르파를 운영(과제17)하고 시장진입을 저해하는 정부규제 개혁을 위하여 ”경쟁영향평가센터“를 운영(과제29)하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이러한 계획들은 역대 정부들과 비교하여 획기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혁신성장을 위한 산업규제 개혁 방향(산업연구원, 2020)”을 보면 역대 정부는 행정규제기본법 제정(김영삼 정부), 규제개혁위원회 운영(김대중 정부), 규제총량제 도입과 민관합동규제개혁기획단 운영(노무현 정부), 덩어리규제개선작업을 추진(이명박 정부)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신설 규제의 순비용에 해당하는 만큼의 기존 규제를 정비하는 규제비용관리제를 도입하였고 문재인 정부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사전허용-사후규제)로 전환하였고 신산업분야의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하였다.
 
최근 인류는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에 가장 큰 세계경제 질서의 재편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견인하던 자유무역의 기본 틀은 붕괴되고 세계무역기구(WTO)는 기능을 멈췄다. 한국이 이러한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공조체제에 참여하는 한편 국내 생산 주체의 생산성을 끌어 올려야 한다. 그 방법은 규제개혁밖에 없다. 규제는 군부대 앞 신호등처럼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삶의 불안은 정부에 대한 각종 요구와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 법률은 규제의 척도이다. 의원입법 법률의 숫자는 15대 국회 123건에서 20대 국회 1437건으로 11.7배 증가하였고 20대 국회에서는 규제심사 없이 국회의원 10인의 동의만으로 상정가능한 의원입법이 규제영향평가와 법제처 심사로부터 국무회의 심의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정부입법보다 4.7배 많은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규제의 폐지와 개혁보다 신설이 많기 때문에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 추진 노력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쟁력보고서(WEF)에 따르면 2019년(2020, 2021은 코로나로 미발표)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조사대상 141개국 중 13위이지만 정부규제의 부담 부분은 87위로 저조한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개혁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역대 정부에서 운영하던 위원회 정도로는 부족하고 5배의 규제 신설을 감안하면 10배의 속도로 규제를 개혁하여야 한다.
 
첫째, 급변하는 디지털 경제 여건은 규제의 유혹을 부르지만 최대한 자제하여야 한다. “잘 모르면 규제한다”는 말이 있다(regulate if you don’t know). 최근 문제가 된 테라-루나 사건에 대해서도 돌려막기식 폰지 스킴(ponzi scheme)이라는 등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혹시 이러한 사건이 비약적인 성장이 필요한 미래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의 확산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둘째, 범정부적 제1차 규제개혁 라운드를 진행하여 부처별로 가장 중요한 과제 10개씩을 스스로 제시하고 6개월 안에 해결하도록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각 부처 자율로 추진하되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개혁과제는 규제고객인 민간과 전문성이 있는 학계가 대상 과제들을 도출한 후 해당부처에 제시하고 민관의 토론을 거쳐 최종 확정하고 추진하는 방식이다. 제1차 라운드 완료 후에 제2차, 제3차 라운드 등이 이어진다.
 
셋째, 여러 부처가 관련되거나 덩치가 큰 규제는 정부가 구상 중에 있는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대표 규제개혁과제(flagship reform targets)”로 선정해서 집중 관리하여야 한다. 아울러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부처별 진행상황을 독려하고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이 규제개혁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넷째, 독과점적 구조 등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시장진입 장벽을 낮추어야 한다. 이러한 시장 내의 규제도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제개혁 과정에서 선진국의 현황 등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규제개혁은 과감하여야 한다. 이미 규제는 너무나 많고 저절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는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 없애겠다는 각오로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규제는 생산 활동이 가능한 초원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부패의 온상이기도 하다. 생산요소들이 백퍼센트 쓰이도록 그 문을 열어야 한다. 이러한 규제개혁은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어 한국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온 국민이 소망하는 다 같이 잘사는 나라로 인도할 것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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