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주식시장이 투자자들에게 다시 각광받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 리스크에 지난 1분기 전 세계 주식시장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이를 피하는 데 성공하며 견조한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코로나 사태로 위축됐던 경제 활동이 재개되며 2분기에 수익률이 오히려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올해 1분기 들어 세계 주식시장은 우크라이나 침공부터 극심한 물가 상승세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까지 불확실성이 고조된 가운데 약세를 보였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는 분기별 보고서에서 이번 1분기가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1분기 이후 최악의 분기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도이체방크 테마리서치팀 분석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가속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 미국 2년물·10년물 국채 수익률 곡선 역전 등 금융시장은 극적인 1분기를 겪었다"며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대부분의 금융자산들은 분기 동안 약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미국 주식시장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광범위한 제재를 가한 가운데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오르며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자 크게 밀렸다. 투자정보제공사이트 인베스팅닷컴 기준 지난 1분기 동안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각각 4.57%, 4.95% 하락했다.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금리에 민감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9.10% 폭락하며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 지역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증시의 DAX지수와 프랑스 파리증시의 CAC40지수는 각각 9.25%, 6.89% 폭락했다. 범유럽지수인 유로 Stoxx50지수 역시 9.21% 하락이라는 충격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 에너지 수입국이 몰려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코스피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가 각각 7.39%, 3.37% 밀린 가운데 중국 상하이지수는 10.64% 하락하며 두 자릿수 낙폭을 기록했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역내 무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의 제재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원자재가 풍부한 국가들이 많아 오히려 가격 상승으로 인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약화하며 관광산업 수익이 다시 돌아오고 내수가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가장 주목받는 국가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의 자카르타 종합지수는 올해 1분기 동안 7.44% 급등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는 3일 골드만삭스와 JP모건자산운용 분석가들이 모두 인도네시아를 최고의 선택지로 지목했다고 밝혔다. 티모시 모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본부 수석 분석가는 "세계 투자자들이 지난 10년간 무시해왔던 인도네시아 증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방의 제재로 시장에서 배제된 러시아산 원자재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부국이라는 점은 인도네시아 경제를 지지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 통계국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2월 수출액은 전월 대비 6.8%가량 증가한 204억6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로는 34.1% 늘었다. 2월 기록한 무역 흑자 역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분석가 전망치 16억6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38억3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인도네시아 통계청은 원유, 석탄, 니켈을 포함해 다양한 원자재 수출이 늘며 수치에 기여했다고 말했다고 마켓워치는 보도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잦아들고 있는 가운데 경제 활동이 재개되고, 관광 산업이 다시 활발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6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내수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인도네시아 경제가 2022년 5.0%, 2023년 5.2%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전년 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3.7%를 웃도는 수준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최대 기술기업 고투그룹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것 역시 향후 전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5월 차량 공유업체 고젝은 전자상거래업체 토코피디아를 인수하며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고투그룹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지난 11일 고투그룹은 IPO를 통해 11억 달러를 조달하며 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규모의 IPO에 성공했다. 이후 고투그룹 주가는 한때 시초가 대비 23%까지 급등하며 증시 활황세에 기여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도네시아 외에 해외 투자자들은 아시아의 남은 네 마리 호랑이인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도 주목하고 있다. 풍부한 원자재와 내수 시장 회복세로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에서 벗어난 시장들이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제2의 팜유 생산 및 수출국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 역시 주요 수출품 중 하나다. 최근 공급난을 겪은 반도체 부품의 생산 거점이기도 하다. 주요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분기 동안 말레이시아 KLCI지수는 1.27% 상승했다.

제리 고 에버딘 아시아 주식 투자 매니저는 "상품 가격은 이제 더 오랫동안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계속해서 무역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줄며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앞다투어 국경을 개방하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태국·필리핀·베트남 등도 주목하고 있다. 태국 증시의 SET종합지수 역시 분기 기준 2.27% 오르며 투자자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필리핀 PSEI지수와 베트남 VN지수 역시 각각 1.13% 상승, 0.41% 하락하며 7.32% 폭락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 실적을 크게 웃돌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부각되면 동남아시아 증시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연준이 본격적으로 물가 잡기에 나서서 금리를 인상하며 지난 2013년처럼 세계 주요 증시가 하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긴축발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스몬드 로 JP모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지난번과 같은 긴축발작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고 CNBC에 단언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재정 건전성이 10년 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높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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