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독도 문제로 꼬인 한일 관계 .. 대일 외교를 다시 디자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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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1-11-2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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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11월 17일 한·미·일 외교차관 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대화와 외교가 중요하다는 공동의 인식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한국 외교부 보도자료). 반면, 전날 김창룡 경찰청장의 갑작스러운 독도 방문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일본 측이 3개국 외교차관 공동 기자회견에 불참하는 바람에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혼자 기자회견을 하고 협의 내용을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일본 측의 외교적인 결례라는 지적이 많지만, 필자는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더불어 종전선언이 교착상태의 비핵화 교섭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유엔안보리 결의의 준수를 강조하지만 종전선언에 신중한 입장이다. 예정대로 3개국 외교차관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면 독도 문제는 물론 이런 한·일 간 견해가 충돌하는 지점에만 관심이 집중돼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강창일 주일대사가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과 관련한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일 국교 정상화 40년이 되었던 2005년 2월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일본대사는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 제정 움직임이 있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다케시마 문제는 한·일 간에 분명한 시각차가 있지만,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말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 다카노 대사의 ‘망언’을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되자 대사는 일시적으로 본국으로 소환되어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3월 23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으며 “경제, 사회, 문화 기타 여러 분야의 교류가 위축되고 그것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을 위해서 꼭 감당해야 할 부담이라면 의연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외교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독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독도를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어 우리가 강하게 대응하면 할수록 일본의 강한 대응을 촉발할 수 있다. 다케시마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일본인들이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분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올해 1월 도쿄에 부임한 강창일 주일대사는 10개월이 지나도록 일본 외상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전례 없이 악화한 탓도 있지만, 국회의원 시절 러시아의 구나시리섬을 방문했던 영향도 큰 것 같다. 10년 전인 2011년 5월 24일 국회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강창일 위원장을 비롯한 세 명의 국회의원이 러·일간 영토분쟁이 일고 있는 구나시리섬을 50분간 방문했는데, 이 섬은 2010년 11월 당시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방문하면서 러·일 간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던 곳이었다.

세 의원은 구나시리섬 방문에 항의하는 일본 정부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한국 정부를 함께 비난했으며, 2011년 8월 3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강창일 의원은 “대통령도 국가원수 자격으로 독도에 한번 가야 한다”고 요구했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여당은 환영 입장을, 야당은 일본의 의도대로 국제 분쟁화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언론은 ‘폭거’라고 비판했으며, 일본 정부는 11월 내각관방에 ‘다케시마 문제 대책준비팀’을 만들었고 2013년 2월에는 이를 ‘영토·주권대책기획조정실’로 확대·개편하고 영토문제에 관한 홍보 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2006년 일본 정부는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영토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2008년 7월 14일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해설서는 처음으로 한·일 간에 주장의 차이가 있다면서도 독도를 ‘우리나라의 영토’라고 명기했다. 2006년부터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한 시마네현은 각료급 정부 대표의 출석을 요구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듬해인 2013년부터 내각부에서 영토문제를 담당하는 차관급의 정무관을 정부 대표로 참석시켜왔다. 또한, 2017년 2월 14일 문부과학성이 공표한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회과에 독도와 함께 센카쿠열도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라고 처음으로 명기되었다.

2018년 10월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러시아와 북방영토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러시아는 구나시리섬에 지대공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영토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일본의 2021년판 방위백서는 센카쿠열도 주변에서의 중국의 활동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하면서 중국이 해군이 아니라 해경국을 센카쿠열도에 상륙시킬 수도 있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일 간의 독도 문제는 중일, 러일 간의 영토문제와 성격도 다르다. 일본 정부는 1981년 1월 일본과 제정 러시아가 최초로 국경선 확정에 합의했던 일로화친조약이 체결된 2월 7일(1855년)을 ‘북방영토의 날’로 정했다.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 자민당 내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지 모르며,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와 국민감정을 더욱 자극할 것이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책만이 능사는 아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독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10월 15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첫 번째 전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한·일 간 최대현안인 강제징용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적용 범위에 대한 법적 해석에 차이가 있는 문제”라면서 “양국 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외교 당국 간 협의와 소통을 가속화하자”고 제안했다.

2015년 12월 당시 외상으로서 마지막까지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을 포함한 한일 위안부 합의안에 난색을 표명하는 아베 총리를 설득했던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31일 실시된 중의원에서 261석을 획득해 자민당 단독으로 모든 상임위원회의 위원 과반수와 위원장을 독점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기시다 총리가 국민 여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조금 유연하게 외교를 펼칠 수 있는 시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1월 19일 국회에서 경찰청장의 독도 경비대 방문 격려를 ‘당연한 임무 수행’이라고 지적했지만,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이는 상황에서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이 부를 외교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외교 수장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성보다 감성에 국익보다 국민감정에 기대는 대일 외교에서 탈피해야 문재인 정부는 차기 정권에 부(負) 유산을 남기지 않고 퇴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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