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한일 관계, 전략적 소통과 인적 왕래로 돌파구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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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1-10-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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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50년 전인 1971년 10월 25일 대만은 중국 대표권을 박탈당하고 유엔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외교력을 집중했고 2016년 차이잉원 총통 집권 이후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유엔 산하 기구에 들어가는 것도 막아왔다. 그러나 최근 미·증 경쟁이 격화하면서 대만 정세가 크게 바뀌고 있다. 올해 3월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군 사령관이 향후 6년 이내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대만 문제가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10월 10일 건국 기념일에 해당하는 쌍십절 기념 연설에서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은 압력에 굴하는 일은 없다”고 선언했다. 전날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력 통일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조국의 완전한 통일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역사적 임무이며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한 응수였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며 외부 간섭을 용인할 수 없다”고 했는데, 차이 총통은 “대만은 이제 아시아의 고아가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11-12월호 기고 논문 “대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Taiwan and the Fight for Democracy)”에서 차이 총통은 대만이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글로벌한 경쟁의 최전선이라며, 대만이 중국공산당의 수중으로 넘어가면 지역의 평화와 민주적 동맹시스템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한 이후 최신무기를 대만에 판매하고 있지만, 대만방위 의무는 없다. 미국 의회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대통령에 무력 사용 권한을 부여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군 특수부대와 해병대가 대만에서 군사훈련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지난 4월과 5월 일본과 한국 정상을 워싱턴으로 초대한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성명에 대만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를 넣게 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가 포함된 것은 처음이며, 워싱턴에서 미일 정상회담이 열리던 4월 17일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대만에서 1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서쪽 끝 섬 요나구니지마를 시찰하면서 대만의 평화와 안정은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7월 5일 아소 다로 부총리(당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은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안보관련법에서 규정한 존립위기사태, 즉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일본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사태와 관련이 있다면서 미·일이 함께 대만을 방위해야 한다고 한정적인 집단적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만 문제를 자국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일본의 대만 중시 태도가 두드러진다.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율은 1994년 약 18%였던 것이 2020년 3분의 1인 6%로 추락했다. 지금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 일본을 상징하는 제품이 없을 정도인데, 일본이 경제재건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반도체다. 중의원선거에 맞춰 자민당이 공표한 공약집(自民党 政策 BANK)에는 반도체산업의 재생을 위해 국내 산업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향후 10년간 첨단반도체의 국내 개발과 제조를 위해 해외기업의 파운드리 유치나 공동연구를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염두에 둔 것이 대만의 TSMC다. 10월 14일 TSMC는 일본에 새로운 반도체 제조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는데, 일본 기업에 대한 우선 출하를 조건으로 투자총액 1조 엔 가운데 절반인 5천억 엔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 방침이다.

더욱이 공약집에는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로 호주, 인도, 아세안, 유럽과 함께 대만을 꼽았으며, 대만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신청과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옵서버 참가를 환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에 의한 국제법 위반 상태나 역사 인식 등을 둘러싼 이유 없는 비난’에 대해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10월 8일 국회소신표명연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에 한국을 포함하지 않았고 중국, 러시아에 이어 한국을 마지막으로 언급했다. 6월 G7 정상회의를 주최했던 영국은 민주주의국가 및 기술 선진국 간의 협력 강화를 위해 한국, 호주, 인도, 남아공을 초청했다. 일본이 한국을 권위주의 색채가 강한 중국이나 러시와와 같은 카테고리에서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시각과도 맞지 않으며 왜곡된 것이다.

동북아시아와 인도양을 잇는 남중국해는 전 세계 화물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요충지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실시한 공동여론조사에 따르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활발한 중국의 군사적 활동을 위협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은 72%(일본인은 88%)에 달했으며, 미국의 대중국 압력 강화에 동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64%(일본인은 59%)나 됐다. 중국-대만 문제는 미·일동맹을 넘어 한국 국익이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며,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면서 일본과도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13년 12월 처음 제정한 ‘국가안전보장전략(NSS)’ 문서와 더불어 2018년에 개정된 방위계획의 대강과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을 개정할 예정이다. 또한, 중국과 북한 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방위비를 GDP 대비 2% 이상을 목표로 증액하고 12식 지대함유도탄의 사거리를 대폭 늘려 함정이나 전투기에서도 발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대방의 위협권 밖에서 발사(공격)할 수 있는 스탠드오프 능력을 강화해갈 생각이다. 지난 3월에 이어 연내 다시 개최하기로 한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서는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대만 유사시 미군과 자위대의 협력, 특히 자위대의 역할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방위력 강화가 대중국 억제력 강화로 이어져 미국은 환영하겠지만, 역내 군비경쟁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정치도 외교도 고상한 이상주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달 31일 치러질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안정 다수를 확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주요 각료도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10월 15일 기시다 총리 취임 후 첫 번째 전화 통화에서 한일 정상은 북한 문제 등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한일 및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고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 이를 위해서는 청와대와 총리관저, 외교와 국방 당국 간의 전략적 소통을 하면서 코로나로 중단된 양국 국민의 인적 왕래를 재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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