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美의 '반도체 내무검사', 한국도 단호히 'NO’ 해야한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21-10-21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겸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지난 9월 23일 美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과 상무부 장관 주최로 온라인 반도체 공급망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CEO 서밋 이후 3번째 진행된 반도체 공급망 회의로 삼성전자, TSMC, 인텔,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GM, BMW, 포드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4일 美 상무국 기술평가국은 후속조치로 국내외 반도체 제조사, 설계업체와의 중간·최종 사용자 등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친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부 설문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제조기업들은 매출 및 주문현황, 공정기술과 생산, 재고현황, 고객정보, 경영정보 등 약 20개에 달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해서 45일 안에 미국에 제출해야 한다. 강제사항이 아니고 자발적인 답변이라고 애기하고 있지만 완전히 협박 수준에 가깝다. 지나 레이몬도 美 상무장관은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정보제공을 요구할 다른 수단도 있다. 거기까지 가지 않기를 바란다.’ 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다른 수단’이라 함은 바로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발동을 의미한다. ‘국방물자생산법’은 미국이 특정 물품의 생산을 확대·관리할 수 있게 한 법률이다. 다시 말해 반도체에 대한 원자재 수급 및 가격 등을 통제할 권한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해 미국정부는 글로벌 반도체기업에 공급 계약을 요구할 수 있으며, 반도체 생산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미국이 어떤 내용을 원하는지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한 방향을 잡지 않고 지난 20여일간 침묵만 해왔다. 이번 사태는 좌고우면할 이슈가 아니다. 당당히 바이든 행정부에 ‘No’라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만큼 매우 심각한 사안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게 美 정부가 요구한 세부사항을 한번 살펴보자. 최근 3년간 매출액 및 출하대비 주문비율, 원재료·장비구매변화, 주문량 많은 제품의 한 달 매출액, 중간재 및 완제품 재고현황, 제품별 핵심 3대 고객 및 매출정보, 반도체 공정 원자재, 제품 유형과 생산공정 리드타임(생산주기), 향후 반도체 공장증설 계획, 수요 초과시 공급물량 할당 방법 등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우리 반도체 기업 내부 정보를 통째로 달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만약 이런 정보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면 향후 경쟁사인 미국의 인텔, 마이크론, 애플 등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기업비밀을 외부에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작금의 치열한 미·중간 기술패권 전쟁에서 어떻게 상황이 변화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미국의 이번 요구는 중국에 대항해 글로벌 공급망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대외적인 명분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GM과 포드 등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차량용 반도체 부족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이자 중국과의 중장기 기술패권전쟁에 대비하고자 하는 전략적 포석이다. 과거 1980년대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반도체 업계가 미국 반도체 산업을 위협하자 미국은 슈퍼 301조를 동원해 D램 반도체 덤핑을 문제삼아 일본 반도체 기업에 100%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추락과 몰락은 미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원가 및 판매가, 재고, 반도체 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는 수율(웨이퍼 한 장에 설계된 최대 IC 칩 개수대비 생산된 정상 칩의 개수) 등 정보가 노출되면 당연히 반도체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가격협상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우리 기업의 매출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핵심고객정보와 매출비중 정보 공개는 계약당사자와의 비밀유지계약서(NDA) 위배로 국제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미국 자동차 산업부흥과 자국으로의 공장 이전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프레임에 한국 반도체기업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정보요구 사항 중 향후 경영계획 부분 내용을 보면 반도체 공급망에 있는 글로벌 핵심기업들을 미국으로 이전시키겠다는 야심이 엿보인다. 결국 중국 추격을 따돌리며 미국이 반도체 패권주의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미 하원을 통해 이미 발효된 '반도체 생산촉진법(CHIPS for America Act)' 법안은 향후 5년 동안 총 520억 달러의 재정을 투입하여 해외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100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최대 40%의 세액 공제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테니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는 얘기다. 더 나아가 美 상원의 '아메리칸 파운드리(American Foundries Act)' 법안도 곧 발효될 것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건설에 연방 보조금을 150억 달러로 증액하고 미국 국방부와 국립과학재단 같은 정부 기관에서 50억의 R&D 지원금을 추가로 줄 테니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것이다. 반도체 설계 기업은 미국에 있는데 생산제조 공장이 없으니 당근을 제시해서 10개의 글로벌 반도체 제조기업들을 유치하겠다는 속셈이다. 삼성전자의 170억 달러 규모의 첨단 파운드리 미국공장 증설 및 SK하이닉스의 실리콘밸리 R&D 센터 건설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시안 및 우시에 있는 메모리 생산기지까지 미국으로 옮기거나 새로운 메모리 공장을 미국에 신설하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중국이 미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기타 첨단핵심기업들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번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그냥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정보를 제공한다면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중국한테 무언의 압박과 요구를 받게 될 게 뻔하다. 중국은 이번 미국정부의 요청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기업이 바로 글로벌 파운드리 1등 기업인 대만의 TSMC이다. TSMC는 미국의 정보공개요청에 단호히 거절의사를 밝혔다. 대만 국가발전협의회(NDC) 장관은 미국에 기업 관련 내부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TSMC의 가장 큰 고객인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고, 또한 그로 인한 향후 중국정부의 압박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속내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8일 경제부처와 국정원, 청와대 관계자들이 참석해 제1차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그리고 정부는 ‘미국의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내부 기밀정보요구에 기업의 자율성에 맡기되 기업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정부 지원과 함께 미국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너무나 무책임한 표현이다. 이 문제는 우리 기업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미국의 제조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우리 기업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장비의 약 40%, 소프트웨어의 약 50%를 미국 기업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부정보를 미국에 넘길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국면에 처한 기업에게 ‘자율성’이란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어차피 미국에 줄 것이라면 가능한 한 적은 정보를 주고 기밀보안 유지를 요청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것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왜 미국에 우리 기업 내부정보를 주어야 한다는 가정을 먼저 하고 있는 것일까? 2년 전 일본이 전략물자수출법으로 우리를 압박했을 때 모두 큰일날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잘 극복했고 자체적인 소부장 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물론 더욱 더 정밀함을 요구하는 반도체는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美 정부가 제시한 답변서 제출일인 11월 8일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미·중의 반도체 패권경쟁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의 확고하고 명확한 스탠스가 있어야 향후 다가올 중국으로부터의 압박에도 대응할 수 있다. 작금의 이슈는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와는 전혀 다른 우리 국격과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승찬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칭화대 경영전략박사 △주중 한국 대사관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