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사상 최악의 문화참사vs입주민 피해 눈덩이...왕릉앞 아파트, 책임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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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1-09-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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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이 잘라내면 분양 가구수 줄어...애초에 토지가격, 분양대금, 지체 보상금 등 줄줄이 법적 분쟁

  • 법조계, 건설사 "행정적 오류 가능성 높아...공무원 처벌도 불가피"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조선왕릉 인근에 허가없이 아파트를 건축한 시공사 3곳을 고발한 가운데 28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장릉(사적 제202호)에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짓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검단신도시에서 건설중인 아파트 3곳은 건물 정면으로 김포 장릉의 경관을 가리는 상태로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문화재청은 이들 건설사를 인천 서부경찰서에 고발하면서 이달 30일부터 아파트 공사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인근에 건립 중인 인천 검단신도시 고층 아파트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해당 공사에 제동을 걸면서 공사가 중단된데 이어 아파트 철거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5만명 이상이 동의하면서 '원상복구' 논의에 탄력이 붙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 관련 국민청원이 15만명을 돌파한 건 2017년 정부가 청원을 개시한 이후 첫 사례다.

해당 공사가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인천 서구청과 건설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전 세계, 그리고 후손들과의 약속“이라며 완강한 입장이다. 여론 역시 ”선례를 남기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주장과 ”거의 완성된 아파트를 폭파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인천 서부경찰서에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시공사 3곳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문제가 된 아파트 부지는 경기도 김포시 장릉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장릉은 조선 선조의 5번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의 무덤이다. 공사 중지 명령 대상은 대방건설(디에트르), 대광건영(대광로제비앙), 금성백조(예미지 퍼스트포레) 등 3개 건설사가 짓는 3400여가구 규모 아파트 44개 동 가운데 문화재 보존지역에 포함되는 19개 동이다.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이 문화재 반경 500m 안에 포함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아파트를 지으면서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아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이 지난 2017년 1월 김포 장릉 반경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개별 심의한다고 고시했는데, 이들 건설사가 사전 심의없이 건축을 강행해 문제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반면 건설사와 인천 서구청은 2014년 땅을 매각한 인천도시공사로부터 문화재보호법 위반 저촉사항이 없다는 확인을 받았고, 또 문화재청이 개별 심의를 고시한 법안은 2017년 개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해당 부지에 법을 소급적용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이 허가 당시에도 설계도, 배치도, 층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 사항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공사가 중단된 3곳 가운데 대방건설만 공사를 강행했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이날 "법원에 낸 문화재청의 공사 중지 명령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다"면서 "(건물) 외관의 색채나 패턴(유형) 등을 장릉과 어울리게 시공하는 등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변경해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아파트 개발 중에 문화재가 발굴돼 공사가 중단된 경우는 있지만 택지 자체의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문화재청은 각종 인허가 절차에 매우 엄격해 건설업계 '저승사자'로 불린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극동아파트의 경우에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아파트가 사선으로 절단된 형태를 띄고 있다.

인천 검단신도시의 경우 이미 공사가 80% 진행된 만큼 아파트 외관 도색을 왕릉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하거나 지붕에 기와를 얹는 등 문화재청과 업계가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지만 타 지역에서 재산권 형평성 문제와 문화재 훼손의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공무원들의 직무유기에 있다는 시각이 많다. 건설사 관계자는 "공공택지는 민간택지와 달리 공급자가 각종 토지 인허가 절차를 거친 뒤 시행사에게 파는 땅"이라며 "마치 '초콜릿 만들기 키트'처럼 짜여진 각본, 그대로 개발하면 되기 때문에 시행사 측면에서는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개발지역이 인천시와 김포시가 접해있는 행정구역이다보니 인허가 당시 인천시 공무원이 김포의 문화재 보호구역을 간과한 것 같다"면서 "이 정도 피해 규모면 공무원들의 직무태만"이라고 지적했다.

입주 시점이 연기되면 시행사가 부담해야 할 지체보상금도 문제다. 법조계에 따르면 시공사는 아파트 입주예정일에 입주가 불가능할 경우 입주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한 금액에 계약서상 명시된 연체금리를 곱해 산출한 금액을 지연일수로 나눈 지체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선분양제의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이 있지만 HUG는 시행사 부도에 따른 책임준공 의무만 있지 이번 사례의 경우 분양보증 대상이 아니다.

법조계 관계자도 "피해가 현실화되면 지체보상금 규모만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라며 "이번 경우는 공무원의 직무유기 과실도 큰 것으로 보여 시행사와 토지공급자 사이의 행정소송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 관련 인허가에서 문화재청은 한 번 '안 돼' 하면 끝까지 안되는 원리원칙이 중시되는 집단"이라면서 "원칙대로 최고 층수를 줄이면 총 가구수를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1차 분양자는 물론, 각종 프리미엄을 얻어 산 2차, 3차 분양자들에게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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