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한 경제외교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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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1-09-2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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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2월 국가전략보고서에서 ‘경제안보는 국가안보다’라고 선언한 이후 경제외교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2018년 3월 미국의 보복관세에 중국이 맞대응하면서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 외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국가이익이란 명분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이 수출통제·수입제한·투자금지 등을 주고받으면서, 전 세계 기업은 경제적 불확실성에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다루기 위해 외교안보 부서와 경제통상 부서가 협업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가경제위원회(NEC)는 지난 4월 12일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반도체 공급망 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6월에도 NSC와 NEC는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의 공급망을 점검하는 보고서를 합동으로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 작성에는 상무부(반도체), 에너지부(배터리), 보건복지부(의약품)와 같은 경제통상 부처뿐만 아니라 국방부(희토류)와 같은 외교안보 부처도 참여하였다.

국무부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의 상장폐지를 주도했다는 사실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2020년 11월 12일 ‘공산주의 중국 군수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증권 투자의 위협에 대응’ 행정명령(EO 13959)을 이행하기 위해, 국무부는 상무부의 실체 목록과 국방부의 공산주의 중국 군수 기업 목록을 참고하여 모회사 21개와 그 자회사 71개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국무부의 지침에 따라 영국의 런던증권거래소 산하 FTSE 러셀은 12월 4일, 미국의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은 12월 16일 각각 8개 및 7개 중국 기업을 지수에서 삭제하였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도 2021년 3월 중국해양석유총공사, 5월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이 각각 상장폐지되었다.

경제외교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문부과학성·내각부), 산업육성(경제산업성), 정보통신(총무성)과 외교안보(외무성), 국방전략(방위성)의 원활한 정책조율을 위해 자민당은 2019년 3월 일본판 국가경제회의(NEC)의 창설을 제안하였다. 2020년 4월 국가안보국(NSS) 내에 외무성·경제산업성·방위장비청·문부과학성이 참여하는 경제반이 신설되었으며, 12월에는 자민당의 신국제질서창조전략본부가 ‘경제안보 일괄추진법’(가칭)을 제시하였다.

올 4월 가토 관방장관이 주재한 종합혁신전략추진회의는 AI, 5G, 드론, 반도체 등 핵심기술의 해외유출 방지를 위해 경제 안전보장을 조사·분석하는 새로운 연구기관의 신설을 결정하였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같이 민·군융합 기술에 집중하게 될 이 연구기관은 민간기관의 위탁을 통해 이달부터 활동을 개시하고, 2023년까지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6월에 발간된 내각부의 ‘2021년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과 경제산업성의 통상백서에 자율성 확보, 우위성 획득, 중요기술의 특정·보전·육성, 기간산업의 강인화, 체제 정비·강화를 골자로 하는 경제 안전보장이 처음으로 포함되었다.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경제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희토류를 수입하는 미쓰비시전기는 작년 10월 사장실 산하에 경제안보 총괄실을 신설하였고, 도레이와 덴소 등의 기업들도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조직을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는 국제경제외교종합전략센터를 지난 7월 2일 개설하였다. 야치 쇼타로 전 국가안보국장이 강연한 제1회 경제안보세미나에 기업인뿐만 아니라 NSS·공안조사청·경찰청·외무성 관료도 참석한 것을 볼 때, 이 센터는 민·관협력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외교를 본격적으로 담당할 기구나 조직이 정부는 물론 재계에도 아직 없다.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기업이 알아서 대응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있다. 정부가 나서게 되면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기업은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다양한 외교적 압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의 생산시설이 미국과 중국에 나눠져 있기 때문에, 우리 수출과 경제는 공급망 교란이나 붕괴에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관리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외교 조직을 신설할 때 다섯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정책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처별 이견을 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정책 대응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제재가 다각화되고 있기 때문에 외교부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국정원까지 참여해야 한다. 셋째, 민·관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과학기술과 산업생산의 주체는 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아닌 기업이 의제를 설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을 이끌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다. 넷째, 정부의 지원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 모두에서 우리 기업 간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특정 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경우, 정책의 효과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인한 정치적 반발까지 초래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중국, 경제와 외교를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연구소가 없다. 진정한 경제외교를 위해서는 분야별 칸막이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연구기관을 신설해야 한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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