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AI, 어쩌다 의대 열풍 아래로

  • '인재전쟁', 한국이 中을 이길 수 없는 3가지 이유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용인대 중국학과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중국은 엔지니어(공학자)의 나라, 미국은 법률가(변호사)의 나라이다” 작년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경제·기술 분석서 <브레이크넥(Breakneck)>에서 강조하고 있는 핵심 표현이다. 올라프 숄츠 전 독일 총리도 엔지니어 나라인 중국과 법률가의 나라인 독일을 비유하며 테크노크라트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과 인재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결국 미래전쟁은 인재전쟁으로 대변될 정도로 엔지니어의 나라인 중국의 인재육성정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인재전쟁에 대한 열띤 토론과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작년 9월 KBS다큐 ‘인재전쟁’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이라는 강렬한 대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인재양성 시스템의 문제와 국가경쟁력 위기를 적나라하게 고발했고, 성찰과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는 거대한 충격과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10개월 만에 <차이나 스피드, 코리아 딜레마>라는 주제로 인재전쟁2가 방영되었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속에 중국은 글로벌 AI·첨단기술 패권경쟁 속에서 무서운 속도로 앞서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전문직 선호와 제도적 한계에 여전히 갇혀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인재전쟁 속에 숨어 있는 중국의 인재시스템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인재전쟁 다큐에서 담아내지 못한 그들의 국가인재육성 생태계를 알아야 우리의 생존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냉철한 고민과 숙고 없이 이대로 간다면 인재전쟁에서 한국은 결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그 이유를 필자는 크게 3가지 관점에서 보고 있다.

첫째, 과학기술을 국가 최우선 전략으로 설정하면서 이공계 인재가 존중받는 일관되고 강력한 사회적 문화적 풍토의 결집이다. 중국은 ‌1988년 덩샤오핑의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이다(科学技術是第一生産力)’ 라는 기치 아래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중용의 대전환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과학기술로 나라를 일으킨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의 슬로건 아래 정부 역량을 과학기술에 총동원했다. 그리고 2001년 장쩌민 주석은 '인재 자원이 제1의 자원이다(人才資源是第一資源)' 라고 언급하며 인재가 중국 경제사회발전의 핵심이자 전략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은 '혁신이 발전을 이끄는 제1의 동력(創新是引領發展的第一動力)'으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중국 과학기술 인재중용 정책은 일관되게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지속되어 왔다. 장쩌민(전기과)-후진타오(수리공정과)-시진핑(화학공학과)의 국가지도자 면면을 보더라도 대부분 기술관료 출신이다. 최고 지도부라고 불리는 공산당 제20기 중앙정치국원 24명 중 이공계를 전공한 기술관료가 총 10명이고, 전공은 아니지만 대부분 국영기업 및 기관에서 직간접적으로 산업기술 관련 업무를 경험하며 국가지도자로 성장했다. 이공계 전공자가 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오랜 기간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총 9차례 '중국현대 과학자 기념우표'를 발행하며 과학자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1958년 마오쩌둥 시절부터 매년 여름 중국의 전현직 고위관리와 당∙정 간부들이 모여 국가정세와 전략을 비공개로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과학기술자를 초청해 격려하고 있는 것도 국가 차원의 존중을 상징하는 의미다. 과거 농촌기술, 국방과학기술 중심의 과학자들을 초청해 토론하는 형태에서 변화도 생겨났다. 2019년 미·중전략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과학기술자립을 위한 국가전략 구상과 중국의 병목기술 중심으로 국가 지도자들이 직접 강의도 듣는다. 예를 들어, 작년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AI, 양자물리학, 생물학, 재료과학의 과학자와 산업계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영역별 기술자립 방향에 대한 토론도 진행했다.

둘째, ‘초(체험)-중(응용)-고(프로젝트 수행)-대학(산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국가 전략인재군 양성 시스템의 구축이다. 한국은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25년부터 초등학교에 한해 6년간 최소 34시간 AI 의무교육을 진행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AI 의무 교육은 선택과목 형태로 여전히 정체되어 있다. 의대에 미친 한국의 교육체계는 중학교부터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모드로 전환되면서 입시형 공부에 매몰되어 있다.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 국가전략 차원에서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AI 수업을 전면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처럼 초등학교 6년간 AI 맛보기 교육이 아니라 AI 챗봇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AI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유발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AI 의무교육에 그치지 않고, 중고를 넘어 대학까지 전주기적 ‘인재 파이프라인 구축’을 통해 국가 과학기술 핵심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초등학교 체험형 AI 학습을 거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 AI 작동 원리를 이용해 음성인식 프로그램과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직접 만드는 실습 위주의 교육을 진행한다. 고등학교에서는 AI를 활용한 실제 문제해결과 프로젝트 수행 중심의 학습이 진행된다. 2024년 4월 교육부 주도의 <중∙고교 AI 교육 강화방안>이 발표되면서, AI 교과 확대와 AI 전담교사 양성 등 국가 AI 인재 육성시스템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대학교육은 산업체와의 연계를 통해 AI 융합형 인재 양성에 집중한다. 중국은 이미 2018년부터 <대학 AI 혁신행동계획>을 통해 AI학과 개설 확대와 산업형 AI 성장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AI 및 빅데이터 전공을 개설한 대학 수가 2018년 1250여 명 정원의 35개 대학에서 2024년 4만4천여 명 정원의 535개 대학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에 화웨이∙텐센트∙바이두 등 수많은 AI 테크기업과 공동으로 맞춤형 교재 개발, 프로젝트 참여 등 산학 융합형 교육체제를 구축해 오고 있다. 국내 대학정책연구소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2020년 AI 관련 학과가 9개에서 2024년 134개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기존 학과에 AI를 얹는 식’의 명칭 변경에 그쳤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 대학은 산학 융합형 교육이 아니라 학교 AI교육에 그치고 있다.

셋째, 실패를 용인하는 국가 주도형 혁신시스템(State-led Innovation Model) 구축이다. 최근 우리 정부도 ‘실패를 용인하는 R&D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핵심은 정책의 지속성과 정부가 위험 부담자(Risk-Taker)로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중국은 기술개발 초기단계의 고비용∙고위험∙시장화의 리스크를 국가가 전방위적으로 흡수하며 혁신시스템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수∙진보정권에 따라 갈지자 행보를 할 때 중국은 국가 R&D 과제 수행에 불법 사항이 없다면 기술적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러한 면책 메커니즘을 통해 과학기술인재가 두려움 없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과학기술 R&D 자금도 공공자금으로 마중물 역할을 하고 뒤를 이어 벤처캐피털과 민간기업들이 기술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혁신 창업생태계 구조도 우리와는 차별화 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AI∙반도체∙양자컴퓨터∙첨단 바이오 등 초기상용화 가능성이 낮은 핵심첨단기술의 경우 중앙정부가 초기단계 투자를 하고 그에 따른 지방정부의 매칭펀드, 민간투자가 수혈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단순히 실험실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산업화, 시장화를 위해 중국 정부가 첫 번째 구매자(First Buyer) 역할을 한다. 과학기술 인재들의 연구 결과가 사장되지 않도록 막강한 내수시장의 테스트베드를 제공함으로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미·중기술패권경쟁 속에서 첨단기술 자립과 글로벌 과학기술 주도권을 잡기 위해 국가가 막대한 전략적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하는 이른바, '신형 거국체제(新型擧國體制)’가 가져 올 나비효과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K-이니셔티브 구축을 위한 K-인재정책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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