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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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1-08-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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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동안 세계적 IT기업을 양성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중국 정부가 빅테크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지난 4월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알리바바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역대 최대인 약 3조원의 벌금을 부과하였다.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 6월 뉴욕증시에 상장한 디디추싱의 사이버보안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지난달 공산당과 국무원 판공청이 발표한 ‘의무교육 단계의 학생 숙제 부담과 방과 후 과외 부담 감소를 위한 의견’은 온라인 사교육 시장에 큰 충격을 미쳤다.

빅테크 길들이기는 중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주식시장에 미친 충격이 미미해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도 빅테크를 겨냥한 규제는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월 시가총액 6000억 달러 이상, 월 활성 이용자 5000만명 이상의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5개 법안이 하원에서 발의되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현재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도 7월 9일 플랫폼의 남용을 막기 위한 ‘미국 경제 경쟁 촉진’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보면, 빅테크 규제는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빅테크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자율주행, 5G, 블록체인 등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의 빅테크를 지원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과 중국은 빅테크를 단속하는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빅테크의 반독점 행위가 시장경쟁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사실에 있다. 비대면 거래에 특화된 플랫폼을 가진 빅테크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효과를 사실상 독점하였다. 매출이 급증하였고 주가도 크게 상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빅테크는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국가에서 디지털세를 도입하고 있으며, G7은 법인세율을 15% 이하로 내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안에 합의하였다.

빅테크의 영향력은 재계를 넘어서 정치권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빅테크가 정권은 물론 국가권력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대통령선거에 러시아의 개입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페이스북은 2019년에는 글로벌 디지털통화를 목표로 하는 리브라 프로젝트를 출범하였다.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는 주범으로 비판을 받는 아마존은 노동조합의 설립을 방해하다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당과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는 국가자본주의인 중국에서도 빅테크의 영향력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작년 10월 와이탄금융서밋에서 금융감독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이 자리에 있던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과 이강(易綱) 인민은행장 총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중국 정부가 국내 자본시장 발전, 미국의 금융제재 위험 및 사이버 보안 등을 위해 홍콩·상하이·선전 증시에 상장을 유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뉴욕 증시에 상장하고 있다. 디디추싱은 지난 6월 말 중국인 개인정보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정부의 연기 요청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시에 상장을 감행했다.

정치·경제 체제는 물론 발전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규제의 내용과 방식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미국에서는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반독점법을 중심으로 규제하고 있다. 반면, 반독점 규제를 정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다양한 정부기관이 규제에 관여하고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이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훨씬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 행정명령 발표 이후 주가가 크게 변동하지 않았던 반면, 중국에서는 규제가 발표될 때마다 관련 기업 주가는 폭락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규제의 범위와 정도를 보면,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며 엄격하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노동시장, 헬스케어, 교통(항공·철도·선박), 농업, 인터넷서비스, 기술, 은행 및 소비자금융을 다루고 있다. 리나 칸 FTC 위원장은 반독점 규제의 근거를 가격 인상을 위한 담합에서 플랫폼을 통한 경쟁 제한까지 확대시켰다. 따라서 경쟁자를 인수·합병하고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빅테크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강화될 전망이다.

중국의 빅테크 규제는 그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체계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이 경제적 효과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다. 알리바바와 앤트그룹에 대한 처벌은 중국 내 권력투쟁과 연계되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시진핑 주석과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장쩌민 전 주석의 손자인 장쯔청이 설립한 보위캐피털이 앤트그룹의 대주주라는 점을 당국이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당과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순응해온 텐센트는 알리바바와 앤트그룹에 비해 훨씬 적은 벌금을 처분받았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플랫폼을 활용해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빅테크 규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사례를 보면,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 내셔널 챔피언을 육성해야 한다거나 IT산업과 제조업을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배구조의 측면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가족 경영의 폐해가 없지만,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다는 점에서 빅테크는 재벌과 다르지 않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경유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빅테크에 대한 포괄적이고 정교한 규제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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