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9.11응징 '20년전쟁'의 석연찮은 뒤끝.. 분기점에 선 미국의 안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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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1-08-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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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칸서 발뺀 美...제2의 베트남전쟁?

 

[9.11 테러당시 모습/연합뉴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뉴욕의 아침은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청명한 날씨였다. 이날 오전 8시 46분 이슬람 극단주의자 알카에다 행동대원들에게 납치된 민간 항공기 한대가 미사일처럼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로 돌진했다. 동체가 93층과 99층 사이에 박힌 채 검은 연기를 품어 낼 때만 해도 긴급 생중계에 나선 방송사 앵커들은 이를 단순한 사고로 생각했다. 어떤 앵커는 건물 꼭대기인 106층과 107층에 위치해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명소 "윈도우스 오브 더 월드' 레스토랑에서 화재가 나지 않았나 추측하기도 했다. 화염에 싸인 북쪽 타워의 모습이 생중계 되는 가운데 또 다른 항공기 한대가 9시 03분 세계무역센터 남쪽타워의 77층과 85층 사이로 충돌했다. 북쪽 타워에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시간차를 두고 다른 항공기가 남쪽 타워로 돌진해 공포와 충격을 배가시킨 것이다. 당시 집이나 사무실에서 무심코 TV를 틀어본 사람들은 이게 영화가 아니고 실화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이어 워싱턴의 펜타곤(국방성) 건물에 3번째 여객기가 충돌하자 전 세계는 미국이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알카에다 행동대원에 납치되어 정황상 워싱턴의 백악관 또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4번째 항공기는 용감한 승객들의 저항에 부딪혀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에 추락했다. 9·11은 세계 최강 미국의 심장부를 노린 아주 치밀하게 짜여진 테러 공격으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날의 엄청난 쇼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최악의 테러 공격으로 美 자본주의 상징인 110층짜리 건물 2개가 완전히 무너지고 30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다. 어떤 세계 전쟁이 일어나도 본토는 포탄 한발 안 떨어질 만큼 안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미국인들의 자존감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이렇게 여러 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자폭 테러로 사용하는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려면 준비 과정에서 정보가 상당히 유출됐을 법한데 미국이 사전에 알지 못하고 꼼짝 못하게 당한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영화계의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과 아메리칸대학교 역사학 교수 피터 커즈넉이 힘을 합쳐 펴낸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The Untold Story of the United States)에 따르면 9·11 테러 사태 발생 직전 9개월 동안 미 정보 당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오사마 빈라덴이 이끌던 알카에다가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를 무려 40차례나 했다. 그러나 부시는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고 듣지도 않았다. 여기에는 민간 항공기 조종법을 배우겠다면서 착륙 방법에는 관심이 없는 수상한 수강생들의 행태에 대한 보고도 있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정권의 실권자이던 딕 체니 부통령이 기존의 대(對)테러 안보전문가들을 대거 해고하면서 국무부와 국방부는 그야말로 알카에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 천지였다. 9·11 테러 사건을 막지 못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명백한 실책이었지만, 극도의 분노와 혼란에 빠진 미국은 당장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테러의 배후세력을 색출해 강력하게 응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미국은 테러가 알카에다의 소행이고 빈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부시 대통령은 9월 20일 미국은 향후 알카에다뿐 아니라 지구상에서 모든 테러조직이 사라질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단순한  보복전쟁이 아닌 테러리즘을 후원하는 국가들도 끝장을 내겠다는 선언이었다. 미국 주도 연합군은 9·11 테러 발생 25일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던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인 탈레반 정권은 빈라덴을 인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해 11월 탈레반 정권이 축출되고 과도정부가 들어선 뒤 2004년에는 친서방 정권이 수립된다. 하지만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던 탈레반 세력이 다시 세력을 규합하면서 미군과 정부군에 대해 게릴라식 저항을 본격화한다. 전쟁은 끝이 안 보이는 장기 소모전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치른 전쟁에서 "가장 오래 싸운 전쟁"인 아프간전쟁은 9·11 테러 20주년인 다음 달 11일까지 미군의 완전 철수로 종료된다. 미국이 철군을 발표한 지 몇달도 안돼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갔다.  


제2의 베트남전쟁?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승리 없이' 발을 빼는 아프간 전쟁을 미국이 9년 동안 막대한 전비를 쏟고 수만명의 젊은이들을 희생시켰지만 결국 백기를 들고 철수한 치욕적인 베트남 전쟁과 자꾸 비교하는 언론들의 보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아프간 철군 기자회견에서 미군이 아프간에 간 것은 테러조직의 수장 빈라덴을 제거하고 알카에다의 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아프간에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20년 전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에 묶여있을 여유가 없다"며 미국은 "오늘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1년 개전 이래 미국이 아프간에 쏟은 돈만 2조 달러(약 2300억원)가 넘고 미군과 동맹군은 350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정부군과 민간인 희생자는 수만명에 이른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전쟁을 수행한 이유가 빈라덴만을 잡기 위한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미국은 2011년 빈라덴을 사살했기 때문에 이후에는 아프간에 군대를 주둔시킬 명분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으로 여러 제국세력이 상충하는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어떤 나라도 구리, 납, 철, 금, 우랴늄, 리툼 등 무궁무진한 광물자원의 보고인 아프가니스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지금도 이곳에선 중국, 러시아를 비롯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영향력 확대를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소련은 1979년 자신의 비호세력이던 아프간의 공산정권이 이슬람 근본세력에 의해 흔들리자 침공했다가 1989년 10년 만에 철군했다. 아프간과 주변 카스피해 연안은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으로 가는 전략적 요충지로 주요 산유국인 소련에게 아프간을 경유하는 석유 유통로 확보는 중요한 과제였다. 아프간에 주둔했던 미군도 마찬가지였지만 소련군도 험준한 산악지역과 모래밭에서 게릴라전에 능한 아프간 투사들을 굴복시키는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집권을 막지 못하고 막대한 전비만 축내며 이후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다. 최첨단 초정밀 무기를 앞세우며 유례없이 월등한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소총과 대포 등 재래식 무기로 저항하는 탈레반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아프간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돌려놓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규모 파병에도 승기를 잡지 못하는 '명분 없는 전쟁'을 종식시킬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미 해군특수부대가 2011년 5월 2일 마침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한 저택에서 은신 중이던 빈라덴을 사살한 것이다. 미국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그의 시신은 항공모함 칼빈슨호에 옮겨진 후 바다에 수장됐다.  빈라덴 사살은 미국에게 아프간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올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간의 국가재건'이라는 핑계로 계속 남아있다가 '제2의 베트남전'이라는 재앙을 피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미국의 아프간 철군에 대해 서방 주요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20년 동안 엄청난 비용과 군사적 개입에도 결과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편이 못 되고 다시 반미 이슬람세력인 탈레반 세력에 의해 장악되면서 미국에겐 뼈아픈 가르침을 안겨 주었다. 막강한 전투력으로 전투에선 이길 수 있지만 전쟁에서 승리는 어렵다는 사실을 베트남 전쟁에 이어 또 한번 여실히 보여준 케이스이다. 



 

카불 장악 임박한 탈레반 [AFP=연합뉴스] 



미국이 빈라덴을 잡기 위한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지만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은 애초 아프가니스탄보다는 사담 후세인이라는 대표적인 반미성향 독재자가 20여년간 철권 통치하던 이라크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 부시와 체니는 9·11 테러 이후 이라크와의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후세인만 제거하면 중동의 평화가 온다고 믿고 있던 부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비밀로 제조하고 있다는 잘못된 첩보를 핑계로 이라크 공격에 나선다. 결국 이라크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002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공습 때 동남부 산악지역인 토라보라에 은신해있던 빈라덴을 거의 잡을 뻔했으나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대(對)테러 자원을 이라크로 이동시키면서 체포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라크와의 전쟁은 미국에게 또 다른 재앙이었다. 미국은 부시의 바람대로 이라크에서 반미 독재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했지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의  세력확장 등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말까지 이라크 내에 주둔 중인 미군 전투병력의 임무를 종식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을 부시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미국에게 9·11은 끔찍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 비극을 수습하던 부시와 체니에게는 놀라운 기회이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한 싱크탱크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는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1997년 봄에 결성된 이 단체는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한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창립 발기인 25명 중 10명이 부시 행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여기에는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비츠 국방 부장관 등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 3인방이 모두 포함돼 있다.이들은 부시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걸프지역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을 강화해 석유자원을 확보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축출할 것을 주장해왔다. 9·11테러 발생 1년 전인 2000년 9월에 나온 PNAC의 보고서 '미국방재건전략'(Rebuilding America's Defences)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변혁의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재앙 같은 사건이 터져준다면 얘기가 다르다. 또 하나의 진주만 공습 같은 사태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에 따르면 PNAC는 9·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낸다. "이라크와 테러 공격을 직접 연결시킬 수 있는 증거가 없다 해도 테러리즘 및 그 후원 세력 척결을 목표로 하는 전략에는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제거하기 위한 단호한 노력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라는 내용의 서한이다.  결국 알카에다가 네오콘에게 또 하나의 진주만 사건을 선사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빈라덴의 추종자들이 저지른 여객기 충돌 테러 공격에서보다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전쟁이라는 두개의 재앙에서 더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9·11은 냉전 해체 이후 세계의 경찰이라 자부하며 군사적 헤게모니를 확대하려던 미국의 해외 군사개입 확대를 정당화시켰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미국은 자신들의 글로벌 안보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있다. 이제 미국은 알카에다 같은 테러단체가 아닌 안보전략상 새로운 적인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아태지역 안보에 더욱 역량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대한민국은 북핵문제와 주한미군의 미래 등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적절한 대응을 수립할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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