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브라질판 트럼프'의 이유있는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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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1-07-1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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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부통령 퇴진하라" 브라질 반정부 시위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지난 6월 19일 브라질 상파울루시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현장에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군 장성 출신인 아미우톤 모우랑 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 등이 놓여 있다. 






영토·인구·경제적으로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 위기가 심상치 않다.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가팔라지며 재난대응 의료체계는 거의 마비상태이다. 실업난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화되며 경제는 10여년 전으로 후퇴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은 무분별한 난개발로 지난 2년간 경기도와 서울을 합친 면적보다 넓은 지역이 파괴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극우 성향의 포퓰리스트 대통령은 폭언을 밥 먹듯이 하고 코로나 방역수칙을 정면으로 무시한 채 브라질 국기를 어깨에 두른 지지자들을 앞세워 대규모 오토바이 행진에 나서기도 한다. 그는 과거 부패한 좌파 정권이 망쳐놓은 나라를 바로잡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경제위기를 자초했고 백신 구매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며 탄핵 위기에 내몰렸다. 국민들은 차라리 군사독재(1964~85) 시절이 낫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어쩌다 브라질이 이렇게 되었을까?  

코로나 사태로 브라질은 지금까지 53만여명이 숨져 누적 사망자 수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66)은 코로나19 발발 초기부터 '가벼운 독감' 정도로 여기고, 트럼프처럼 말라리아약을 치료제로 쓰면 된다고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본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조치는 브라질 경제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강력 반대했고 정부 차원의 백신확보도 서두르지 않았다. 또한 주(州) 자체적으로 방역조치를 강화시킨 주지사들에 대해 권한남용으로 위헌소송을 냈다가 대법원이 주지사들의 손을 들어주자 체면을 구겼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보건부 간부들이 올해 초 인도산 백신인 '코백신'을 정가의 10배나 높은 가격에 구매하고 이권을 챙기려 했다는 '백신 스캔들'이 터지면서 현재 브라질 정국은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이다. 보건부 간부들이 백신 중개업자로부터 뇌물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인 의회 청문회는 마치 리얼리티 TV 쇼를 보는 것처럼 고성과 오열로 가득하다. 민심이 부글부글 들끓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이달 초엔 검찰총장실이 연방대법원의 승인을 받아 '백신 스캔들'과 관련 대통령의 연루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처럼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는 열렬한 극우 지지층이 많다. 여성, 흑인, 빈민층, 원주민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군사독재를 찬양하거나 범죄자에 대한 고문을 옹호하는 등 대통령은 독설과 기행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백인 보수층은 그를 중심으로 결집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주말 거리는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시위대로 넘쳤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반대파들이 결집하면서 그의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약해지고 있다.  2016년 좌파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시위를 주도한 양대시민단체인 '자유브라질운동'(MBL)과 '거리로 나오라'(VPR)는 이제 극우파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 손을 잡았다. 현재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 붕괴 직전이다. 지지율 추락에 위기감을 느낀 대통령이 오토바이 행진으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외신들은 사면초가에 빠진  보우소나루의 정치적 운명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거론한다. 배임 혐의로 형사 기소되거나, 의회에서 탄핵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내년 10월 대선에서 야당인 노동자당(PT) 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이는 '브라질 좌파의 대부'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77)과의 대결에서 패배하는 것이다. 구두닦이 출신인 룰라는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날리며 2002년과 2006년 대통령에 당선됐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집권기간 철광석, 석유, 농산물 등 원자재 수출 호조에 대대적인 복지정책과 내수확장에 힘입어 브라질 경제는 초호황을 누렸다.  2018년 대선 재도전을 노렸으나 뇌물 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2017년 실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다가 올해 3월 대법원 판결로 혐의를 벗으면서 2022년 대선에 재출마길이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브라질의 실업률은 2012년 이래 최악인 15%에 육박하고 있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1월 사이 81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지부진한 개혁과 방역실패가 브라질의 경제적 고통을 결정적으로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보우소나루 정권 출범 이후 그의 정책을 지지해온 재계와 금융계, 경제학자들도 뒤늦게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연방정부의 독단과 무능에 위기감을 느낀 많은 지방정부는 자체적으로 위기관리위원회를 두고 사태를 관리하고 있지만 확진자와 사망자수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브라질은 100년 만의 최악의 가뭄까지 겪으면서 GDP의 30%를 차지하는 농업산업에 대한 타격이 심각하다. 또 수력발전에 의한 전력생산에 차질이 생겨 기업과 소비자용 전기요금은 올해 최대 40%까지 치솟았다. 소비자물가 상승에다 높은 실업률이 더해져 브라질 내 최빈곤층은 기아로 몰리고 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번 가뭄이 아마존 열대우림 벌목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취임 후 환경보호보다 경제적 개발 이익을 앞세우며 아마존 열대우림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가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열린 기후정상회의 연설에서 2030년까지 무단 벌채를 종식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루 뒤 의회를 통과한 올해 환경예산 가운데 35% 삭감 방침을 발표해 자신의 약속을 무색하게 했다. 지난달에는 열대우림 목재 불법 반출을 도와주고 대가를 챙겼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던 히카르두 살리스 브라질 환경부 장관이 사임하면서 보우소나루 정권의 도덕성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4월 기후정상회의를 전후해 미국과 브라질 간에 진행된 환경 협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환경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미국이 브라질에 대한 특혜관세를 줄이거나 제외하는 등 경제제제를 가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브라질은 중국, 인도, 러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성장속도가 빠른 신흥경제강국 모임인 브릭스(BRICs)에 속한 나라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던 브라질의 날개없는 추락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1994년 브라질은 화폐개혁으로 만성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종식시켰다. 10년 전만 해도 오일머니가 넘쳐나면서 각종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실시되어 빈곤과 사회불평등 문제가 해소되기 시작했고,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개최국으로 번영의 길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경제가 호황이던 룰라 대통령 시절 브라질은 세계기후변화 회담을 주도하기도 했다. 높은 인기를 누리던 룰라의 후임으로 그의  비서실장 출신인 여성 지우마 호세프가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세계 상품시장이 불안해지고 호세프 대통령의 무책임한 예산낭비에 경제는 내리막길로 치닫는다. 그는 부패 스캔들로 지지도가 9% 수준으로까지 하락한 끝에 2016년 8월 31일 의회에서 탄핵당해 권좌에서 축출된다. 그를 이은 미세우 테메르 대통령도 뇌물혐의로 겨우 탄핵을 모면한다.

수위 높은 막말과 기행으로 관심을 끌던 극우파 포퓰리스트 보우소나루가 2018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좌파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뿌리깊은 트라우마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보우소나루는 1986년 군수뇌부 부패를 비난한 글로 잠시 투옥된 후 대위로 전역하여 정치에 투신했다. 그는 선거 유세중 복부를 찔리는 피습을 당하면서 보수성향 시민들이 더욱 결집하면서 55%의 득표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시절인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지원 중 발생한 커터칼 피습사건으로 보수층이 결집해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것과 일맥상통한다. 

보우소나루가 집권하자 과감한 개혁과 경제회복 그리고 정치적 비리와 부패 척결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특히 시카고대에서 공부한 자유시장 주의자인 파울로 게지스가 경제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금융시장은 브라질의 경제 개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보우소나루는 차기 대선을 의식해 자신이 비판했던 선심성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재정적자 확대에 지출을 반대하는 게지스 장관과 갈등이 점화되고 경제 개혁성과는 지지지부진하며 게지스 장관의 하차설도 돌고 있다. 지난 3월엔 페르난두 아제베두 이 시우바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충성맹세를 하지 않아 교체되었다. 지난 4월 대통령의 핵심측근이던 세르지우 모루 법무부 장관은 연방경찰청에 대한 부당한 대통령의 간섭에 반발해 사임하면서 정국이 더욱 안개 속에 빠져들고 있다. 모루는 연방 1심 판사 시절 룰라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정치인에 대한 무리한 반부패 수사를 지휘한 인물이다.  보우소나루 취임 후 교육부장관 자리는 극우발언과 허위학력 논란 등으로 4명째 교체되었다. 이들 중 아무도 원격수업 시스템을 구축해놓지 않아 코로나 확산에 교육 공백은 더욱 커졌다. 나라를 새롭게 개조할 것이라는 보우소나루의 공약(公約)은 대부분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브라질은 민주화 이후 명실상부하게 세계 강국으로 변모할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6월 스페셜 리포트에서 그 이유로 3가지 브라질의 실수를 지적했다. 첫째는, 거북이 걸음 경제개혁이다. 좌파 노동자당 집권 시(2003~2016년) 연 4%의 성장률을 나타냈으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개혁과 투자는 뒤로 미룬 탓이다. 그리하여 원자재 상품가격이 폭락하자 브라질 경제도 최악의 경기침체에 직면한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으로 남은 2년여의 임기를 채운 미세우 테메르 대통령과 보우소나르 정부에서 연금손질 등 일부 개혁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흡했다. 두 번째로는, '라바 자투'(Lava Jato, 세차용 고압 분사기)'라는 이름으로 2014년 3월 이후 시작된 대규모 권력형 비리와 정치권 부패 수사이다. 이 수사로 인해 노동자당과 좌파진영은 기반이 크게 무너졌다. 당국의 수사는 브라질 국내외로 확대되어 페루, 파나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기소되기도 했다. 정치인들은 지나치게 서슬 퍼런 '라바 자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반부패 개혁법안에 저항했다. 결과적으로 브라질의 개혁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브라질 정치의 구조적 문제점이다. 브라질 선거제도는 주(州)를 단위로 하는 ‘대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가 결합한 구조로 수십개의 군소정당이 난립한다. 군소정당들은 집권연정 및 기업들과의 부정거래로 상당한 이익을 취해오고 있다. 이리하여 대부분 정치인들은 장기적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개혁보다는 단기적으로 표를 얻을 수 있는 사업에 관심을 둔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룰라 전 대통령은 최근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압도하면서 벌써부터 그의 대세론이 형성될 조짐이다.  지금 브라질이 1985년 민주화 복귀 이후 최대위기에 처한 이유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탓만이 아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은 보우소나루와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부상을 가져왔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의회에서 탄핵이 되거나 내년 선거에서 좌파 포퓰리스트 후보에게 패배를 한다고 해서 브라질 정국의 혼란이 수습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이 안정되려면 무엇보다도 만성적 저성장과 실업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감한 경제개혁과 선거구 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부패와의 전쟁은 정치적인 판단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국가 예산 낭비를 줄이고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는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고 국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경제적으로 선진화를 이룩했지만 정치권은 아직 갈길이 먼 우리 대한민국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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