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대선주자 현금살포 경쟁...인플레 유령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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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산업연구실장)
입력 2021-08-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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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산업연구실장)

 


인플레이션의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농수산물 가격 상승이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올해 봄이었나. ‘파테크’라는 멋진 말이 있었다. 알아보니 양파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마트에서 비싼 돈 내고 사는 대신에 스스로 재배해서 조금이라도 절약한다는 의미임을 알고 기발하다기보다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양파 가격 급등과 같이 인플레이션이 언뜻 보기에는 특정 품목에 한정되어 보인다. 그러나 15분기째 1%대 혹은 그 이하로 저공 행진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2%대로 진입했다(2021년 2분기 2.5%, 전년 동기 대비 기준). 최근 꿈틀거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조금 무서운 이유는 위기 이후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말 그대로 통화량이 팽창하여 화폐 가치가 폭락하며 물건 가격이 계속 오르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원인은 통화량의 증가, 즉 시중에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2~3년간 한국의 통화량은 어떠했나. 경제 규모가 확대되면서 통화량도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듯, 국내 통화량도 사상 최대 규모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러나 통화량이 증가하는 속도는 2018년부터 빨라졌다. 통화량 증가율은 2014~2015년 연간 8%대에서 2018년 6%대 중반까지 하락한 이후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국내 통화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이 막대한 규모로 진행된 것이다. 통화량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M2(현금, 예금, 수익증권 등) 증가율을 보면 2020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 충격을 받은 2009년 9.9%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9.8%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건만 내년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누가 더 많은 지원금을 약속하는가 경쟁하는 형국이다. 누가 선택을 받건 국내 통화량이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은 유지될 것이다. 달콤한 현금살포에 손을 들어준 유권자와의 약속을 걸고 당선되었는데 감히 증세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 늘어난 통화량을 거둘 수 있는 장치인 증세 카드가 나오기 힘들다면, 인플레 폭탄은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인플레가 오면 물건 가격이 오르니까 상품을 파는 기업보다는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어려움이 더 커지는 것은 대체로 맞는다. 물론 원자재가격도 상승하여 기업들이 상승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도 하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이전과 같은 금액의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감소하는 영향을 직접 받게 되는 소비자들의 체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의미하다 보니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을 보유한 이들의 부는 상대적으로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실물자산이 없는 서민·청년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훨씬 적어졌는데,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된 이들 때문에 배 아파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취약 계층의 허탈한 마음을 파고들 수 있겠다. 이 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이렇듯 매일매일의 식재료 가격이 계속 오르는 점은 그야말로 고통이다. 앞에서 언급한 파테크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우유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그 원인은 국내 원유(原乳) 가격 인상에 있다고 하니 우유뿐만 아니라 원유를 사용하는 치즈나 아이스크림, 커피 등의 식품 가격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달걀 가격은 어떤가. 상승 기조 굳히기를 넘어 무서운 상승 속도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달걀 가격 상승률은 2019년에 0.6%에서 2020년 8.8%, 그리고 2021년 상반기에는 이보다 훨씬 큰 폭인 38.9%를 기록하였다.

식품 가격 상승세가 무서운 것은 국내에만 한정된 상황이 아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하는 세계 식품물가지수 상승률은 2020년 상반기에 2.3%에서 2021년 상반기에는 24.6%로 훌쩍 뛰었다(전년 동기간 대비 기준). 세계 곡물가격지수 상승률도 같은 기간을 비교하면 1.3%에서 26.8%로 큰 폭의 차이가 난다. 올해 상반기 20% 중반대의 세계 식량식품 상승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및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 찾아온 애그플레이션(농식품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2~13년쯤 글로벌 애그플레이션은 당시 여름의 가장 큰 경제 이슈였다. 이미 세계적으로도 식량 및 곡물 가격 상승률이 그때 당시보다 높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들 품목도 많이 수입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높아진 수입 가격이 국내로 전이되는 상황이 머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분명 10여년 전보다는 최근 훨씬 더 자주 발생하고 있는 기상이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폭우와 폭염으로 인해 주요 작황지의 생산이 급감하여 발생하는 농수산물 가격 변동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크게 요동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식자재 가격이 오를 수 있는 리스크를 고려하면서 이를 많이 수입하는 외식업계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외식업계가 코로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은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식재료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이미 수 개월간 충격이 누적되어 온 중소 규모의 외식 업체나 자영업자 등에 대한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궁금하고 걱정이다. 이들에 대한 생존 지원 대책이 여전히 현금성 지원이 중심이라면 그것 자체가 인플레이션 시한폭탄 심지에 붙은 불씨를 살려 두는 것일 테니 말이다.


 
홍준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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