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30만원대 유럽 여행상품…여행사 자멸의 수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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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1-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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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재개에 대한 기대감에 여행사들의 상품 판매가 줄을 잇는 상황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에스키모인은 여우 사냥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 며칠 전 만난 지인이 물었다.

"글쎄, 덫을 놓아서 잡겠지"라고 답하자, 그는 얘기했다. "아니야. 여우는 스스로 죽어. 에스키모인은 도구만 제공할 뿐이지."

에스키모인이 여우를 사냥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칼에 여우가 좋아하는 동물의 피를 묻힌다. 그리고 칼 끝을 하늘로 향하게 한 후 눈속에 파묻는다.

좋아하는 동물의 피냄새에 잔뜩 흥분한 여우는 눈속에 묻힌 칼날을 핥기 시작한다. 여우의 혀가 베이고, 그 혀에서 계속 피가 흐르지만 여우는 이를 자신의 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한 채 밤새도록 칼날을 핥아댄다. 그렇게 여우는 과다출혈로 쓰러져 죽는다. 이를 지켜보던 에스키모인은 죽은 여우를 어께에 들쳐메고 유유히 사라진다. 

에스키모인들의 여우 사냥법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착잡해졌다. 일부 여행사의 행보가 마치 앞날을 보지 못하는 '여우'의 행동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유럽 현지여행 상품 일주일 일정을 39만원대에 모십니다."

A 여행사는 최근 한 홈쇼핑을 통해 유럽 현지여행 일주일 상품을 해당 가격에 판매했다. 아무리 현지투어 일정만 포함한다고 해도 가격이 4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니, 입이 떡 벌어질 만도 했다. 

호응도는 높았다. 방송 한 시간 동안 5만2000명이 상품을 구입했고, 결제금액은 200억원을 웃돌았다. 

향후 항공과 숙소까지 모두 해당 여행사에서 결제한다고 가정한다면, 총 판매금액은 1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게 여행사의 예측이다.

상품 가격이 저렴하면 일단 팔린다. 더구나 코로나19 확산세에 여행에 굶주리는 이가 많은 상황에서 이 정도 판매고를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업계 관계자는 우려했다.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했다. 향후 해외여행이 재개되면, 항공사와 숙박업체 등은 항공권과 숙소 가격을 올려 그간의 손실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으려 할 것이고, 이는 엄청난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 꼭 이런 이유가 아니어도 감염 확산 변수에 따라 해외여행 정상화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여행사는 일단 팔고 보자는 심정으로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한 후, 들어온 예약금액으로 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융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한다고 가정하면, 향후 여행사가 취소 요청에 대응할 자금 여력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당장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 살 깎아 먹기'를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고, 정부가 백신 접종자를 대상으로 해외 단체여행을 허용한다고 밝힌 것은 분명 해외여행 재개에 큰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것이 해외여행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교부는 해외여행을 금지 또는 자제하는 특별여행주의보를 계속 연장하고 있다. 감염 확산세가 주춤하지 않는 상황에서 특별여행주의보는 지속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여행 재개, 침체한 여행시장 정상화는 여전히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수도권은 1일부터 완화하기로 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주간 연장하기로 했다. 급격히 늘어난 확진자 수 때문이다. 여기에 '변이 바이러스'까지 우리를 위협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채 힘겹게 버티다 해외여행 상품 예약대금을 통해 간신히 숨통을 틔웠을 여행사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해외여행에 들떠 상품을 구입했던 이들은 자연스레 상품을 취소하면서 환불을 요구할 것이다. 자금을 융통할 여력이 충분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업계 관계자의 우려처럼 자칫 '자멸'할 수도 있다. 칼에 묻은 피를 핥다 스스로 죽어간 여우처럼 말이다. 

여행사들은 이미 외부 변수에 큰 영향을 받으며 수십년을 견뎠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잘 버티지 않았나. 당장 눈에 보이는 수익 뒤에 가려진 위험에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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