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관평원 유령청사 낳은, 나사빠진 '정부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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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1-05-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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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세종시에 신축된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 청사.청사 이전이 무산돼 1년째 유령 청사로 남아 있다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정부기관이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세종시 이전 대상도 아닌데 청사를 세종시에 새로 짓고 직원들에게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게 했다고 해서다. 청사 이전이 끝내 무산되고 그 때문에 171억원이나 들여 지은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청사가 1년째 텅 빈 유령 청사로 있다고 하니 더욱 황당하다. 관평원 유령 청사 소동을 되짚어 보면, 정부기관들이 일을 얼마나 주먹구구 식으로 하는지 혀를 차게 된다.

관평원은 관세 행정의 선진화를 목표로 2003년 대전광역시에 설립된 관세청 직속 기관이다. 수출입물품에 매길 관세를 평가하고, 관세 대상 품목을 분류하는 일 등이 주요 업무다. 이번 소동은 관세청이 2015년 관평원 청사를 세종시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그 10년 전인 2005년 정부 청사 관리 업무를 맡은 행정안전부는 세종시 이전 대상과 관련한 고시를 발표했다. 행안부는 이 고시에서 관평원은 이전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이전 대상 아니다’ 행안부 고시 확인도 않고 이전 추진

청사 이전을 추진하려면 해당 청사가 이전 대상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그런데 관세청은 이런 기본을 따르지 않고 청사 이전부터 추진했다. 왜 그랬을까? 그 해명이 가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관세청은 관평원을 이전 대상에서 제외한 2005년 행정안전부 고시를 미처 몰랐다고 했다. 이 고시가 당시 전자관보에만 전문이 실려 있었을 뿐 국가법령센터에는 일부 내용만 실려 있어 내용을 알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했다.

관보는 법령, 정부 고시, 대통령 지시사항 등 국가 행정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정부기관끼리 공유하는 수단으로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1일부터 매일 발행돼 왔다. 과거에는 종이 관보로 발행됐으나 2001년부터 전자 관보 중심으로 바뀌었다. 종이 관보든 전자 관보든 관보의 역사는 70년이 넘는다. 이런 관보가 정부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 창구임은 공무원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전자 관보에만 전문이 실려서 몰랐다고 하니 말이 되나. 설사 전자 관보에만 실려 미처 몰랐다고 해도 2015년 청사 이전을 추진할 때는 행정안전부에 확인할 수도 있었고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전 대상이 아님을 확인하고 청사 이전 추진을 중단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세청은 행안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2015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새 청사 부지 가격을 논의했다. 이어 세종시 건설 업무를 맡고 있는 행복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관평원 청사 신축 부지 개발 검토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행복청이 어이없는 일을 했다. 관평원이 이전 대상인지 행정안전부에 확인하지도 않고 ‘개발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관세청에 회신한 것이다. 행복청이 이때라도 행안부에 확인했더라면 관세청의 무리한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었을 것이다.

관세청은 행복청 회신을 근거로 2016년 기획재정부에 세종 청사 신축 예산 171억원을 편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재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 승인을 거친 뒤 2017년 설계비 지급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171억원을 관세청에 지급했다. 관세청은 설계비 예산이 나오자 2017년 LH와 부지 매매 계약을 맺었다. 곧이어 행복청에 직원용 아파트 특별공급, 이른바 ‘특공’ 대상 기관 지정을 요청했고 행복청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전 안된다’ 행안부 재확인 뒤에도 청사 신축 강행 
 
이 과정에서 관세청은 또 한번 황당한 일을 했다. 2018년 2월 행복청이 뒤늦게 행정안전부 고시를 확인하고 ‘관평원이 이전 제외 기관으로 명시돼 있어 이전 추진을 위해서는 관련 기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관세청에 보냈다. 이에 관세청은 행정안전부에 ‘세종시에 부지를 확보했고 독립 청사 신축이 진행중’이라며 관평원을 이전 제외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행안부는 “이전 대상이 아니다’라며 거부했다.

그렇다면 관세청은 이때라도 관평원 청사 신축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관세청은 그러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대전 등 지방 소재 공공기관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사 이전을 강행했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관평원은 이전 대상이 아니라고 애초 2005년 행안부 고시에 명시돼 있었고 2018년에도 행안부가 관세청의 이전 요청을 거부했으면 결론은 명확하다. 관평원의 세종시 이전은 불가능하다. 더 이상 왈가불가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특별법 운운하며 공사를 강행하다니, 이게 정부기관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에 행정안전부는 작년 5월 관세청에 최종적으로 ‘관평원 이전 불가’를 통보했다. 그러나 지하 2층, 지상 4층짜리 새 청사는 이미 완공된 뒤였다. 관평원 이전이 무산되는 바람에 이 청사는 지금껏 아무도 근무하지 않는 유령 청사로 남아 있게 됐다.

관세청이 처음부터 무리하고 기본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게 관평원 유령 청사 소동의 근본 원인이지만, 관련 기관 중 다른 기관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이번 소동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선 행복청이 2018년에야 행정안전부 2005년 고시를 확인한 것도 문제다. 2018년에는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을 왜 2015년 관세청이 행복청에 신축 부지 검토 요청을 했을 때는 확인할 생각을 못했는지 의문이다.

기획재정부도 그렇다. 관세청이 청사 신축 예산 171억원 편성을 요청했을 때 관평원이 이전 대상인지를 왜 확인하지 않았을까. 관세청이 당연히 확인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관세청이 이전 대상도 아닌 기관을 이전하겠다고 할 리는 없다고 믿어서였을까. 하긴 기획재정부가 청사 신축 예산을 편성할 때 그 정부기관이 세종시 이전 대상인지 아닌지까지 확인할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기획재정부는 예산 편성 업무를 하는 곳이고 따라서 예산 편성을 위한 절차만 따르면 되지, 예산 편성의 전제가 되는 청사 이전 문제까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기획재정부가 관평원이 이전 대상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청사 신축 예산을 편성한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관평원 신축 청사 예산을 승인한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전 최종 무산됐지만 이미 새 청사 완공···결국 유령 청사로

문제는 행정 시스템이다. 세종시 이전 문제라면 정부 청사 담당 부서인 행정안전부가 이전 대상 여부를 고시한 내용이 행복청과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들 사이에 당연히 전파되고 인지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또는 청사 이전 문제가 나오면 관련 부처가 행정안전부에 이전 대상 여부를 당연히 확인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안 돼 있으니 행복청은 뒤늦게서야 관평원이 이전 대상이 아님을 확인하고 관세청에 행정안전부와 먼저 상의하라고 한 것이다. 또 기획재정부는 관세청이 요청한 청사 신축 예산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에 행정안전부는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 2005년 고시에 세종시 이전 대상 기관과 비대상 기관을 명시해 고시했다. 2018년에는 관평원을 이전 대상으로 해달라는 관세청 요청에 명확한 거부 방침을 통보했다. 그럼에도 관세청이 청사 이전을 강행하자 2019년에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감사원이 감사 대상이 아니라며 감사 청구를 각하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행정안전부는 자기 할 일은 다한 것이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했을 뿐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게 문제다. 관평원이 이전 대상이 아닌데도 청사 신축을 강행하고 행정안전부가 거기에 몇 번이나 제동을 걸고 있었는데도 그런 사실이 행복청과 기획재정부에 공유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소동 과정에서 행복청은 2020년 10월 행정안전부에 관평원 이전 여부를 질의하고 ‘이전 불가’라는 방침을 확인한 뒤 관평원 직원들에 대한 아파트 특별 공급 확인서 발급을 중단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는 이미 그 5개월 전 관세청에 ‘관평원 이전 불가’를 통보했다. 이런 사실이 행복청에는 공유되지 않았기에 행복청이 그 5개월 뒤에 행정안전부에 관평원 이전 여부를 또 질의하는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여기서도 또 한번 정부기관 간의 업무가 시스템에 따라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에야 정부 청사 관리 업무에 관한 새로운 방안을 내놨다. 내년부터 공용 재산 취득 사업 계획안에는 행정안전부 협의 결과서를 의무적으로 첨부하라는 내용이다. 공용 재산 취득 사업이란 세종시 청사 신축 같은 일을 말한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할 때는 청사 이전 대상인지 아닌지 등에 대해 행정안전부에 확인하고 그 결과서를 반드시 제출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게 바로 행정 시스템의 가동이다. 이런 시스템이 진작에 가동됐더라면 관평원 유령 청사 소동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시스템이 마련된 것은 다행이지만 여기서 그칠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정부기관들이 시스템 없이 주먹구구 식으로 일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음을 관평원 유령 청사 소동이 보여준다. 곳곳의 구멍난 시스템을 찾아내 정비하지 않으면 관평원 유령 청사 같은 황당한 일이 언제든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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