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한미 정상회담, 44조 對美투자 손익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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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1-05-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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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첫 번째 정상만남이 있었다. 회담 이후 나온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하여 백신 협력과 기후변화 대응, 달 자원 개발협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공동성명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부나 여당 입장에서는 이번 방문성과를 과대 포장하려 할 것이고, 반대로 야당에서는 여하튼 간에 흠집 내기를 시도할 것이다. 경제분야에 대한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평가에 앞서 다음과 같은 점들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경제나 통상문제는 양국 간 핵심 이슈로 부상할 정도의 사안이 되지 못했다. 미국의 대한(對韓) 상품수출은 작년 11월 419억 달러에서 꾸준히 증가, 지난 4월에는 644억 달러를 기록하여 연속 6개월 증가세를 보였다. 상품무역적자가 다소 늘긴 했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미국이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명해 왔던 한·미 FTA 이행 문제도 이번만큼은 두드러지는 이슈가 없었다.

이러한 데에는 LG와 SK 간 배터리 분쟁에 대한 최종 합의가 크게 작용하였다. 우리는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SK이노베이션 배터리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결정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미 행정부가 매우 크게 곤혹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핵심 공약 실천을 위해서 미국 내 배터리 산업의 육성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무역위원회(ITC)가 LG와 SK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 최종판결에서 LG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로 인해 SK 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건설이 중단됨은 물론, 이와 연계된 미국의 자동차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특히 조지아주 일자리 및 자동차 배터리 공급망에도 타격이 클 것으로 나타나 조지아주의 반발이 매우 컸으며, 이에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가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무역위원회 결정을 거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거부권 행사는 중국을 겨냥한 바이든 행정부의 지재권 보호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 정부는 여러 차례 양 사의 중재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결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시한이 다가왔고, 이에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적극적으로 막판 중재에 나서 LG와 SK, 양 사의 전격적 합의 도출을 이끌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전격적인 막판 합의에 기쁜 나머지 관련 성명을 내었을 정도다. 비록 LG와 SK, 양 사의 합의였지만 실은 우리 기업과 미 무역대표부 간 신뢰가 구축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 기업은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다른 걱정을 했다. 최근 국제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봉쇄전선에 우리나라의 가입을 요청할 경우 입장이 난처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더 걱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말기처럼 미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미국기업은 물론 다른 국가의 기업들까지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제한한다면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인 우리 기업으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우리 기업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공급중단을 요구할 경우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였다. 특히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공장을 가지고 있는 삼성을 이번 정상회담 직전까지 두 차례 부른 것에 우리 기업들은 큰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정상선언에는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공급제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핵심 기술 수출통제와 관련한 협력의 중요성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 역시 미 무역대표부의 노련함으로 볼 수 있다. 타이 대표는 중국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향후 세계의 소비시장으로서 중국의 가치를 가볍게 볼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기업인 테슬라나 구글이 왜 중국 정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미 무역대표부는 한국 기업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기보다 그러한 상황을 십분 이용해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을 두 차례나 백악관 회의에 초대한 진짜 이유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공급중단 요청이 아니라 미국 내 투자에 대한 삼성의 모호한 태도를 확실히 매듭짓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의심된다. 어쨌든 미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삼성과 현대, SK 등으로부터 44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받는 구체적 성과를 얻어냈다. 이러한 투자가 미국 내 일자리 증가로 이어져 내년 말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미국만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들이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판매한다. 조만간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가 대세가 되면 당연히 핵심 부품인 배터리가 필요해지니, 지금 우리 기업의 배터리나 반도체 공장 투자는 선점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조치이기도 하다. 더욱이 바이 아메리칸의 혜택을 기대할 수도 있어 기업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5G나 6G를 결합하여 자율주행차 등 첨단기술의 개발협력까지 미국 내 글로벌 기업과 연계된다면 금상첨화다. 이를 통해 미국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도 석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 경제분야는 아무래도 기업들이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혁신적 제안이 쉽게 정책에 반영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1년여 임기를 남긴 문재인 정부가 우선 추진해야 할 핵심 과제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미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얀구원 선임연구위원 △관세청 자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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