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WTO, 포용의 다자체제로 거듭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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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1-04-2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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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2차 WTO 각료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164개 회원국 통상장관들이 모이는 각료회의는 통상 2년마다 열리는 WTO 최고위급 의사결정기구로 WTO의 주요 현안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자리이다. 이번 각료회의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WTO에 대한 회원국의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주요 이슈에 대해 회원국 간 입장대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적용 면제 및 수산보조금과 전자상거래에 관한 조그만 합의(small deal)가 시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의 공급 문제는 이번 각료회의에서도 주요 의제 중 하나이다. 이와 직결된 논의가 WTO의 지식재산권(TRIPS) 잠정 의무면제 이슈다.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발효된 WTO의 지식재산권 협정은 저작권, 산업디자인, 특허, 미공개 정보의 보호 등 광범위한 지식재산권에 대해 구체적인 보호대상과 보호기간을 명시하고, 이를 모든 회원국이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같은 의약품 제조도 지식재산권의 대상으로 세계적으로 보호받게 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의 확보 및 접종률의 국가별 불평등과 백신 생산국인 선진국을 중심으로 하는 백신 자국우선주의가 확산되자 WTO 차원에서도 개도국들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적용을 잠정 유예하자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작년 10월 집단면역 수준의 백신접종이 완료될 때까지 코로나19 예방과 억제, 치료 등에 대해서 WTO의 지식재산권 적용을 잠정 면제하자고 제안하였다. 당연히 개도국과 최빈개도국들은 인도와 남아공의 제안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WTO의 지식재산권 보호규정 때문에 개도국의 백신생산시설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세계적인 백신공급 부족현상이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백신개발 국가인 미국, EU, 영국 등 일부 선진국들은 개도국들의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식재산권 보호 때문에 백신의 생산과 무역이 어떤 방해를 받고 있는지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지식재산권 보호로 새로운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과 혁신의 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개도국들의 주장대로 지식재산권 보호를 일시 유예한다고 해도 제약시설이 발달한 인도나 남아공 등을 제외하면 다른 개도국에서 백신의 생산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들어 지식재산권 보호 유예의 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지식재산권의 적용 유예보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개도국의 백신확보를 위한 재정지원 프로그램’과 같은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백신 보급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WTO 안에서의 이러한 팽팽한 대립구도가 최근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백신 제조업체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측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의 접촉 및 미 백악관의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일시 면제에 대한 옹호 발언 등이 그것이다. 비록 저렴한 비용으로 백신의 생산과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으나, 그 방법 중에 인건비가 싼 개도국에서의 백신 생산과 공급을 위한 WTO 지식재산권의 적용 잠정유예도 포함되어 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 이면에는 최근 인도에서 코로나19 감염자의 급증과 의료체계 마비가 있다. 인도는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국가로 특히 바이든 정부의 대중 견제안보연합체(QUAD)의 핵심 멤버이다. 특히 인도는 중국과 국경을 접해 중국으로서도 최소한 적대적이지 않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해외 백신반출에 신중을 기하던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에 백신지원 의향을 밝힌 것도 미국의 대외정책방향과 무관하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의 최근 변화 조짐은 WTO 다자체제에서 상실한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는 WTO 각료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WTO 지식재산권 적용 유예를 이끌어낼지 관심사이다. 우리나라의 제약능력을 감안할 때 코로나19 복제 백신의 생산이 가능할 경우 우리나라가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한편 비록 합의도출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그럼에도 관심을 둘 협상도 있다. 수산보조금과 전자상거래 협상이 그것이다. 수산보조금 협상은 그동안 여러 차례 합의안이 제시되면서 회원국 간 입장이 좁혀져 왔다. 이에 따라 이번 각료회의에서 그나마 합의도출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의제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상당한 이해가 걸려 있다. 약 2조원에 달하는 수산분야 보조정책의 미래가 이 협상 결과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협상도 지난 2월 합의도출을 위한 통합문서가 배포되어 이번 각료회의에서 낮은 수준에서 일부 합의도출이 기대되는 분야다. 특히 전자서명이나 전자인증, 온라인 소비자보호 등은 회원국 간 의견차가 적어 각료회의에서 합의도출 가능성도 크다.

이번 WTO 각료회의에 임하는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 신임 WTO 사무총장의 입장은 절박하다. 출범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WTO 다자체제가 이번 각료회의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WTO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미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얀구원 선임연구위원 △관세청 자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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