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강섭 법제처장 "행정기본법 제정·행정심판 기능 회복으로 국민 권익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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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현 기자
입력 2021-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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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기본법 제정 "해외서 벤치마킹할 선진화 사례"

  • 코로나19 긴급 대응 위해 당일 의견제시로 부처 정책 지원

  • 포스트코로나 입법과제 '원스톱 지원 TF' 구성

  • "행정심판, 법리적 무장 필요… 인용률 높일 것"

이강섭 법제처장이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행정기본법의 의의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법제처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법제처 제공]


정부의 모든 정책은 법에 근거를 둔다. 정부 입법으로 마련된 법안은 입법예고와 국회, 국무회의, 대통령을 거쳐 공포된다. 그리고 법안이 만들어지고 논의되며 공포되는 모든 과정은 법제처가 총괄한다.

법제처는 이 같은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핵심 기관으로 정부의 입법을 총괄·조정하고 법률은 물론 대통령령, 부령, 조약 등의 법령안을 심사하고 불합리한 법령은 정비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만난 이강섭 법제처장은 이 같은 법제처의 업무를 "정부부처들의 로펌과 같은 역할"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법제처는 정부조직법에 규정돼 있는 부처 중 유일하게 그 업무에 '전문적'이라는 수식어가 사용될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200명이 조금 넘는 규모의 비교적 작은 조직이지만 법을 만들고 해석하며 정비하는 전문성을 갖췄다. 정부 내 최종 유권해석기관이자 법제전문기관으로 내부 변호사 및 박사 비율이 16%에 달한다. 5급 이상 직원들로만 보면 21%가 해당한다.
 
행정기본법, 법제도 선진화 증거… "해외서 벤치마킹할 사례"

최근 법제처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오랜 숙원사업이던 행정기본법이 지난 3월 23일 공포되면서 결실을 본 것이다. 행정법의 골격을 이루는 행정기본법이 만들어진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 처장은 차장 시절인 2019년부터 행정기본법의 입법작업을 진두지휘해왔다. 그는 "고시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행정법의 법전이 없다는 게 의문이었다"며 "이번 행정기본법 제정은 정부와 학계, 법조계가 연구하고 논의한 끝에 오랜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 의미가 남다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행정기본법 제정은 비단 행정학자와 법학자들에게만 의의가 있는 사건이 아니다. 행정의 원칙과 기준이 명문화되면서 국민들은 소송을 하지 않고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이 처장은 "행정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행정법의 주요 원칙이 법률에 명문화돼 국민의 권익을 한층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됐다"며 "법을 일관되게 집행해 국민과 공무원 모두 제도를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또한 행정기본법의 탄생은 한국의 법 제도가 선진화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 처장은 "해외에도 행정기본법을 가진 나라가 많지 않다"며 "한국의 법제는 일본법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는데 이제 행정법에서는 한국이 앞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행정기본법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려 벤치마킹할 수 있는 사례로 소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법제처는 신남방국가의 협력 요청에 대응해 인도네시아 등과 법제교류에 힘쓰고 있다. 인도네시아와는 지난 2018년 양국 정상이 만나 법제교류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법제처를 벤치마킹한 법제 전문기관 설립 등을 진행 중이다.

정부부처의 입법을 지원하고 법령 해석 업무를 주로 하는 법제처지만 궁극적인 수요자는 국민이다. 법제처는 국민들이 법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국가법령센터'를 통해 제공하고 있으며 어려운 용어를 고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도 진행 중이다.

특히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는 2006년부터 시행한 장기 프로젝트로, 법령 속의 어려운 용어와 한자어, 일본식 표현을 우리말로 바꾸고 복잡한 법령문을 간결하고 쉽게 개선하고 있다.

이 처장은 "올해에는 '한눈에 보는 법령정보'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며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법조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그림과 표, 사진을 제공해 국민이 법령의 내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행 첫해인 올해는 실생활과 관련이 높은 조세, 부동산, 노동, 안전 4개 분야의 12개 법령을 우선 선정했다.

또한 법제처가 정비하는 법령들은 국민들의 실생활과 맞닿아 있다. 이 처장은 "지난해 제정된 '청년기본법'의 취지를 개별 법령을 통해 구체화하기 위해 정비할 법령을 발굴할 것"이라며 "법령 속에서 청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분야와 청년세대에 불합리한 차별법령도 적극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이강섭 법제처장.[법제처 제공]

코로나19 긴급대응, '당일 의견 제시'로 지원

법제처의 대국민지원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각 부처가 보건·경제 위기에 대응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법제처의 지원과 자문이 있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유행 초기 마스크와 손소독제 사재기로 가격이 폭등하자 국민 불안이 커진 바 있다. 법제처는 공적마스크 제도를 도입하고 마스크의 국외 수출을 제한하는 '마스크 및 손소독제 긴급수급조정조치'에 대해 입안지원 요청 당일 법적 쟁점을 검토해 대안을 마련했다. 개학 연기 때도 학교 휴업기간만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선출 일정을 연기할 수 있는지를 신속하게 자문해 학교 운영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도입한 법령의견제시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대응처럼 정부 정책이 긴급하게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유권해석을 기다릴 시간이 부족하다. 이때 법령의견제시를 이용해 법적인 해석을 내려주는 것이다.

의견제시 도입 첫해였던 지난해 총 33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221건의 의견을 평균 5일 이내 검토해 제시했다. 이 중 51건은 코로나19 긴급지원과 관련된 건으로, 분초를 다퉜던 코로나19 초기에는 당일에 바로 의견을 회신하는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확산 초기 마스크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정부는 수급상황이 변동할 때마다 종전 고시를 수정해가며 유연하게 대처해야 했다. 정부는 종전 고시에 따라 생산된 마스크 재고분을 현행 고시로 공공기관에 배분할 수 있는지 문의했고, 법제처는 현행 고시 부칙에 추가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부칙안도 함께 제공해 회신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자녀를 양육 중인 미혼부가정도 한부모가족에 해당된다는 적극해석을 내린 적도 있다. 법제처는 한부모가족지원법에서는 '자녀'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은 만큼 유전자 검사 결과 등 입증서류를 제출하면 한부모가족에 해당한다고 봤다.

설문조사 결과 의견제시제도에 대해 93%의 만족도를 보였으며,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97.7%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에는 회신 건수가 작년보다 20.5건 증가했고 회신기간은 0.3일 단축됐다.

이 처장은 "법령의견제시 제도가 가장 필요한 곳은 지방자치단체"라며 "3월부터 법령의견제시 신청 자격을 광역지자체까지 확대했고 수도권, 강원·충청, 전라·제주, 경상 등 4개 권역별 전담 지원체계를 마련해 신속한 지원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제도가 확대되는 만큼 인력도 늘려갈 방침이다. 그는 "법령의견제시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TF팀으로 구성했던 조직을 정식 과로 승격시켰다"며 "광역시에서 더 나아가 220개 지자체로 제도가 확대되면 제출되는 안건을 어떻게 감당할지가 숙제인데 관련 부처와 인력 확대를 논의하고 내부에서 빼서라도 감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트 코로나 입법과제 '원스톱 지원'… 행정심판 인용률 높여 국민 권익 보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대비에 법제처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 5년차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한국판 뉴딜과 탄소중립 등 범정부적인 주요 입법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 처장은 "법제처는 범정부적인 입법과제의 입안부터 공포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지원할 수 있는 '원스톱 입법지원' 제도를 운영할 것"이라며 "법령안별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법리적 쟁점을 검토해 신속한 입법을 지원하고 부처 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사항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법제처 주도로 이를 조정함으로써 입법의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모든 정책은 법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정책을 하려면 입법이 뒷받침 돼야 한다"며 "시의성이 중요한 만큼 원스톱 입법지원 제도로 부처 간 협의, 입법예고, 자문, 필요한 경우 조문을 만드는 작업까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행정심판을 법제처의 기능으로 복귀시키도록 하는 행정심판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관련 법안이 논의 중이다.

행정심판이란 행정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처분을 받아 국민의 권리와 이익이 침해받은 경우 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준사법 절차다. 행정기관은 행정심판의 재결에 불복할 수 없기 때문에 소송 없이 확정 판결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청구인인 국민은 행정심판이 기각이 되더라도 법원에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권익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법제처가 행정심판을 담당해왔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심판위원회가 국민권익위원회 소속으로 바뀌면서 변화를 겪었다.

이 처장은 "행정심판은 행정이 한 것에 대한 자기시정으로, 스스로 판단하기에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하기 때문에 인용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며 "기존에 내린 결정이 잘못됐다는 판단은 법리적으로 무장돼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법제처의 주요 기능인 법령 심사, 법령 정비 업무와 연계해 행정심판에서 파악되는 불합리한 제도를 신속하게 개선하고, 비슷한 사안에 대해서는 일괄적인 권리구제도 가능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 처장은 "행정심판은 수십년 동안 법제처가 다뤄왔고, 다시 법제처 소관이 되면 우수한 인력을 배치해 인용률을 높이겠다"며 "국민의 권익이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듣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섭 법제처장은
1964년생인 이강섭 법제처장은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1987년 행정고시(31회)에 합격했다.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시라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뉴욕주 및 뉴저지주 변호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이 처장은 법제처 혁신인사기획관, 경제법제국장, 법령해석국장 등 법제처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으며 국회사무처 법제실 법제조정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등을 역임했다. 2019년 6월 법제처 차장에, 이듬해인 2020년 8월 법제처장에 임명됐다.

이 처장은 법제처에서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만큼 법령심사와 법령해석 등 법제처 업무에 대한 이해가 깊고 국가정책에 대한 통찰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제처 내부에서도 합리적인 업무 처리로 조직 내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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