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우리가 (당)하는 5가지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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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1-03-2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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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코-입-힘-법을 통한 인종차별

  • 포괄적차별금지법이 안되면 인종차별금지법부터



미국, 유럽, 호주 등 백인이 주류인 외국에 살거나 살았던 한국인 중 인종차별을 겪지 않은 이는 드물다. 요즘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선 세계 곳곳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늘면서 더 세게, 자주 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피해자만은 아니다.

한국에 살든 아니든 많은 한국인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한국인종’은 그 어느 인종보다 훨씬 더 세분화해 외국인을 차별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피부색을 흑백보다 더 자세히 구분하고, 나라에 따라, 인종과 종교에 따라 차별의 강도도 다차원적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의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은 아시아와 비아시아, 백인과 비백인, 흑인과 비흑인 같은 이분법을 넘어선다.

피해-가해자 입장에서 그 미묘한 인종차별을 겪어 봤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그 차별의 ‘디테일’을 간파할 수 있다. 그래야 차별에 대응할 수 있고, 내가 그렇게 안 하게 된다.

◆눈-시각, 시선으로 쏘는 차별
눈으로 하는 차별은 차별의 시작이면서, 가장 미묘한 차별이다. 비시각장애인이면 누구나 피부색, 옷차림 등을 보는 시각적 능력을 가진다. 거기에서 차별의 첫 단계가 비롯된다. 눈을 마주치는 ‘아이 컨택트’를 하지 않아도 0.1초 만에 서로 본능적인 감정과 감각을 알아채기도 한다. 손으로 나누는 수(手)인사 보다 눈인사가 더 근원적이다.

십수년 전 미국에서 처음으로 백인들의 노골적인 경멸의 눈빛과 눈길을 느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미국 다른 주(州)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종 차별이 덜한 캘리포니아의 부촌 샌타바버라 해안가의 동네 식당에서다. 여행 중인 황인종 4인 가족이 이른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자 그 동네 유지들로 보이는 중년 백인 남성 대여섯 명이 일제히 보냈던 시선. 고성능 카메라의 초근접 슬로모션 기능으로만 잡을 수 있는 얼굴 근육의 미묘한 변화와 함께 눈동자와 눈썹의 움직임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국에 돌아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한국인들의 눈을 볼 때가 많다.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마주치는 외국인들에게 보내는 우리들의 시선 말이다. 피부색뿐 아니라 특정 국가와 종교를 드러내는 옷차림을 한 ‘동네 주민’을 보곤 한다.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이웃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동네 주민, 이웃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동네 공원에 한두 번 나왔다가 이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사자들은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의 눈빛을 감당하기 버겁다고 토로한다.

눈은 색을 구분한다. 인종마다 다른 피부색은 있지만 ‘살색’은 없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국가기술표준원은 한국산업규격(KS)에 있던 ‘살색’을 없애고 ‘살구색’을 추가했다.

살색에 따라 차별을 당하고 가하는 우리는 살색 사용 금지에서 나아가 우리의 눈빛, 시선을 바꿔야 한다.
 

[20여 개 한인단체들이 구성한 '애틀랜타 아시안 혐오범죄 중단촉구 비상대책위원회'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덜루스의 귀넷플레이스몰에서 총격 희생자 추모 및 아시아계 인종 혐오 규탄 촛불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냄새-가릴 순 없어도 덮을 수 있는
사람의 후각이 최대한 발달하면 3천여 가지의 향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향수의 여정>을 쓴 장 폴 겔랑은 향을 만드는 조향사인데, 별명이 ‘세기의 코’, ‘향의 음악가’라고 불린다.

오감(五感) 중에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게 후각이라는 말을 믿는다. 냄새에 따른 차별도 그렇지 않을까. 각기 다른 유전적 특성이나 나라 별 음식 문화 때문에 몸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게 바로 몸내, 체취다.

허물없이 지냈던 외국인 친구들은 고춧가루와 양파, 마늘이 뒤섞인 내 땀 냄새를 참기 힘들다고 했다. 친구가 아닌 외국인들이 비행기나 지하철에서 고개를 돌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대놓고 자리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한국에 주둔하는 다양한 인종의 미군들은 한국인 카투사(KATUSA)들과 2~6인용 방을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처음으로 외국인과 한 방을 쓸 때 가장 먼저 깨닫는 본능의 차이가 바로 체취다. 그건 미국, 한국의 차이보다는 그야말로 인종의 다름이다. 나뿐 아니라 룸메이트 제각각 똑같았다. 마늘과 치즈, 커리 등의 냄새가 뒤섞이는 방도 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불편, 고통이었다. 그래서 너나할 거 없이 이 부분만큼은 서로 노력하는 게 ‘무언의 합의’였다. 그때부터 향수, 데오드란트(겨드랑이 냄새 제거제) 등을 찾아보며 어떤 냄새를 다른 냄새로 덮는 법을 알았다.

어느 다문화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방계 다문화가정 출신 어린이가 교실에 전학 온 첫날 고유의 체취 때문에 학생들과 선생님이 당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전학생 탓을 하지 않았다. 창문도 열지 않았다. 옆 자리 짝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그제서야 그 전학생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창문을 열었다.

우리는 모두 불편함과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 불편과 고통의 원인이 냄새라면 다른 냄새로 덮으면 된다. 다투거나 혐오하지 말고, 인정하고 웃으며.

◆말…단어 하나의 혐오
시선으로, 냄새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입증하기 어렵다. 행여 그런 눈짓, 몸짓을 했더라도 처벌하기도 힘들다. 말 역시 그럴 때가 있다.

미국에서 영어로 아시아인에게 하는 인종차별 중 가장 애매했던 게 바로 ‘왓(What)?’이다. 비영어권 사람들이 미국인에게 영어로 뭔가를 물어보거나 말했을 때 백인, 흑인, 라틴계 가리지 않고 매우 무례한 뉘앙스를 풍기는 인종 차별적 단어다. 어떤 질문을 세 번이나 했는데 똑같이 세 번 ‘왓?’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땐 내 영어 발음을 잘못 알아듣나보다 했는데, 교포들은 “그게 제일 쉽고 편하게 ‘한 방’에 하는 인종차별”이라고 했다. 그 이후 뭔가 이상하다 싶은 ‘왓?’이라는 반응을 들으면 바로 눈을 부릅뜬 채 다시 질문 후 ‘유남생’(무슨 말인지 알아 들어? 유 노 왓 아임 세잉, You know what I'm saying?을 빠르게 말하는 것을 뜻함)을 덧붙인다. 그러면 좀 나아진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선 대놓고 말을 통한 인종차별이 늘어났다. 아시아 사람을 향해 “너는 바이러스!”, "너네 고향으로 가"라고 공격한다. 그런데 이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인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얼마 전 인천에서 길을 가던 다문화 가정 2세에게 코로나19 관련 혐오 발언을 한 자들이 붙잡혔다. 남방계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20대 한국 여성 김씨에게 “야, 코로나!”라며 소리를 질렀다. 함께 길을 가던 외국인 남편과 함께 인종차별을 당한 거다. 한국인을 향해 인종차별을 가한 한국인 가해자들은 폭력 행위로 입건됐는데, 인종차별에 대한 죄는 물을 수가 없다. 법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모욕죄를 주장했으나 경찰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무시했다.

이런 언어적 인종차별을 처벌할 수 없는 '법과 행정의 부재'는 대한민국의 수치다.
 

[사진=연합뉴스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운동본부장을 맡고 있는 장혜영 의원이 19일 오후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서울·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힘…인종차별을 강제하는 행정력
인종과 국적을 따지는 개인의 눈·코·입 차별은 국가기관의 힘과 법으로 가하는 차별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 개인 간에 벌어지는 차별과 달리 힘-법의 차별은 집단적-제도적-국가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협, 생존 불안감을 주는 중요한 차별은 힘과 법이다. 길지 않은 외국(인과의) 생활 동안 이런 힘과 법 때문에 인종차별을 체험한 적인 단 한 번도 없다. '한국식'으로 운전 하다 내 차를 세운 미국 경찰도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말 끝마다 자연스럽게 '써(sir)'를 붙였다. 

우리나라 국가기관이 강제적으로 인종 차별에 힘(행정력)을 동원한 사례는 그래서 꼭 짚어봐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경기, 전남, 전북 등 일부 광역단체도 서울시를 따라 했다. 행정명령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는 등록 및 미등록 여부를 불문하고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자 대혼란이 벌어졌다. 경기도의 한 검사소에는 평일에 일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말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길고 빽빽한 줄에 되려 감염 확산이 우려될 정도였다. 일주일 전 주말 검사를 받지 못한 일부 외국인은 아예 검사 전날 밤부터 줄을 섰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자 외교가, 국내 정치권 등에서 인종차별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유럽연합(EU) 대사들이 외교부를 찾아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또 주한영국대사관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하기도 했다. 인종차별 이슈 때문에 서울 외교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응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정부는 이틀 뒤 서울시가 발령한 외국인 노동자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조속히 개선할 것을 요청했고,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최영애 인권위원장도 “이주민을 배제하거나 분리하는 정책은 인종에 기반한 혐오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행히도 방역당국은 최종적으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큰 외국인 다수 사업장의 내·외국인 근로자 모두를 대상으로 선제적 진단검사를 진행할 것을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했다. 권덕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29일 "감염 위험도가 높은 사업장의 내·외국인 모두에게 진단검사를 공통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진단검사 방식을 명확하게 개선하라고 질병관리청과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정명령 사태는 아시아인들이 미국 등지에서 혐오발언을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국가기관의 힘을 남용한 참극이었다. 함께 사는 가족, 같은 공장에 근무하는 한국인과 외국인 중 외국인만 강제적으로 검사를 받으라고 국가기관이 차별을 명령한 거다.

아무리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지만 행정 효율성을 위해 인종차별을 해도 상관없다는 건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힘'에 인권 감수성을 담길 바란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열린 2021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 및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부재가 만드는 차별
눈-코-입-힘으로 아무리 차별을 해도 이를 막는 최후의 보루는 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차별금지법은 없다. 법이 없기에 차별이 있다.

지난 21일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노동자 평등연대, 차별금지법제정 이주인권연대 등 8개 시민단체는 이날 행사를 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존의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더 심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토론회의 결론은 하나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1965년 유엔(UN) 총회에서는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확보하기 위해 '인종 차별 철폐 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을 채택했다.

2007년 법무부가 처음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정부 차원에서 발의한 이후 거의 매 정권에서 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성소수자 차별'이 결정적으로 법 통과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2018년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인종차별의 정의를 법제화하고, 인종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다시 권고했다.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차별금지법제정에 대해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음에 대해 우려한다"고 했다.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은 2017년, 2020년 인종차별금지 법제화를 촉구했다. 목사님, 신부님, 스님 모두 이렇게 외쳤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모두 이주민 출신입니다. 인종차별은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닙니다. 이주민에 대한 비하, 멸시, 차별이 일상생활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이 시급합니다”라고.

‘아시아인 증오를 그만두라’는 해시태그(#StopAsianHate)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나는 증오하지 않는다’(#IdoNotHate)는 문구를 나란히 쓰면 좋겠다. 더 나아가 실제로 한국인들이 인종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데까지 가야 한다. 그걸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한민국에 인종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할 명분, 이유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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