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국경탄소조정'이란 이름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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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1-03-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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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세계 주요국들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수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수단 확보도 필요하지만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경제사회 시스템의 개혁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경제사회 시스템 개혁의 하나로 주목되는 것이 국경탄소조정(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다. 특히 EU(유럽연합)는 2023년부터 국경탄소조정 메커니즘을 시행하겠다는 정책의지를 이미 피력하였고 그 구체적인 방안을 금년 상반기 중에 발표할 예정이다. 국경탄소조정은 실질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로서도 국경탄소조정의 내용과 그 영향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 수준은 국가별로 서로 다르다. 국경탄소조정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국제무역상 불공정성을 시정하고 배출규제가 약한 국가와 지역으로 탄소배출이 누출되는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EU는 탄소배출을 선도적으로 감축해 왔고 타 국가/지역에 비해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한 지역이다. 예를 들어 철강 산업에 대한 배출규제가 강할 경우 EU 역내 철강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역외 철강기업에 비해 약화될 수 있다. 더구나 EU 역내의 철강생산이 규제가 약한 역외 국가/지역으로 누출될 우려가 있다. 이는 EU 역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감축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다. 이러한 치명적인 제도상의 허점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바로 국경탄소조정 메커니즘이다.

EU가 도입하고자 하는 국경탄소조정 메커니즘은 현재 제도설계가 진행 중인데 이 제도가 어떻게 구현되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어서 면밀한 관찰과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대상제품의 범위가 중요하다. 현재는 탄소배출량의 측정 등의 문제로 인하여 EU는 서플라이체인의 상류부문에 있는 탄소집약적 산업, 예를 들면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 소재를 중심으로 국경탄소조정을 시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이 제도가 향후 점차 대상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동차 등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이 포함될 경우에는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

또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주체와 방법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정 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모든 부품소재를 포함한 전 과정에서 배출량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당해 제품 생산에서 배출량으로 할 것인지, 그리고 측정된 배출량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측정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 등도 중요하다. WTO(세계무역기구) 무역규범과의 합치성도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국경탄소조정이 차별적인 보호무역조치라기보다는 기후시스템이라는 천연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예외적 조치라고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EU는 WTO 규범에 합치하는 형태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경탄소조정에 대한 강대국들의 정책방향도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EU의 국경탄소조정이 보호무역조치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대항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파리협약 합의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로부터의 제품에 대해 탄소조정료를 부과하겠다고 한 바 있다. EU는 바이든 정부의 출범 직후 미국과 환경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강조하였는데 향후 국경탄소조정에 대해서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국경탄소조정 메커니즘의 국제표준을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경제산업성을 중심으로 이 제도의 도입형태, 일본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연구하고 있으며 EU에게는 제도설계과정에서 일본과 사전에 협의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특히 전기자동차 등 일본의 차세대 핵심 산업이 국경탄소조정 대상에 포함될지 여부에 관심이 높아 보인다. 중국은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의 발달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국경탄소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면서 동 조치가 WTO 규범에 위배되는 보호주의적 조치라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금년 1월부터 화력발전(배출량의 약 40% 차지)에 대해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는 등 기후변화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향후 국제사회는 국경탄소조정 메커니즘을 놓고 한판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경탄소조정은 제도의 세부적인 설계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리고 강대국 간 이해대립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지만,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도입되어야 하고 또 도입될 것으로 전망되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우리 경제는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주력수출시장에서 탄소배출을 기준으로 추가적인 관세가 부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싫다면 국내에서 탄소배출에 대한 적정한 비용부담을 요구하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우리는 서둘러 국제사회에서 어떤 형태의 국경탄소조정이 도입될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 경제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단순히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만이 아니라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국경탄소조정 메커니즘 그 자체에 대한 지적 역량을 확충하고 국경탄소조정의 국제규범을 확립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국경탄소조정에 대응한 국내 배출량 감축을 위한 탄소가격제도 도입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국내든 아니면 수출대상국이든 어느 한쪽에서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이 청구된다면 우리는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을 부담시키는 편이 국가재정 확충 측면에서도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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