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탄소중립, 이젠 선택이 아닌 생존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 2021-01-31 18:19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미국, 일본, EU, 한국 등 세계 127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러한 대열에 동참한 국가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는 이미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국가 차원에서 표명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향후 몇 년에 걸쳐 2조 달러를 투자하여 탄소중립을 위한 인프라를 정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일본 스가 내각도 2조엔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여 탄소중립을 위한 연구개발투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EU가 제시한 그린 딜 전략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세계의 탄소중립을 선도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의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최대의 자산운용사 미국 블랙록은 투자선 기업들에게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사업전략을 공개하도록 요구할 예정이다. 탄소중립 사업전략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하거나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주주총회를 통해 기업경영에 관여할 공산이 크다. 이미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진의 퇴출을 요구한 사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않는 기업일수록 기존사업이 정체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라 에셋 매니지먼트도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용으로 환산하여 이를 반영한 재무정보를 바탕으로 투자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탄소에 가격을 부여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금액으로 환산하고 기업의 자기자본이나 현금흐름과 비교하여 탄소배출비용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탄소배출량은 특정기업 하나만이 아니라 공급망까지 포함하여 평가하기도 한다. 현재 300개사를 대상으로 공급망까지 포함한 탄소배출량을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자산운용사들도 이미 기후변화에 동반되는 기업경영의 위험을 자산운용결정에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철강, 화학, 전력 등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산업이 배출량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조달방식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배출량 감축목표와 설비투자계획을 공개하고 배출량 감축의 과학적 검증을 거쳐 소요자금을 회사채 등 금융상품을 발행하여 조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나라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대량배출기업은 투자에서 소외될 수 있어서 이들 기업의 배출감축을 위한 투자에 소요되는 자금조달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설계가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에서도 탄소배출량 감축효과를 반영한 설비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효과가 높은 설비는 통상적으로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종래의 투자기준으로는 채택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나 탄소배출을 비용으로 고려할 경우에는 저탄소형 설비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투자회사로부터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나아가 탄소세 등 제도변화에 따른 비용부담을 선제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세계는 이미 탄소중립을 향한 경쟁시대로 진입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탄소중립경쟁은 진짜인가 아니면 일시적 유행인가? 1997년에 채택된 교토의정서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합의된 이후 필자는 감축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실상을 지겨울 만큼 지켜봐 왔다. 늘 그렇듯이 실질적인 감축은 계속해서 뒤로 미루어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도 전 세계는 새로운 진전이 있을 것이라 크게 기대하였지만 그 후의 상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녹색성장”의 시대가 있었고 일본에서는 “저탄소사회”를 지향했던 시기가 있었다. 늘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의 탄소중립경쟁은 과거와 좀 다른 진지함이 엿보인다. 아마도 최근에 크게 증가한 홍수, 태풍, 혹서, 산불, 코로나 등 감염병 확산이 사람들의 인식을 상당히 바꾼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현재의 탄소중립경쟁이 진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코로나로 인해 추락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일시적 수단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는 매우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저탄소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이 기술이 사회에 의해 채택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시장메커니즘이 이미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퇴출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에는 상당 기간 종래기술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수반될 것이다. 탄소감축을 위한 노력에는 인간의 지적 노력과 증가된 비용의 감내가 필요하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고 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기회가 부족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의 사용증가로 전기요금이 상승할 수 있다. 전기자동차 확대로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내연기관 자동차산업이 망할 수도 있다. 탄소중립에 이르는 길에는 기회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용증가를 감수할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이미 “의지”를 논할 여유조차 없는 세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단호한 결단과 신속한 실행이 상책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책도 돈을 주는 정책을 넘어서 비용분담을 요구하는 정책도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탄소가격정책일 것이다. 탄소배출은 이제 더 이상 공짜가 아니며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논의해야 한다. 탄소세나 배출량 거래제도 등 아직 도입되지 않았거나 일부에서만 적용되는 제도를 대폭적으로 강화하는 개혁에 시동을 걸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EU는 이미 탄소국경조정세를 도입할 계획이다. 우리가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탄소세를 부과할 태세인 것이다. 세계는 이미 탄소배출을 공짜라고 여기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업과 국민에게 비용분담을 요구하는 개혁은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빨리 이를 시작해야 한다. 어차피 갈 길, 남들보다 더 빨리 가자!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고 지혜로운 정부이다. 탄소중립으로의 길, 만만한 길이 아님을 미리 알고 단단히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할 때이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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