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옐런과 파월의 밀착 공조 .미 경제 살려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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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1-02-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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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신행정부 내각의 요직을 구상하면서 망설임 없이 가장 자신있게 선택한 인물을 꼽으라면 재닛 옐런 전 연준의장(74)일 것이다. 작은 체구와 온화한 인상 그리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속은 강심장으로 알려진 그가 바이든 정부에서 재무부장관으로 다시 등장한 첫째 이유는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시절 보여주었던 탁월한 능력과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이 추구하는 진보적 경제정책, 즉 '바이드노믹스'가  공화당으로부터 '좌파적이요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옐런 장관은 의회와 큰 마찰 없이 각종 경제 법안을 통과시켜 제도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기대와 믿음도 작용한 듯하다. 거기다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옐런의 후임으로 임명된 현 연준의장 제롬 파월(67)과 우애 깊은 오누이처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한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재무부장관과 연준의장이 손발이 맞지 않으면 미국 주요 경제 정책은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기지 못하고 표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월 1일 바이든 당선자가 재무장관 내정자로 발표한 후 옐런 전 의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윌밍톤, 델라웨어, 로이터/연합]


거의 완벽한(near perfect)' 연준 의장


옐런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이나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걸친 상의 재킷은 옷깃(collar)이 항상 세워져있다. 그래서 '세워진 옷깃(popped collar)'은 그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2018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 의장으로  4년 동안 임무를 마친 그를 연임시켜야 한다는 금융시장의 압도적 여론을 무시하고 그를 재지명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 각지의 연준 직원들과 외국의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퇴임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들의 옷깃세우기'(PopYourCollar)' 사진을 트윗에 올리는 이벤트는 큰 화제가 되었다. 연준 의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파월 의장도 떠나는 옐런을 위한 송별행사에서 연설 도중 자신의 옷깃을 올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훈훈한 모습을 자아냈다.

케인스학파 옐런은 노동경제학자로 인플레이션보다 고용에 더 관심이 많은 '비둘기파'로  금융완화를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지지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월가 투자은행에서 다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중립성향의 '친(親)시장' 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 공화당원이지만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는 경향이다. 조지 H.W 부시 행정부 때는 재무부에서 금융기관과 미 국채 시장을 담당했다. 서로 상이한 백그라운드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인연은 30년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1992년 재무차관이던 파월은 UC버클리대 경제학 교수였던 옐런과 자주 만나 정책 논의를 하곤 했다.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함께 옐런은 버클리대에서 5년간 휴직한다. 휴직 기간 연준의 이사(1994~1997)로 발탁되고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1997~1999)을 맡는 등 워싱턴DC 정가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쌓게된다. 옐런은 버클리대로 복귀한 지 몇년 후인 2004년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장으로 부임하고 2010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된다.


2011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파격적인 조치로  공화당 소속인 파월을 연준 이사에 지명하게 된다. 당시 미 대통령이 야당 소속을 연준 이사에 앉힌 건 14년 만에 처음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파월을 발탁한 것은 그의 온건한 정치적 실용주의 기질과 더불어 옐런의 조언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두 사람은 옐런이 파월에게 의장직을 물려준 2018년까지 6년간 연준에서 서로 활발한 소통과 끈끈한 동료애로 미국 경제와 시장을 지휘하고 조율했다. 연준의장으로서 두 사람의 경제적 관점이 비슷한 데가 많다는 점은 연준에서 오랫동안 손발과 호흡을 맞춘 경험 때문인 듯하다. 


파월은 차분하고 온건한 성격이지만 자신을 연준 의장으로 올려놓은 트럼프가 금리인하를 요구하며 자기 입맛대로 연준을 마구 흔들 땐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코로나로 미 경제가 전례없는 위기에 빠지자 연준은 금리를 '제로'수준으로 내리고 사상최대 규모의 국채매입에 나서는 등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적극적이고 신속한 지원사격에 나섰고, 이때 경제학자들과 월가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코로나 사태로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연준과 재무부의 정책공조는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대선을 앞두고 파월은 스티브 므누신 전 재무장관과  연준의 긴급대출 프로그램 중단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공식석상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옐런과의 오랜 친분으로 볼 때 파월은 므누신보다 훨씬 편한 상대와 정책공조를 하게 되었다. 파월은 내년 임기를 마치는데 바이든이 그를 재지명할지 여부가 관심사이다. 파월이 비록 오바마 행정부에서 연준 이사로 지명됐지만 바이든과의 관계는 대통령 선거 이전 또는 이후에도 별로 특이한 게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월 의장에 대한 평가를 자제하고 있다. 그의 재지명 여부는 옐런의 재무부와 연준이 바이든의 희망대로 정책공조를 원활하고  조화롭게 잘 이루느냐 여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파월의 재지명에 있어 옐런의 피드백은 결정적인 요소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1일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증언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로이터/연합] 


옐런의 연준의장 시절 이룩한 업적은 화려하다.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은 헬기에서 돈을 뿌리듯 무제한 돈풀기와 파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하여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극복해낸 벤 버냉키 의장의 후임으로 옐런을 선택한다. 연준 역사상 첫 여성수장이 된 옐런은 당시 포브스에 의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선정됐다. 옐런의 임기 중 가장 큰 업적으로 연준이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기준금리를 5번이나 올리면서 버냉키가 시행한 통화완화 정책을 서서히 거둬들인 성공적인 테이퍼링(Tapering)이 꼽힌다. 당시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금리를 다시 올리는 순간 시장이 패닉에 빠지고 경제위기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시에 연준 내부에선 더 빨리 긴축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매파(통화 긴축 옹호)들이 옐런을 압박했다. 옐런은 2015년과 2016년 한 차례 금리를 인상한 뒤 숨을 고르다 2017년 세 차례 올렸다. 이 과정에서 시장에 충분한 신호를 줘 '긴축 발작'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재임기간 실업률은 2014년 6.7%에서 2018년 4.1%로 떨어졌고 경제성장률은 1%대에서 2.7%로 상승했다. 옐런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공화당으로부터도 초당적 지지를 얻어내고 연준 내부의 소통능력도 크게 개선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퇴임하는 그를 두고 일부 미국 언론은 '거의 완벽한(near perfect)' 연준 의장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트럼프와 파월

파월도 연준의장에 취임한 첫해 옐런의 점진적 금리인상 정책을 이어가기도 했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파월을 해고하겠다고 위협하며 금리인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초 미국경제의 고용지표 호조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위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파월은 금리인상을 중단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경기과열에 따른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로 향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고 말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일이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충격을 최소화 하면서 미국 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은 경험을 바탕으로 옐런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미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할 태세이다. 지난달 열린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옐런의 모습은 미국의 급증하는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공격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단호한 모습이었다. 그는 "금리가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인 지금 가장 현명한 일은 크게 행동하는 것(act big)"이라며 세금인상이나 부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부양책 추진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또 "나의 임무는 미국인들이 (코로나19) 대유행의 마지막 몇 달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돕고, 타격을 입은 미국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부양책뿐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 중심의 대규모 인프라(사회기반시설) 투자 추진과 이를 위한 세수 마련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경제학 전문인 옐런 전 의장은 일자리 문제만이 아니라 탄소세 도입을 주장하는 등 환경 문제에도 정통하다. 아울러 해외의 재정 당국과 중앙은행장들과도 깊은 인맥을 가진 옐런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국제 공조 강화 노선에도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바이든 정부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 압박에도 앞에 나설 전망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중국은 분명히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경쟁국"이라며 "중국의 불공정한 행위에 맞서 모든 수단을 활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기술 탈취 등 불공정 무역관행을 통해 새로운 패권 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강경책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추가부양책과 인플레이션


공화당의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1조9000억 달러(약 2100조원)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조만간 통과시킬 태세이다.  파월 의장도 대규모 부양책을 통해 미국의 실업률을 대폭 하락시키고 코로나로 심화된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양극화를  해소시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기까지는 금리를 인상하려고 서두르진 않을 전망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10일 뉴욕 이코노미 클럽의 온라인 세미나에서  "급격하거나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을 기대하지 말라"며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차단시켰다. 또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만큼 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선 참을성 있게 순응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언론은 파월 의장의 발언은 한동안 연준이 금리를 올리거나, 테이퍼링(채권매입 축소)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관행을 보면 연준이 행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기관으로 재무부와의 밀착 정책공조를 하는 자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로 등장할 우려가 있다. 또 막강한 두 기관이 합심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풀어대면 미국 경제의 버블이 심화되거나 인플레이션이 등장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옐런과 파월 두 사람의 경력과 오랜 인연 그리고 성품으로 미루어보자면 양 기관이 적절한 선에서 정책적 조합을 이룩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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